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주모프스키(Rasumovsky) 현악사중주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키이츠(John Keats 1795-1821)는 ‘채프먼의 호우머(Chapman’s Homer)’를 처음 읽고서 감동하여 시(詩)를 썼습니다. 그 시가 ‘채프먼의 호우머를 처음 읽고서’라는 유명한 소네트입니다. 그는 그 시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그때 나는 새로운 유성(流星)이 그의 시계(視界)로
헤엄쳐 들어 왔을 때의 하늘의 관찰자 같은 느낌을 받았다’

1807년 베토벤의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가 처음 연주되었을 때 이를 들은 어떤 사람들은 이 새로운 음악에 키이츠가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을 때와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토벤 당시의 음악 환경을 생각하면 과연 몇 사람이나 음악의 새로운 지평에 펼쳐진 이 혁명적인 작품들의 진가를 이해했을까 하는 의아심이 고개를 듭니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베토벤은 모두 16곡의 현악사중주 (대푸가 포함, 열일곱 개)를 남겼습니다. 작곡 시기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눕니다.

초기의 사중주는 1798년에서 1800년 사이에 걸쳐 작곡된 Op. 18의 여섯 곡이고, 중기의 사중주는 1806년에서 1811년에 걸쳐 작곡된 총 다섯 개의 사중주인데 Op 59 1~3의 라주모프스키 사중주 3곡과 10번 Op. 74 ‘하프’와 11번 Op. 95 ‘세리오소’입니다.

후기의 사중주는 1824년에서 1826년에 걸쳐 작곡된 여섯 개의 사중주로 Op 127/132/130/133/131/135입니다.

현악사중주는 교향곡이나 협주곡과 달리 작곡가의 속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악 장르입니다. 모든 악기가 음을 동등하게 분담하는 특징을 가진 현악사중주는 하이든에서 시작되어 모차르트를 거쳐 베토벤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초기 현악사중주는 귀족들을 위한 여흥이나 유희를 위한 음악이었지만 나중에는 이들의 현악사중주도 희유적인 색채는 사라지고 내면의 소리를 전하는 음악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결실 위에 베토벤은 현악사중주라는 장르를 실내악의 독립된 체계로 발전시키며 앙상블의 조화와 기본적 선율이 중시되는 진실한 음악으로 만들었습니다.

혁명적인 현악사중주
라주모프스키(Rasumovsky) 백작은 빈 주재 러시아 대사로 베토벤을 여러 가지로 후원했던 사람입니다. 대단한 음악 애호가로 자신의 현악사중주단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스스로가 제2 바이올린 주자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새로 건축한 자신의 저택의 완공을 앞두고 베토벤에게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저택에 어울리는 현악사중주를 작곡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800년에 Op. 18의 6곡의 현악사중주를 발표한 이래 현악사중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베토벤이지만 백작과의 친분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현악사중주와는 다른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현악사중주가 더 이상 귀족의 살롱에서 연주되는 가벼운 음악이 아니라 교향곡만큼이나 극적이고 규모가 큰 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806년 여름 동안 써낸 3곡의 현악사중주를 베토벤은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헌정했습니다. Op(작품). 59의 3곡입니다. 이 3곡에는 백작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

첫 곡의 마지막 악장과 두 번째 곡의 3악장에 러시아 테마가 들어있고 마지막 곡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러시아풍입니다. 그렇기에 Op. 59의 이 세 곡은 일명 `러시아 사중주’라 불리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라주모프스키 사중주라고 불립니다.

후세를 위한 현악사중주
베토벤이 자신을 갖고 신념대로 작곡한 곡들이었지만 완성된 악보를 본 사람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새로 건축된 백작의 화려한 저택에서 귀족들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하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복잡하고 장중했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에게 현악사중주는 이미 즐기기 위한 음악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곡의 초연은 라주모프스키 백작이 제2 바이올린을 맡은 슈판치히 사중주단이 맡았습니다. 쟁쟁한 실력자가 모인 사중주단이었지만 연주는 쉽지 않았습니다. 제1 바이올린 주자인 슈판치히는 어렵다고 칭얼거렸고 또 다른 연주자는 베토벤에게 이것이 음악이냐고 따졌습니다. 그 말에 베토벤이 태연하게, ‘이 곡은 당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후세를 위한 것이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 세곡의 사중주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의 작곡 스케치북엔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음악으로 영혼을 표현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적혀 있습니다. ‘라주모프스키 사중주곡’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자 현악사중주의 차원을 바꾸어놓은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베토벤의 전기 작가 솔로몬은 이 세 곡을 18세기 전통의 한계를 넘어선 ‘교향악적 사중주곡’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세 개의 기적, Op. 59, 1~3
베토벤 연구가인 폰 렌츠는 이 라주모프스키 사중주를 “하늘에서 내려온 세 개의 기적”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이 세 개의 기적을 차례로 감상했습니다. Op. 59, 1~3이며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7, 8, 9번입니다. 여러분도 이 곡들을 감상하면서 시인(詩人) 키이츠가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 느꼈던 것과 같이 감동해 보시기 바랍니다.

7번 F 장조, Op. 59-1
세 개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면서 백미로 꼽히는 이 곡은 전 악장이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베토벤이 그의 곡이 후세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오늘의 청중에게도 이 곡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1악장은 그 길이가 400마디에 달하는 장대한 악장이고 2악장 역시 실내악으로는 드물게 큰 스케르초로 구조가 낯섭니다. 3악장은 느린 선율과 비애의 감정으로 장중한 느낌이며 마지막 4악장에는 러시아 민요가 주제로 나오는데 이는 라주모프스키 백작을 위한 배려입니다.

8번 e 단조 Op. 59-2
7번 곡이 밖으로 확산하는 음악이라면 8번은 내성적이어서 밀도가 높고 은근한 맛이 나는 음악입니다. 길이는 7번보다 짧지만 구성은 만만치 않으며 서정적인 표현이 매우 뛰어납니다. 특히 느린 아다지오 악장의 고요한 아름다움은 특별합니다. 3악장의 중간 부분에서는 다시 러시아 민요 선율이 인용되어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4악장은 론도 소나타 형식에 의하여 이제까지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는 명랑한 악장입니다.

9번 C장조 Op. 59-3
3곡 가운데 가장 밝고 힘있는 곡입니다. 서주가 있는 소나타 형식의 1악장이 끝나면 극히 서정적이면서도 조금은 어두운 2악장이 나오고 스케르초가 없는 특이한 3악장이 끝나면 예술적으로나 기교적으로나 가장 뛰어난 음악으로 평가되는 4악장이 이어집니다. 이 마지막 악장에서 베토벤이 현악사중주라는 장르를 뛰어넘을 정도로 힘찬 구성력을 보여주기에 이 곡은 ‘영웅 사중주곡’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부다페스트 현악사중주(Budapest String Quartet)의 연주
명곡인 만큼 명연주도 많지만 화요음악회에서는 오래된 연주지만 오늘날의 많은 연주가 이 연주를 그 연주기법의 틀로 삼는다는 부다페스트 현악사중주(Budapest String Quartet)의 연주로 감상했습니다.

음악 감상을 마치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마가복음 4장 9절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하시니라.”

음악도 하나님 말씀도 들을 귀 있는 자가 듣습니다. 좋은 음악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듣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는 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전 기사다윗이야기 “나의 그일라는 어디인가’’
다음 기사사랑하니까 불안하다고?
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