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5일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어두운 날이었습니다.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두 곳의 모스크에서 호주 출신 백인우월주의자 테러범의 총격에 의해 50명이 사망하고, 47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한 동안 이 일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왜 이런 테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가? 왜 평화스러운 나라 뉴질랜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 일이 있기 전, 뉴질랜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테러가 먼 나라의 일이라고만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테러 피해의 당사자가 되었고, 이곳도 테러로부터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난해 부활절 무렵이었습니다. 신실한 어떤 집사님과 교제를 나누다가 개인적으로 홈리스 사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홈리스 사역이 자꾸 머리속에 맴돌았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미국에서의 경험 때문입니다. LA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섬기던 교회가 홈리스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 있었습니다. 교회를 오가며 길거리에서, 또 전철 속에서 수많은 홈리스들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마음 속에 질문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마음 가운데 큰 부담감으로 남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 마음을 주신 성령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집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집사님. 그 사역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집사님이 대답했습니다. “그냥 오시면 됩니다.” 그냥 그렇게 동참하게 된 홈리스 사역이 8개월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감사선교교회의 사역으로 매주일 12시30분 시티 도서관 앞에서 주일2부 거리예배로 청년들과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이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홈리스 사역을 얼마나 기뻐하시는 지를 사람들을 통해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아내와 개인적으로 홈리스 사역에 참여하고 있던 지난 8개월동안 아무런 관심이 없던 성도들이 이 사역에 놀랍도록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또한 아내가 일하는 가게에서 사역에 사용할 플라스틱 컵을 구입하는데 가게 주인이 그 컵의 용도를 알고는 선뜻 도네이션해 주었습니다. 그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목사님으로부터 뜻밖의 카톡이 왔습니다. 성탄절 예배 때 드린 헌금을 우리 교회 홈리스 사역에 헌금하기로 온 성도들이 기쁨으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교회 역시도 재정적으로 완전히 자립한 교회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전부터 새벽예배를 드리기를 소원하고 있었는데 홈리스 사역을 위해 꼭 새벽기도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제하던 영어권 키위교회에 예배장소를 부탁했습니다. 새해 첫 운영회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장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함께 봉사할 도움의 손길들을 한국으로부터 보내주셨습니다. 워킹 할러데이로 1년 동안 방문하게 된 두 청년이 봉사에 합류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불교 집안의 청년입니다. 전도대상자까지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사역 가운데 성령의 임재하심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강력한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합니다. 부족한 영어로 설교할 때마다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온 몸에 전율이 와서 때때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하심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과 온 오클랜드 시내로 흘러가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홈리스 거리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뒤늦게 한 홈리스가 찾아왔습니다. 이미 준비한 음식과 커피는 모두 소진되었고, 대접할 것이 없었습니다. 음식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의 얼굴에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기도라도 해주세요!” 그리고는 제 앞에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마음 속으로 깜짝 놀라면서 뜨겁게 기도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커피를 근처 까페에 가서 Take away했습니다. 커피를 들고 그에게 가는 도중에 같은 홈리스인 케빈 형제가 자기가 먹으려고 챙겨 두었던 머핀과 파이를 내밀었습니다. 자기는 괜찮으니 그 홈리스에게 갖다 주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투바쉬 형제는 다른 사람에게 거짓으로 돈을 빌려서까지 마약을 했던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복음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 형제가 거리예배에 와서 그동안 있었던 자신의 신앙을 간증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사역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10짜리 지폐를 꺼내 제게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 어린 아이의 도시락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생각났습니다(요한복음6:9).
누구든지 복음을 듣는 자마다 열방과 족속과 방언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강력한 성령의 임재하심을 목도합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린도전서1:27).
이같이 약한 교회를 복음의 도구로 세우시고, 이 미련하고 약한 자가 선포하는 복음을 듣게 하기 위해서 영혼들을 보내시는 성령의 역사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하심에는 개인적인 체험 그 이상의 차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뉴질랜드에 왜 총기 테러가 일어날까요? 테러가 일어나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 신앙, 내 교회, 내 교단만을 챙기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공동체의 울타리를 허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이민자로서 테러의 위협에서 우리를 지키는 방법은 열방과 족속과 방언을 초월해서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후손들의 안전한 미래를 준비하는 길은 이 뉴질랜드 사회를 위해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이유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소통하고, 베풂으로 말미암아 한인 사회와 한인 교회 공동체의 미래를 예비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