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뒤돌아보는 지난 시간

임봉학 목사<크리이스트처치로고스교회>

책꽂이 한 귀퉁이 먼지를 뒤집어쓴 오랜 앨범에 눈이 닿아 아이들의 어릴 때 모습과 함께 줄줄이 소환되어 오는 그 시절 그때를 회상해 봅니다. 그리고 가끔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어느 만큼 왔는지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듯, 지난 3개월여 저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침 그 시간을 크리스천라이프에 글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목회 단상을 쓰고자 합니다.

아직 한국과의 비행기 직항 노선이 생기기 전인 1991년, 총각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그해, 영어연수를 위해 처음 찾았던 곳은 오클랜드. 그리고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은 큰딸을 안고 가족과 함께 선교 훈련을 받겠다고 다시 찾은 뉴질랜드는 남섬의 정원 도시 크라이스트처치로 24년 전 겨울이 시작되던 6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전 잠시 방문했던 미국에서의 유학의 꿈을 여러 이유로 접으며 인도해 주신 이 땅 크라이스트처치는 그때까지 청년들과 함께 나누었던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을 향한 부르심처럼 우리에게도 부르심의 땅이자 도전의 장이 되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시작된 이곳에서의 낯선 삶은 YWAM의 D.T.S.훈련을 마침과 동시에 교회 사역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지역교회를 섬기는 이민교회 목회자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한국에서 대학부, 청년 담당 부목사로 3년 반 사역 후 이곳에서 계속된 사역은 마침 밀려오는 이민자들로 인한 교회의 필요에 의해 생각보다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민 1.5세대 자녀를 담당하는 부목사로 다시 3년 반 사역하다 교단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지금은 뉴질랜드 곳곳에 교단 교회가 세워지고 많은 동료, 후배 목회자들이 열심히 사역하고 있지만, 그때는 모든 것을 새로 만들고 세워가는 과정이었기에 큰 보람과 함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그 길을 함께 가 주셨던 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찬양처럼 지금까지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요 늘 함께하였던 믿음의 동역자들 덕분이었습니다.

또 다른 부르심 앞에
우리 가족에게 크라이스트처치는 제2의 고향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큰 딸이 자라고 작은 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지난 시간 이 도시의 어려움을 교민분과 몸으로 겪어온 산 증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시간 살아온 도시 곳곳에 저들만의 사연과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남아있기도 하고요.

2010년과 2011년 연이어 있었던 두 번의 큰 지진을 지나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며 서로 일으켜 주었던 땀과 눈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 15일(금)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인종차별적 이슬람 사원의 총기 사고로 인해 우리 이민자들의 마음은 다시 한번 충격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옮겨온 나무와 같이 강한 생명력으로 지난 시간 우리 교우들과 또 교민들과 울고 웃으며 보내온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땐 한국의 날에 한복을 함께 입고 시내를 행진하며 두 딸에게 한국인의 긍지와 정신을 일깨워 주려 했습니다.

또 지난 8년간 교민들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며 돕는 한인 상담기관“코리안 헬프라인”을 섬겼던 것도 보람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제는 어느 사이 지역사회의 가장 오래된 목사가 되었고, 당시 한 살 반이었던 큰딸은 작년에 가정을 이루고, 이곳에서 선물로 주신 둘째 딸은 공부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7월 마지막 주에 지난 7년 3개월여 섬기고 있던 로고스 교회에서의 송별과 선교사 파송 예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은퇴를 10여 년 남긴 중년의 나이에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무모해 보이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목구멍에 무엇이 걸린 것처럼 선교를 이야기할 때마다 마음 한 켠 부담과 불편함이 있어 왔기에 더 늦기 전 그 부담감을 부르심으로 알고 나아가려 합니다.

감사한 것은 장성한 딸들이 저희의 결정을 환영하고 저들도 보내는 선교사로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국 영혼구원을 소망하며
마태복음 13장은 “천국은 마치…”라는 문장으로 우리에게 천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기쁨으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밭을 산 사람처럼 우리에겐 모든 것을 팔아서 사야 할 보화가 있습니다. 이 보화를 먼저 발견하게 하였으니 이제 더욱 나누는 것에 마음을 쏟고 싶습니다.

사도행전 20장과 21장을 보면 3차 선교여행을 마친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려 하자 주변에 그를 사랑하는 많은 성도들이 예루살렘 행을 만류합니다. 거기에는 고난과 결박 박해가 기다리고 있다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바울의 안위를 염려하며 만류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할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바울은 가야 할 목적과 사명이 분명하였기에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행을 강행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앞에는 많은 고난과 박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고난과 어려움을 통하여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로마로 향하는 배에 동승하게 되었고 마침내 로마에 당도하게 되어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는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당시 땅의 끝으로 알려진 서바나(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합니다.

이 세상에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고난이 전혀 없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고난은 피할 것이 아니라 싸우며 헤쳐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우리가 항상 누리고 있는가 입니다.

목회자로서 반환점을 돈 지 이제 꽤 되었습니다. 그 동안 앞만 보고, 위만 보고 나갔다면 이제는 남은 여정에 마지막 추구해야 할 것에 집중할 때라 생각합니다.

소원하기는 남북이 통일되는 그날 베트남 하노이에서 기차를 타고 아직도 어둠에 있는 우리의 분단된 조국 북녘땅 수도인 평양까지 갈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합니다.

통일 한국, 복음 한국을 꿈꾸며 우리가 머무는 그 어느 곳이든 나를 자녀 삼아주시고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천국 일꾼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