한 해의 절반이 지났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버려야 할 것 움켜 쥐고
지나온 반 년 보내며
헤진 욕망이 흘러 넘침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
사라진 반 년 더듬으며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옴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꼭 새 것이 좋은 것이 아닌데
잊혀진 반 년 되뇌이며
지금이 중요하다고 알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짐을 다 질 필요는 없는데
새로운 반 년 바라며
가볍게 떠나는 여행이기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길을 잃어야 새 길이 열리니
설레는 반 년 기대하며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야함을

이승현

[한 해의 절반]
‘절반의 실패’였다면 ‘절반의 성취’를 기대하기를
한 해의 절반 보내고 남은 한 해의 절반은 잘 살아야

새벽에 한차례의 소나기가 내린다. 창밖에는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몸을 휘감으며 한기가 감돈다. 시린 바람에 감기가 든다. 몸에 바람이 드니 얼굴과 몸이 붓는다. 마음에 바람이 들면 영혼의 감기를 앓겠지.

때로는 삶의 감기로 시들어가다
이민과 유학생활 가운데 찾아든 삶의 감기는 질기고 모질게 떨어지지를 않는다. 쉰내가 나는 몸은 마비가 자주 오고 삶에 덧대어진 시름은 깊어만 간다. 삶이 한 겹씩 풀릴 때마다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이 있다. 삶이 선명해지며 다가오는 잔혹한 괴로움이 있다. 삶의 더께가 쌓여지며 던져지는 애잔한 서러움이 있다. 말의 찌기가 차오르며 스며들어 번져가는 서운한 섭섭함이 있다.

가족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고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입은 살았는데 몸은 죽어가고 있다. 말은 잘 하는데 몸은 풀어지고 있다. 말소리는 부드럽고 감미로운데 상실로 영혼은 시들어가고 있다.

날자
이만큼 살았으면 됐지
헤매고 부딪치면서
늙어야지
(외국은 잠시 여행에 빛나고
삼사 년 공부하기에나 알맞지
십 년이 넘으면 외국은
참으로 우습고 황량하구나)
-마종기, <나비의 꿈>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면 더 외롭고 불안하고 염려스럽고 걱정되어 잠을 못 이루고 두려움으로 몸을 떨고 있다. 삶의 외로움은 인생의 길목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만나는 일이다.

거북한 인생이 아니라 거룩한 인생 되어야
그 동안 남들에게 보여지는 삶은 거룩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보아온 자신의 삶은 거북한 인생인 것을 자신만 모르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 동안 남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먹고 살자고 달려오기만 한 것은 아닌가? 힘들다고 말 한마디 못하고 산 것은 아닌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도 못하고 산 것은 아닌가? 가슴 뛰는 일은 마음에만 품고 다리가 떨릴 때가 되어 회한 속에 후회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결핍과 과잉 사이에서 한 번도 만족을 모르고 살지는 않았는가? 죽음은 항상 부모나 가족이나 심지어 자식에게 찾아와도 자신만은 결국 비껴가리라고 여기고 살지는 않았는가? 그러나 죽음은 한밤중에 비수처럼 날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례식의 주인공은 아니라고 하지는 않았는가? 오직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인 것만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래도 한 해의 절반이 남았다
남보다 먼저 성공과 성취를 향해 달려왔는데 너무 서둘러 달리다가 인생의 절반에서 지쳐 흔들리고 있지는 않는가? 인생은 속도와 방향의 균형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동안 인생의 절반을 타인의 눈치만 보고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이제 인생의 절반을 보내고 이제 남은 인생의 절반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보다 어떻게 바르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겠지. 이제 석 달의 겨울 가운데 한 달을 보냈다. 이로써 한 해의 절반이 지났다. 아니 한 해의 절반이 시작됐다. 한 잔의 물을 마시고 보니 물잔에 반 밖에 안 남았네 하는가, 아니면 물잔에 아직 반 잔이나 남았네 하는가?

지나온 한 해의 절반이 절반의 실패였다고 하더라도 이제 남은 절반의 기대를 위해 한 발만이라도 예수와 함께 하면 어떨까? 삶의 아픔을 대신 짊어지고 갈 영혼의 친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안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혼의 친구로 맞이하면 삶의 감기는 잘 낫는다.

이승현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