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있잖아. 거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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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서울 방배동의 oo교회를 섬기던 장전도사 아니신가요?”
어느 주일 지난 월요일 이른 아침, 나를 찾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네, 그 장전도사 맞습니다. 누구시온지요?”
“나, 박oo 목사요”

순간 심장이 벌렁벌렁, 혈압이 확!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칩니다. 너무 반갑고 놀라도 심장이 벌렁벌렁, 혈압이 확! 소름이 쫙! 올라가나 봅니다.

“어머어머어머! 말도 안돼요. 이게 웬일이시래요? 이게 몇 년 만이셔요? 어떻게 절 찾으셨어요? 지금 어디에 계시는데요? 전화번호는요?”

쉴새없이 내가 묻고 싶은 말만 마구 물어 댑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교회를 떠난 지 20년이나 지났는데 나를 찾는 전화를 받았으니 반갑고 놀랄 수 밖에요.

그분은 내가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던 교회의 장로님이셨는데 뒤늦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주의 종의 길로 들어선 분이셨습니다.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사도바울과 같이 학문이 뛰어나고, 요즘 말로 하면 꽤나 잘 나가던 분이셨는데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는 주의 종이 되었던 것이지요.

또한 사모님은 저희 두 아이의 주치의셨습니다. 당시 소아과 병원장으로 소리없이 조용히 교회를 잘 섬기시던 분으로 우리 두 아이가 태어나서 이곳 뉴질랜드로 오기까지 아이들의 모든 예방접종과 건강을 책임져주시고, 잘 섬겨주셨던 분이시기에 세월이 흘러도 늘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전화를 받게 되니 좋아하며 기뻐할 수 밖에 없지요.

“분당에서 목회하다가 지금은 캄보디아선교사로 파송 받아 신학교에서 교수로 8년간 사역 중이지. 아내는 여전히 의료선교사로 헌신하고 있고. 이번에 안식 월로 뉴질랜드에 왔어.”

주일인 어제, 우연찮게 한인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가 집사님 한 분이 전해주신 크리스천라이프 신문에서 제 이름을 발견하고는 직감적으로 ‘장전도사다!’ 하시고 전화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온 남편이 흥분된 목소리로 두서없이 말하는 나를 진정시키며 묻습니다.
“무슨 일인데? 진정하고 천천히 얘기 좀 해봐. 뭐가 어떻게 되었다고?”
“있잖아, 있잖아. 거 있잖아……”
“뭐가 있다는 건데?”
“글쎄, 있잖아, 거 있잖아~아”

알려주신 주소를 찾아 부랴부랴 남편과 함께 오클랜드 동남쪽으로 30여분을 달렸습니다. 단 걸음에 달려가 찾아 뵈온 두 분을 안고 이산가족 상봉처럼 기쁨의 눈물로 재회를 했지요.
칠십을 넘기신 목사님은 신학교 교수로, 사모님은 의료선교사로 열심히 살아오신 흔적이 그분들의 모습에서 해같이 빛났습니다.

지나온 이야기는 늘 새롭고 좋습니다. 알았던 이야기에 더 흥이 나고, 몰랐던 이야기는 더 재밌어 하면서 지나간 삶을 뒤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들을 나눴습니다.

그분들을 모시고 2박 3일 타우랑가 마웅가누이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속 여행은 준 사랑은 잊어버리고, 받은 사랑은 기억하는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우수수 가을 낙엽 떨어지는 낯선 공원 벤치에 앉아 밥솥 열어 밥 퍼먹고, 황금비율(?) 믹스커피로 후식을 대신하며 옛 이야기, 선교지 이야기, 사역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옛날로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칠십하나의 목사님 생신은 뜻하지 않는 섬김의 손길을 통해 아름다운 촛불을 밝히는 따뜻한 멋진 밤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보며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헌신된 자들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으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존귀한 자로 세워주심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그 사랑을 잊되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심을 알았습니다.

나의 섬김을, 나의 헌신을, 나의 사랑을 하나님은 오늘도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명애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