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전쟁으로 불안하기만 한 이때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한 분 우리 주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김광균의 추일서정 첫 부분).
화요음악회에서는 지난주에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었습니다. 이 곡을 들으면서 쇼팽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흠뻑 마음을 빼앗겼던 회원들의 요청에 오늘도 계속해서 쇼팽을 듣기로 했습니다.
워낙 뛰어난 피아노 음악을 많이 남겨놓은 쇼팽이라 오늘은 어떤 곡을 들을까 생각하며 이런저런 음반을 뒤적거리던 중 문득 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秋日抒情)이라는 시(詩)가 떠올랐습니다.
별안간 이 시가 떠오른 것은 아마도 우크라이나를 침입한 러시아가 급기야 폴란드 접경 우크라이나 기지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기에 혹시 전쟁의 불똥이 폴란드까지 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쇼팽은 피아노 음악 역사상 최고의 업적을 이룩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하지만 약소국인 폴란드는 항시 러시아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쇼팽이 음악의 중심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참 활약하고 있었을 때 폴란드는 러시아에 대항해 혁명을 일으켰다가 잔혹하게 진압당했습니다. 이 와중에 러시아군은 쇼팽의 집까지 난입해 집에 있던 피아노를 때려 부숴 땔감으로 써버린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를 알게 된 어린 쇼팽은 너무도 분해서 “하느님, 당신은 러시아인이십니까?”라고 일기장에 적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엔 거리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하느님의 최대 실수는 바로 폴란드인을 창조한 거야.”라는 말을 듣는 수모도 겪으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으로 시작되는 김광균의 시(詩)는 1940년에 쓰였습니다. 시인은 2차대전의 참화를 비판하기 위해 이 시를 썼습니다.
쇼팽의 음악을 고르다 떠오른 이 시를 머릿속에 그리며 나는 지금 포화로 이지러지고 있는 약소국 우크라이나와 그 우크라이나의 난민을 받아들여 도와주고 있는 폴란드의 지나간 역사를 생각합니다.
또한 39살의 짧은 삶을 고국을 떠나 살 수밖에 없었던 쇼팽과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조국 폴란드의 약소국으로서의 비애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런 운명과 상황 속에서 비운의 음악가 쇼팽은 음악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요? 오늘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녹턴을 들으며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피아노의 피아노에 의한 피아노를 위한’ 음악가
‘피아노의 피아노에 의한 피아노를 위한’ 음악가라는 말이 성립된다면 이는 바로 쇼팽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폴란드 출신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은 “쇼팽은 그의 모든 인생을 피아노에 바쳤고, 우리 피아니스트들은 그를 피아노의 절대신(神)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 어떤, 그 어느 작곡가보다도 훨씬 더 피아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을 것입니다. 쇼팽이 작곡한 200곡이 넘는 작품들은 대다수가 피아노, 그것도 피아노 독주를 위한 것이었고 오로지 몇 곡만이 다른 악기를 위한 곡이었습니다.
그 많은 피아노곡 중에서 피아노 협주곡은 지난주에 들은 2번과 오늘 들을 1번 두 곡뿐입니다. 피아노에 일생을 바쳤던 쇼팽이 협주곡은 두 곡밖에 남기지 않은 것을 의아해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피아노를 그렇게 사랑했기에 관현악과 어울려야 하는 협주곡보다는 독주곡에 더 노력을 쏟았을 것입니다.
이 두 곡의 협주곡을 작곡한 때는 그가 고국 폴란드에 체재하고 있을 때인 아직 앳된 청년의 티를 벗지 못했던 열아홉 살(2번) 스무 살(1번) 때입니다. 이 두 곡을 작곡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준 사람은 쇼팽이 짝사랑하면서 말도 붙여보지 못했던 첫사랑의 여인이었다는 이야기는 지난주에 이미 했습니다.
그렇게 연모하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애틋한 감정을 음악 편지로 전하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도한 두 개의 협주곡으로 남겼으니 참으로 사랑의 힘은 위대합니다. 오늘은 그가 두 번째로 작곡한 1번 협주곡을 듣습니다. (2번 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먼저 출판되었기에 1번이 되었다고 지난주에 설명해 드렸습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op. 11
이 곡은 청년 때 쓴 곡이었기에 나이 들어서 쓴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의 깊이와 기교의 완전성이 조금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청년 특유의 신선한 정서와 감각, 그리고 열정이 그 미흡한 점을 보충합니다.
1830년 스무 살의 쇼팽은 이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하며 친구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에게 ‘……. 낭만적이며 조용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작곡했네. 즐거웠던 많은 추억을 환기하는 그러한 곳을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주어야만 했네. 이를테면 봄날의 달 밝은 밤같이.’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이 말 속에서 그가 이 곡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첫사랑 여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 얼마 뒤 정든 고국을 떠나야만 하는 괴로움, 그리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삶에 대한 불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쇼팽이 이 곡을 작곡할 때에도 폴란드의 바르샤바는 정세가 지극히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쇼팽의 가족은 그가 잠깐 고국을 떠나있는 것이 좋다고 결정했습니다. 고국을 떠나기 싫었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던 쇼팽은 떠나기 직전인 1830년 10월 11일 바르샤바의 국립 극장에서 고별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된 곡이 바로 이 1번 피아노 협주곡입니다. 연주회가 끝났을 때 친구들은 그에게 폴란드 흙이 담긴 은잔을 선물했습니다. 어쩌면 친구들은 쇼팽이 살아생전 고국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예견했기에 떠나는 그에게 고국의 흙을 선물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곡의 구성과 내용
쇼팽이 남긴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은 모두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며 낭만주의 협주곡 양식에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였다고 음악사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그러면서도 피아노에 비해 약한 관현악을 단점으로 지적합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여러 작곡가가 관현악 부분을 보강해서 교정된 1번 협주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원곡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피아노의 아름다움을 살려준다고 생각하여 대부분의 연주자가 원곡대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모두 3악장으로 되어있으며 연주 시간은 약 35분입니다.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관현악의 긴 서주에 이어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이 등장합니다. 사랑하면서도 말을 못 하는 쇼팽의 안타까운 마음이 선율 따라 피어나는 느낌입니다. 우울하면서도 로맨틱한 멜로디가 흐르다가 나중에 피아노가 찬란한 기교를 발휘하며 아다지오로 바뀌고 관현악의 합주로 끝이 납니다.
2악장 로만쩨 라르게토
눈물겹도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녹턴 풍의 악장입니다.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서주에 이어 피아노가 칸타빌레의 주제를 연주합니다. 첫사랑 여인에 대한 쇼팽의 순진무구하며 애틋한 마음과 사랑하는 고국과 가족을 떠나야 하는 슬픔이 녹아들어 있는 악장입니다.
3악장 론도 비바체
곡의 분위기가 바뀌어 밝고 재기발랄한 이 악장은 폴란드 민속춤의 선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후반부 호른의 팡파르와 피아노의 화려함에서 고국을 떠나는 슬픔과 첫사랑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밝은 앞날을 기대하는 쇼팽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루빈스타인이 연주하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쇼팽을 피아노의 절대 신이라고 말했던 Arthur Rubinstein은 그 누구보다도 쇼팽을 잘 연주합니다. 화요음악회에서도 그가 Stanisław Skrowaczewski가 지휘를 맡은 New Symphony Orchestra of London과 같이 공연한 연주로 들었습니다.
쇼팽의 녹턴(Nocturne)
가을밤에 따뜻한 차 한 잔과 더불어 들으면 좋은 음악이 쇼팽의 녹턴입니다. 녹턴이라는 명칭은 18세기 때 주로 저녁 파티에서 연주했던 곡을 일컫습니다. 영어로는 Nocturne이라고 하며 한자어로는 야상곡(夜想曲)이라고도 부르는 녹턴은 19세기에 와서 주로 피아노 독주용 음악으로 번창했습니다.
이 장르의 음악을 최초로 고안한 사람은 아일랜드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존 필드(John Field, 1782~1837)입니다.
존 필드는 주로 아르페지오와 칸타빌레식 멜로디 그리고 기타 같은 반주 스타일을 반영한 야상곡을 스무 곡 가깝게 작곡했습니다. 최초의 야상곡 작곡가이기 때문에 ‘녹턴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녹턴이라는 장르의 음악을 발전 시켜 사람들에게 알리고 친숙하게 만든 사람은 21개의 녹턴을 작곡한 쇼팽입니다. 쇼팽이 존 필드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이 음악을 세련된 피아노 음악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대문호(大文豪) 헤세가 사랑했던 쇼팽의 녹턴
우리 젊은 날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소설 한두 권을 안 읽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데미안, 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 수레바퀴 밑에서 등등 그의 소설을 읽으며 젊은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신학교를 중퇴하고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며 학업을 중단하고 서점에서 일하며 글쓰기에 전념했던 헤세의 방에는 두 사람의 초상화가 걸려있었습니다. 하나는 철학자 니체였고 하나는 쇼팽이었습니다.
‘니체에게 바그너라면 나에게는 쇼팽입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내 삶의 모든 본질적인 것은 그의 음악과 밀착되어 있습니다.’ 그가 부모에게 보냈던 편지의 일부입니다. 니체는 처음에 바그너를 좋아했다가 나중에는 등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헤세의 쇼팽 사랑은 평생이었습니다. 그가 쓴 ‘녹턴’이라는 시(詩)가 그의 쇼팽 사랑을 웅변으로 말해줍니다.
녹턴 (Nocturne) – 헤르만 헤세
높은 창문 위로 빛이 쏟아지고 있다.
당신의 엄숙한 얼굴 역시 둥근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조용한 은빛 달이 이토록 나를 감동시켰던 밤은 없었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노래 중의 노래 녹턴이 더없이 감미롭다는 것을 느꼈다.
당신도 나도 가만히 있다. 침묵 또한 빛 속으로 사라져 갔다.
호수 위 한 쌍의 백조와 머리 위의 별 말고는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창문으로 몸을 내밀었다.
당신이 내민 손과 당신의 가는 목덜미를 은빛 달이 곱게 물들였다.
21곡 모두 좋지만 특히 다음 다섯 곡이 많은 사랑을 받는 곡입니다
21곡의 녹턴 중 1번부터 18번까지는 쇼팽의 생전에 출판되었으나 19번부터 21번까지는 사후에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19번부터 21번까지는 쇼팽이 폴란드에 있을 때 작곡되었기에 1번보다 작곡시기가 앞섭니다.
쇼팽의 녹턴은 모두 특유의 감성을 담고 있어 매혹적이면서도 슬픔이 배어있어서 듣는 이의 가슴을 적셔줍니다. 때로는 마약보다 달콤한 꿈에 빠지도록 만드는 쇼팽의 녹턴은 21곡 모두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시간이 없어 제일 많이 듣는 다음의 5곡을 골라 들었습니다.
Nocturne No. 2, in E flat major : 쇼팽의 야상곡 하면 바로 이 곡을 일컬을 만큼 가장 널리 사랑받는 곡으로 밤의 기분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감미롭고도 차분한 음악입니다. 달콤하면서도 애수에 젖은 선율의 연속입니다.
Nocturne No. 5, in F-sharp major : 앞의 2번과 함께 가장 많이 듣는 곡입니다. 청춘의 아름다움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가득한 이 곡을 사람들은 천상의 멜로디를 듣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Nocturne No. 7, in C-sharp minor : 음악 평론가 Alan Rich가 “피아노 음악 세계에서 가장 개인적인 표현을 한 곡 중 하나이다.”라고 한 이 곡은 높은 예술성과 풍부한 시적 향기를 간직한 곡입니다.
Nocturne No. 8, in D-flat major : 2번 5번과 함께 가장 사랑받는 이 곡은 쇼팽 최고의 매혹적인 선율과 감미로움을 품고 있습니다. 혹자는 듣는 이를 너무 황홀하게 만들기에 두려움마저 느낀다고 극찬하는 곡입니다.
Nocturne No. 20, in C-sharp minor :영화 The Pianist에서 마치 주제가처럼 흐르던 곡입니다. 젊은 쇼팽의 고뇌와 애수가 진하게 묻어 나오는 이 곡은 바이올린과 첼로 곡으로도 편곡되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곡입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중국의 망명 음악가인 FOU TS’ONG의 피아노 연주로 들었습니다. 21곡 모두 녹음한 FOU TS’ONG의 녹턴은 가장 쇼팽답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19곡만 녹음한 Arthur Rubinstein의 녹턴 연주도 아주 좋습니다. 같이 들어보시기 권합니다.
음악 감상 뒤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이사야서 9장 6절이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세상에는 영원한 평화는 없고 언제나 전쟁과 불안이 있습니다. 세상의 아무리 훌륭한 성군이나 지도자라도 사람의 힘으로는 온전한 평화와 안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를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 한 아기를 주셨으니 그가 바로 평강의 왕이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코로나와 전쟁으로 불안하기만 한 이때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한 분 우리 주 그리스도이십니다.
약 200년 전 쇼팽의 시대에도 폴란드와 같은 약소국은 강대국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로 세상에서 고통받는 모든 약소국가들과 힘없는 사람들이 평강을 누리시기 바라며 이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