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문은 죽음

죽은 자를 두고 돈 세는 장례식장과 제비를 뽑는 화장장 순서. 신생아 산모병실에서 축의금을 받고, 중환자실에서는 조의금을 받는다. 현대인은 병원에서 태어나 병들어 병원에 다니다가 병원에서 죽는다.

남이 정한 인생의 정석대로 살려면 명문대를 졸업해서 대기업에 다니고 비슷한 상대와 결혼하여 둘이 하나가 아니라 따로 같이 살며 돈과 보험으로 준비된 노후를 살아야 한다. 삶은 있고 죽음은 없어야 한다. 아프더라도 죽지는 말아야만 한다. 그런데, 인간은 죽는다.

죽는 순간에는 낭만이 없다. 다만 죽음의 거울로 보면 고통과 절규 그리고 분노하거나 혼수상태에 있거나 때로는 외롭고 슬픈 표정으로 숨을 멈춘다. 영화처럼 유언하고 죽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순간의 들숨을 거두면 날숨은 더 없다.

병든 사람이 병원에서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에도 가족은 전혀 준비 없는 상태에서 맞게 된다. 삶에서 죽음의 경계를 넘는 사람은 마지막으로 날숨을 쉬지 못하고 가슴을 쥐어짜기도 한다. 가족의 한 사람이 죽는 순간의 표정은 남은 사람의 가슴에 오래 남는다. 생의 지울 수 없는 지문으로.

한 사람의 죽음에는 개인적인 죽음, 생물학적인 죽음, 의학적인 죽음, 사회적인 죽음, 법률적인 죽음, 종교적인 죽음이 있다. 사람은 나이 들어 자연스럽게 죽는 경우와 죽음을 받아들이고 평온하게 죽는 경우, 그리고 의료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죽는 경우가 있지만, 진정 천국을 소망하고 죽는 경우는 적다.

삶과 죽음은 공존한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다. 삶과 죽음이 서로 연결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둘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늘 마주 본다. 때로는 멀리 있다고 느끼고 때로는 가까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사이가 있다. 그 사이에는 제국과 천국이 있다. 제국의 삶에는 언제나 죄와 죽음이 있고, 천국의 삶에는 구원과 영생이 있다. 제국의 죽음과 천국의 영생 사이를 잇는 유일한 다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이다.

삶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죽음 뒤의 영생을 믿는 것에서 비롯된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 진정한 삶은 죽을 때 빛난다. 죽는 사람의 아름다운 마지막 얼굴을 보면서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도 천국의 소망을 얻고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1초에 2명이 죽는 제국의 사망이 아니라 천국에 소망을 두면, 누구나 죽음을 안을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죽음을 품을 수 있는 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