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잊고 축복은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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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에게 “만약 교회에 나간다면 왜 나가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위안을 얻고 건강해지고 싶어서, 재물 얻고 성공하고 싶어서, 축복받고 싶어서, 친교를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반대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왜 교회에 가는가?”하고 물어보면, “평안을 얻고 싶어서, 건강과 재물, 그리고 성공과 축복받으려고, 거리가 가까워서, 습관적으로, 모태 신앙이어서, 가족의 권유로, 분위기가 좋아서, 설교를 들으러, 단체 활동하려고, 죽어서 천당에 가려고”. 아주 일부만 “예수 믿고 구원받으려고”라고 대답했다.

근원적인 생각의 중심에 성공과 축복만을 원하고 자신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고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 가운데 기다리며 산다는 진리는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안타까운 사실은 교인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져 가는 주의 은혜를 교리적으로만 알고 있다. 교인은 직장에서, 사회에서, 일상에서 기독인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 교회 밖에서의 교인은 세상 사람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재물과 성공을 바라고 축복만 원하지만 진정 통장의 바른 회계와 영혼의 회개는 줄었다. 점점 소금의 기능은 줄고 빛은 어두워지고 있다. 왜, 교인의 삶에서 진정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주의 사랑으로 섬긴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삶의 기준인 성경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그대로지만,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교회사를 보면, 문란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던 시대에도 기독인은 생명존중과 구제와 봉사를 통해 사랑으로 이웃을 섬겼다. 당시의 세상 사람은 기독인의 생활이 자신들과 달라 거부하고 배척했다.

하지만 기독인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랑으로 이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 듣고 알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가치관에 변화가 생겼다.

기독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분명한 죄의 고백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으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을 보여주었다.

시련과 역경을 당하고 모든 재산을 잃고 고통과 핍박 가운데 죽임을 당해도 사는 것과 죽는 것을 뛰어넘는 진정한 기독인의 신앙을 보고 믿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다.

기독인의 삶이 기독교의 사랑으로 살아갈 때 세상의 문화도 바뀌어 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