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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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돈으로 하나? 그러면 돈 없이 어떻게 목회를 하나?’ ‘목사가 뭐 돈이 필요해, 그러면 목사는 돈 없어도 살 수 있나?’

목사가 강단에서 헌금에 관한 설교를 할 때 특별한 은혜가 아니면 교인들은 마음의 빗장을 닫아건다. 세속적이라는 생각, 또는 심적 부담감을 느껴서일 것이다. 하지만 목회는 구름 위에 앉아 둥실둥실 떠다니면서 하는 게 아니다. 목회는 현실이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거룩한 비전과 영성은 받아들이면서도 돈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이나 필요를 하찮게 여긴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세속적이거나 신앙이 유치하거나 아니면 무지한 사람이다. 교회 안에서 돈 문제는 절대성을 부여할 수도 없지만 터부시 할 수도 없는 주제다. 돈 이야기는 자칫 잘못하면 득보다 실이 더 많지만 오늘은 부득불 그 돈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서 214번, 구원에 대해 218번, 재물에 대해 약 3천 번 언급한다. 믿음과 구원보다 재물에 대해 열 배 이상 더 말하는 이유는 재물이 믿음과 구원보다 더 중요해서가 아니다. 재물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게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김미진, 왕의 재정 19쪽)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돈이 차지하는 비중과 위력은 결코 가볍게 말할 수도 없고, 우습게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약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심지가 견고한 사람도 돈 바람에 마음과 삶의 가지가 흔들리고 뿌리가 들썩이기도 하며 때로는 뿌리가 뽑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목회 역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사역이지만 현실적으로 그 돈 바람을 비켜갈 수는 없다.

돈, 그 자체는 가치 중립이지만 물질인 돈에 사랑을 주면 돈은 이내 영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돈은 자기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스스로 자기 가치, 역할, 영향력 등을 변환시키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쓴 돈인데 그 돈이 어느 순간 나의 상전이 되어 나를 돈의 노예로 부린다. 돈은 물질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는 그 사람을 서서히, 때로는 순식간에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이 돈을 쓸 때 우리가 생각하면서 또한 기도하면서 돈을 써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돈에게 힘을 실어주는 순간 돈은 우리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되고 그때부터 돈은 소유를 넘어 우리 위에 군림하는 신이 되려고 한다. 돈이 힘을 가지면 이기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이 힘을 갖지 못하게 하는 싸움, 즉 돈을 그냥 돈일 뿐이게 만드는 싸움을 해야 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돈을 사랑하면 돈을 하나님처럼 떠받들게 될 것을 아시고 경계로 주신 말씀이다.

돈에 마음을 빼앗겨 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돈은 온갖 편리함과 편안함을 준다. 돈은 예전에는 그렇게 해도 안 됐던 일들을 너무도 쉽게 가능하게 해 준다. 돈은 사람들이 내 앞에 머리를 숙이고 동경하게 해 준다. 돈은 내가 원하는 것들을 손에 쥐게 해 준다. 돈은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걷게 한다. 아니 교만해도 괜찮아 보이게 한다. 돈은 꽤 괜찮은 힘과 권세를 가져다 주니 그 돈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돈이면 다 되는데……

목회 역시 돈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목사도 이슬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하루하루 사는 게 움직이면 다 돈이기 때문에 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고국이나 뉴질랜드에서나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 채 오직 사명감 하나로 힘들게 사역하는 목사들이 많다. 그래서 소형 교회들은 집계되는 헌금의 대부분을 목회자 생활비 등으로 지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목사가 헌금을 다 가져간다’고 말한다. 교회가 부흥하고 재정적으로 넉넉해지면 그때도 목사에게 다 지출하지는 않을 텐데 …… 참 가슴 아픈 얘기다.

목사가 자신의 전 삶을 드리고 애를 쏟아 목양할 때 교회와 교인들이 그 목회자의 생활을 알아 섬기고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목사는 자신이 섬기고 있는 교회의 형편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힘들고 어렵다고 앓는 소리, 궁핍한 소리를 교회 앞에 잘 하지 않는다. 목사는 금식을 할지언정 본인의 입으로 말 못한다. 그때 교회와 교인들이 알아서 섬기고 돌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교회와 교인들이 섬겨주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종들을 친히 예비하신 까마귀를 통해 공급받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일까? 목회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돕는 손길, 즉 까마귀에 관한 비화가 다 있다. 이 공통점은 참 예사롭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는 모든 것을 교회와 교인들에게 기대거나 탓만 해서는 안 된다. 목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면 인내하고 금식해야 한다. 목사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종들을 풍성함이 아닌 사르밧 과부, 즉 이제 마지막 빵을 구워먹고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할 그런 사람을 통해 먹이시고 채우시기 때문이다.

만약 목사에게 돈이 생명이 되고, 목적과 의미가 된다면 이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교회가 모든 하나님의 일을 돈으로 계산하고 목사 역시 돈이 있어야만 목회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거기에 하나님이 역사할 시간과 공간은 없다. 교회는 목사의 고용주가 되고, 목사는 교회라는 직장에 고용되어 봉급을 받는 직원이 된다면 이는 교회와 목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교회는 공허해질 것이고 그 목사는 삯꾼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열과 성을 다해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며 목회하고, 교회와 교인들은 진심으로 목사를 예우하고 그 목회적 비전에 믿음과 손을 함께 보태야 한다.

잠언 30장 8-9절에서 아굴(Agur)은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돈, 필요하지만 그 손을 거절하고 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돈, 다스리지 못하면 돈에게 다스림을 받게 된다는 영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 건강한 교회, 건강한 목회,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돈을 발 아래 둘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