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나는 홀로 오클랜드를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꾸준히 함께 할 것 같았던 교회 공동체를 떠나 처음으로 홀로서기에 도전했다.
어쩌면 너무 멀리 왔나 싶기도 한 곳, 나는 런던에 있다. 그렇게 용감하게 시작한 런던 생활이 벌써 6개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WHY LONDON?
그 동안 ‘왜 런던이야?’라는 질문을 꽤나 많이 받았다. 지금도 꾸준히 받는다. 하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봐서 이젠 물어봐 주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다. 작게 보자면 런던은 단순히 내가 꿈꿔오던 도시였기 때문이고, 크게 본다면 교사로서의 시야와 생각을 넓히고 싶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꽤나 런던을 좋아한 것 같다. 늘 꿈꾸던 유럽여행 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던 런던이었고, 휴대전화 속 사진들은 늘상 런던아이나 빅벤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졸업선물로 가족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떠나 런던에 처음으로 발을 딛게 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화면 속에서만 보던 런던의 모습을 두 눈에 담느라 애를 썼던 것 같다.
그 와중에 내 눈에 가장 많이 들어온 건 늘 보고 싶던 빅벤과 런던아이보다, 런던 출근길을 거니는 사람들이었다. 두리번 두리번, 지도에 의지하며 이곳 저곳을 헤매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문득 런던이 집이라 익숙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때 ‘내가 여기서 살아 보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라는 욕심이 들었다. 나도 내가 쳐다보기만 하던 사진들 속에 사는 사람들 중에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 때부터 런던에서 살아가는 나를 꿈꾸다 보니, 결국 나는 반년 만에 교사로서 다시 런던 땅을 밟게 되었다.
홀로서기의 시작
물론 좋아서 무턱대고 오겠다고 한 런던이었지만, 처음부터 모든 일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도착 첫 날 공항에 떨어져 입국 수속을 밟고 있는데 숙소를 예약했던 사이트에서 연락이 왔다. 원래 묵으려고 했던 숙소가 사정상 숙박이 불가해졌는데 새로운 숙소를 찾았냐는 연락이었다. 장장 26시간을 날아왔는데 갑자기 갈 곳을 잃었다.
긴장이 풀리자마자 멀미가 올라오는데 땅은 울렁거리고, 온 몸엔 남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남 얘기인줄만 알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싶으면서 정말 오지 말아야 하는 곳에 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나마 히드로 공항에서 국제미아(?)가 되어 고생해보고 나니, 이 정도면 런던에서 잘 살아나가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강해진 정신을 부여잡고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화번호부를 열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수두룩한 오클랜드와 달리, 런던엔 내가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름 혼자 적응은 잘 할 것 같긴 한데 정작 살아나가려니 모든 게 어려웠다.
방은 어떻게 알아봐야 하는지, 좋은 방을 보는 기준은 뭔지, 밥은 무얼 먹고 살아야 하는 건지, 막상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어 굉장히 답답했다.
출근 날짜는 다가오는데 자리는 아직 못 잡았고. 마음이 어찌나 급했는지 하루에도 시간을 쪼개서 방을 두 세개씩 보러 다녔다. 2주를 그렇게 지냈다. 무작정 런던이 좋아서 오긴 왔는데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마음도 급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들이 지금은 내가 뒤돌아보며 편히 얘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들이 되었고, 나는 새로운 땅에서 잘 적응했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 분의 계획 속에서
이 정신없는 일들을 어떻게 이겨냈냐고 묻는다면 어쩌면 뻔한 대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모든 일이 그냥 하나님 계획이라고 믿고 지낸 것뿐이라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더더욱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나야 했었던 일’이라고 믿는다.
처음 런던에 떨어져서 갈 곳을 잃었을 때 처음엔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론 혼자 호텔 독방을 쓰는 호화로움을 누렸고, 2주 동안 출근 직전까지 마땅히 살 곳이 없어 마음을 졸였지만 그렇게 기다려서 거짓말처럼 출근 날짜 직전에 나에게 알맞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좋은 곳에 방을 얻었다. 함께 사는 분들 또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오클랜드에서 일하던 곳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지라 혹여 런던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여지껏 일해온 일터 중에서 나는 가장 스트레스 없이 일하고 있다. 앞으로 내가 교사 일을 하게 되면서‘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또 일할 수 있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흔히 딸이 있는 아버지들은 ‘딸바보’가 된다. 딸이 하는 일은 뭐가 됐든 간에 예뻐 보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하는 어떠한 일에 온 신경과 마음을 쏟는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셨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딸이 간구하는 일에 온 신경과 마음을 쏟아주셨고, 내가 누구보다도 의지하는 그 마음을 알아주셨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홀로 하는 타지생활이 그다지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다.
20대라는 것 만으로도
나는 뉴질랜드를 좋아한다. 늘 여기서도 너무 좋은 곳이라고, 후에는 꼭 다시 돌아가서 살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뉴질랜드는 어쩌면 20대가 청춘을 그냥 흘려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라에서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마냥 꿈만 꾸고, 아늑하고 편안한 삶에 안주할 것 같았다.
그 때 나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후에 내가 나를 돌아봤을 때 여기서 20대를 전부 보내도 후회하지 않겠냐고. 순간적으로 너무 억울했다. 세상은 넓고, 나는 가장 예쁘고 자유로운 때를 이제 막 시작했는데 굳이 내 자신을 가두려는 게 싫었다.
물론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뒤로 하고 멀리 떠나면 힘들고 외롭지만, 어쩌면 그것마저도 나의 20대에 한 부분을 채워주는 귀한 경험이 아닐까.
사람은 그 나이에 맞게 또는 그 나이대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모해지고도 이해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때가 20대인 것 같기도 하다.
30대가 되고 40대가 되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면 나중엔 하고 싶은 게 생겨도 쉽사리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 조금은 두려울 수도 있지만 그 두려움에 막혀 포기하지 않기를.
그러니 꿈이 있다면 꼭 도전했으면 좋겠다, 한 번쯤 사진 속의 삶을 살아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