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이 회심하면서 핍박과 순교 늘어나
지난 7월 8일부터 10일까지 2박 3일 동안 로토루아 디스팅션 호텔에서 오클랜드한인교회협의회(회장 이재오 목사) 주최로 ‘하늘나라 VIP’라는 주제로 뉴질랜드 한인목회자부부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에는 오클랜드 뿐만 아니라 멀리 남섬의 인버커길에서부터 파머스톤 노스와 뉴 플리머스, 그리고 타우랑가와 해밀턴에서 39가정 90여 명의 한인 목회자 부부 및 가족이 함께 했다. 특별히 파키스탄에서 선교하는 정마태 선교사가 세미나에서 주제 강의를 했다. <편집자 주>
지금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4가지 거대한 파도, 그 풍랑 속에 있다.
첫째, 다원주의 세상의 물결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인가? 많은 그리스도인이 정체성의 혼란 가운데 살아간다. 도대체 불신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종교들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정체성의 문제이다.
둘째, 이슬람 근본주의 위협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무슬림 인구는 높은 출산율과 함께 공격적 선교로 증가하고 있다. 통계 자료로만 16억이 넘는다. 세계 인구 중 4명당 1명이 무슬림이다. 단순히 이슬람 근본주의 뿐만 아니라, 힌두교, 불교, 기타 다른 종교들의 극단적인 분파의 성장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셋째, 전 세계적인 세속화의 물결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증가하고, 부의 심각한 편중으로 가난한 자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가정의 붕괴는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었다. 붕괴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고통과 그에 따르는 사회적 문제가 폭발하고 있다. 돈과 하나님을 바꾸는 물질주의는 더 가속화 되고 있다. 이에 따른 비인간화 현상, 이혼, 동성애, 성경의 가치관에 대적하는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넷째, 테러와 환경 파괴에 따른 재해, 재난의 증가이다. 자살 폭탄 테러,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무차별적인 테러가 증가하고 있다. 환경 파괴에 따른 지구 온난화, 홍수, 기근, 그리고 그에 따른 국가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엄청난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신다. 비 서구 교회의 성장이 그 증거이다. 비 서구 기독교 인구는 서구 교회 인구보다 3배가 많다.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에서 기독교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기독교는 말 그대로 모든 나라로 퍼져가고 있다.
이슬람권에 복음이 퍼지면서 순교, 핍박, 고난이 증가하고 있다. 매년 16만 명의 크리스천이 순교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무슬림이 회심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피가 회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성경적인 순교에 대한, 신학적인 토대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순교는 영웅주의가 아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교단과 지역을 넘어서 영적 부흥 위해 기도하고 서로 격려하며 교제 나눠
20년간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이슬람권에서 일어나고 있다. 재난과 전쟁, 테러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꾸준히 전진하고 있다. 이란에 최소한 100만의 크리스천이 있다.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환경이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다.
무슬림의 고백이다. 그들이 회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인의 친절한 삶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초대교회와 같은 섬김과 사랑이 변화를 이끌고 있다. 기독교인의 기도가 응답되고 있다. 기적과 이적,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고 있다.
꿈과 환상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꿈에 나타나심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무슬림이 생겨나고 있다.
많은 무슬림이 내적인 평화를 구하고 있다. 그들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대하며 가장 충격을 받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이다.
개종한 무슬림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증가하고 있지만, 무슬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제자훈련을 시키려는 사람은 많은데, 친구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 회심이냐? 개종이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친구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거대한 세상의 풍랑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 풍랑은 그저 고통을 위해서 있지 않다. 풍랑은 이유가 있다.
첫째,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브리서 12장 1절).”
선교와 목회가 힘들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얽매이기 쉬운 것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낙심은 사실 죄이다. 시대가 변했기에 그것에 따른 지혜를 구해야 한다.
둘째, 붙들 것을 붙들어야 한다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모든 풍랑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 복음이면 충분하다. 그 마음이 아니면 선교, 목회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사도행전 27장 25절).”
풍랑 가운데 평화를 누려야 한다. 오히려 안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나님 한 분을 진정으로 의지해야 한다.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
셋째, 다시 정비해야 한다
크리스천은 영원히 배우는 사람이다. 매일 매일 주님께 배워야 한다. 뉴질랜드의 한인 교회는 분명한 사명이 있다. 이 땅을 품고 복음을 뿌려야 한다. 수많은 문제가 그저 불신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다. 우리가, 교회가 문제의 한 부분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난을 만날 때 성도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는 두려움과 좌절을 겪고 숨는 것이다. 침묵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반응은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다. 도망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 고통을 직면하고 그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다.
2013년 9월 22일 주일에 파키스탄 페샤와르 온성도 교회에 자살 폭탄 테러가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15분쯤 뒤에 “알라 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라는 외침과 함께 폭탄이 터졌다. 성도들은 비명을 지르고, 두 번째 폭탄이 터졌다.
온성도 교회 테러 피해자들 대부분은 무슬림과 관계가 좋았다. 이 테러로 98명이 순교했고, 144명이 상처를 입었고, 53명이 고아, 16명이 과부, 7명이 홀아비가 되었다. 살아남은 성도들, 생존자들은 아직도 피 냄새, 화약 냄새를 느끼고, 비명이 들린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하지만, 그 테러 피해자의 93%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테러리스트를 용서한다. 나머지 7%가 용서 못 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너무 그리워서 어렵다고 말한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누가복음 23장 34절).”
이 놀라운 용서의 이유를 주님께 돌린다. 공의? 정의? 정부가 해야 할 일?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들에겐 선교사도 필요하지만, 친구가 되는 것이 먼저이다. 예수님의 초점은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있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정신을 차리고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온몸으로 채워야 한다.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
파키스탄의 교회는 어디서나 거의 예외 없이 시편 72편을 찬송으로 예배를 마친다. 그런데 테러 당일 온성도 교회에서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있었다. 마지막 찬양을 다 부르고, 찬양 대원 하나가 마이크를 끄지 말고 찬양을 하나 더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 아름다운 계절이 오리라!
그 아름다운 계절이 오리라!
세상 모든 구석구석에 복음이 전파되리라!
그 아름다운 계절이 오리라! 그 아름다운 계절이 오리라!
그 찬양을 제안한 형제는 그날 죽었다고 한다. 그 찬양을 불렀던 자매는 한쪽 다리를 잃었다.
용서 없이 복음은 없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용서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용서한다.
부르심을 확인하는 시간 가져
처음 참석하는 목회자 부부 수련회였다. 뉴질랜드 전역에서 참여한 목회자들과 부르심의 소명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목회의 상황과 환경은 달라도, 함께 뉴질랜드의 영적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교제와 친교를 통해서, 교단과 지역을 떠나서, 주님의 종으로 서로 교류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목회자 부부 수련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 깨닫는 시간이었다. 선교도 목회도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사는 영적인 진리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목회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 용서 없이 목회는 없다. 성도들이 아니라, 목회자가 용서로 변화되어야 한다. 용서하지 못하는 목회자가 용서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양산한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목회 사역이 되어야 하겠다. 오직 의지하고 붙들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이며 복음이다. 세상의 변화, 뉴질랜드 이민 목회의 환경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목회의 본질이다. 그 본질을 붙잡는 시간이었다.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오클랜드한인교회협의회 임원진들과 여러 모양으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