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음메의 희생

제4장 송아지 음메가 걸어간 제물의 길, 어린양 11화

제사장 한 명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을 모두 마치고 여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터벅버벅 길을 걷다가 도중에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보게 되었다. 순간 멈칫하던 그는 주위를 한 번 힐끔 둘러보고는 다른 이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자 살며시 다가가 쓰러진 사람의 몸을 손가락 끝으로 쿡 찔러보았다. 그러나 옷이 죄다 벗겨진 채 맨몸뚱아리만 남은 피멍든 몸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죽었나?’
제사장은 덜컥 겁이 났다. 레위기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이 죽은 자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 흔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스쳤지만, 그것보단 율법땜에 시비가 붙는 걸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다. ‘나부터 살아야지!’ 그렇게 마음먹으며 행여나 누가 볼새라, 제사장은 그를 내버려두고 황급히 길 반대편으로 도망쳐버렸다.

근데, 아뿔싸! 그 모습을 막 고갯길을 넘어오던 레위인이 우연히 보게 되었다. 레위인은 먼발치에서도 그 제사장을 한 눈에 척 알아보았다. 어찌 못알아볼 수 있을까? 하필이면 둘은 앙숙지간이었던 것이다. 서로 다투는 이유도 알고보면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성전 뜰에는 제물이 될 짐승을 순례자에게 팔기위해 소나 양을 목장주인이 데려다놓게 되는데, 그때 받는 자리세를 제사장과 레위인, 둘이서 나누어 먹다가 셈이 서로 달라 의가 상했던 것이다.

레위인이 가까이 다가가보니 고갯길에서 본 대로 어떤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하, 제사장이 시체를 만졌구나!’

레위인은 드디어 제사장을 혼내줄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혹시 이 자가 살았으면 어떡하지?’ 하는 한가닥 의구심을 애써 지우며 레위인은 그 길로 쏜살같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되돌아갔다.

레위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제사장 한 명이 길에서 시체를 만져 더럽혀졌다는 사실을 고발했다. 대제사장은 즉각 여리고로 사람을 보내어 그 제사장을 붙잡아왔다. 제사장은 할 말이 없었다. 그 시체가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항변할 수도 없었다. 붙잡혀오는 길에 그 곳을 다시 가보니 쓰러진 사람이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때아니게 이 사건이 터지자, 아벨과 아사셀의 목장 주인 라반만 얼씨구나, 신이 났다. 대제사장은 시체를 만진 부정을 씻기 위해 제사장으로 하여금 속죄제사를 드리도록 명했는데, 제사장의 속죄제물로는 값비싼 수송아지가 필요했고, 흠없는 송아지를 구하기 위해 성전측은 라반 주인에게 주문을 의뢰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소 우리엔 큰 슬픔이 찾아왔다. 느닷없는 이별과 죽음…..동트기도 전인 새벽녘에 라반 주인이 들이닥쳤다. 차디찬 미소를 흘리며 목을 잡아끌 줄을 매단 십자가 나무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라반은 이미 제물로 쓸 송아지를 점찍어두었다. 그는 아벨, 아사셀과 또래의 나이인 송아지 음메~ 였다.
우리 밖에서 마주칠 때마다 염소 아사셀은 그를 보며 맨날 놀려댔었다.

“얘! 넌 왜 우리처럼 메~하고 울지않고 음메~ 하고 울어? 따라해봐. 목소리를 떨면서 간드러지게, 메~”
아벨과 아사셀은 송아지의 이름은 묻지도 않고 만나기만 하면 계속 ‘음메’라고 불러댔다. 그렇게 놀렸어도 덩치만 컸지, 착하고 온순하기만 한 음메는 그냥 씩 웃기만 하는 것이었다. 음메는 척 보기만 해도 힘이 장사일 것 같은데 그 힘을 뒀다 어디다 써먹을려고 하는지, 성질나쁜 라반 주인에게 그저 고분고분 순종하기만 했다.

“한번 받아버려~”

언젠가 아사셀이 그렇게 충동질하자, 음메는 안그래도 커다란 눈망울을 더 크게 뜨고는 “안돼. 그건 나쁜 짓이잖아.” 하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었다.

그 날 새벽, 음메는 라반 주인이 무시무시한 십자가 나무를 손에 쥐고 우리 앞에 서서 자기를 빤히 들여다볼 때, 곧 닥쳐올 슬픈 운명을 직감하였다.

“음메~ 음메~”

그의 울음소리가 구성지게 새벽하늘을 울렸다. 소 우리는 삽시간에 울음의 도가니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매정한 라반은 눈하나 깜짝않고 음메의 목을 목줄로 감더니 우리 밖으로 세차게 끌어당겼다. 라반은 음메 덕에 챙기게 된 짭짤한 수입으로 신이 났는지 연신 콧노래를 불러댔다. 그 뒤에서 눈만 꿈뻑대며 바보같이 따라가고있는 음메. 아직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이건만, 옆 우리의 아벨과 아사셀도 벌떡 잠에서 깨어나 음메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뺨에 흐르는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