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은 비둘기

2. 하늘의 제왕을 꿈꾸는 비둘기 샬롬, 어린양 8화

어느 날, 양 울타리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이 비둘기는 생긴 건 여느 비둘기와 다를 바 없었는데, 왠지 약간 도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울타리에 올라서서 양들을 한 마리 한 마리 내려다보는 모습이 마치 부대 시찰을 나온 대장이라도 되는 양 했다.
‘뭐하는 친군데 저렇게 폼을 잡아?’
아벨은 궁금증이 일어 아사셀과 함께 비둘기에게로 갔다.

“안녕, 비둘기야! 넌 처음 보는구나.”
“음, 이제야 나를 마중나왔군. 진작 그랬어야지. 요즘은 국빈이 방문해도 의전이 통 엉망이라니까.”

으잉! 국빈? 의전? 이게 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고. 아사셀은 자기도 모르게 쿡, 하고 웃음이 터졌다. 아벨도 따라 웃고 싶었지만 비둘기의 태도가 너무 진지한 탓에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다만 속으로 생각을 했다.‘어디가 아픈 비둘기인가?’

“아, 참. 내가 자기 소개를 아직 안했네. 나에 대해 궁금하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소개를 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니 이 비둘기는 어지간히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흠, 흠! 난 사실 보통 몸이 아냐. 성령을 받은 귀하신 몸이지.”

그 말을 듣자 아벨과 아사셀은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비둘기는 신이 나서 말을 막 쏟아냈다.

“혹시 들은 적 있나? 예수란 이름을! 그분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야. 문제는 우리 비둘기도 아는 사실을 인간이 모르고 있는 것이지. 하기야 인간의 진짜 문제는 모르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지만.”
아벨은 예수란 이름이 들려오자 갑자기 귀가 솔깃해졌다. 아빠가 제물이 될뻔하다 예수 덕분에 살아돌아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비둘기는 자기 얘기를 하다말고 왜 뚱딴지같이 예수 얘기를 지금 하는 걸까?

“그분이 얼마 전에 요단강에 오셨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했던 거지.”
“근데?”

아벨은 말을 재촉했다.

“오오, 그 일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까.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난 마침 그 위를 날고 있었지. 근데 그 때 내게 성령이 임하신 거야. 난 성령이 임한 즉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예수님의 어깨 위로 내려와 앉게 되었었지.”

비둘기는 당시의 감격이 되살아난 듯 목소리가 거의 흐느낌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소리가 났어.‘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무슨 소린지 알겠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던 거야. 내가 예수님의 어깨에 앉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거라구.”

비둘기는 벅찬 감동을 토해냈다.

“난 이 땅에서 전무후무한 성령받은 비둘기가 된거야. 두고 봐. 나에게 곧 놀라운 기적이 나타날 테니.”

아벨은 그제서야 비둘기가 뭘 말할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너의 이름은 뭐니?”
“그래,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군. 내 이름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꺼야. 나는 샬롬이야.”
“샬롬? 평화?”
“으하하하. 맞아. 난 평화를 위해 태어난 귀하신 몸이야. 근데 그 평화를 위해선 기적이 필요해. 비둘기로서 독수리를 이길 힘을 가져야 하거든. 얼마지나지 않아 하늘은 곧 나의 것이 될거야. 내가 새의 나라를 다스리게 될 거야. 난 하늘의 제왕이 될거라구!”

비둘기 샬롬은 자신이 넘쳐보였다. 누구나 자기 길에 대해 확신을 가진 자는 달리 보이게 마련이다. 하늘의 제왕이 된다는 둥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껄이는 샬롬이 이상하게도 지금 아벨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있는 건 어찌된 일일까. 근데 샬롬의 꿈은 허공으로 흩어지는 메아리에 불과하진 않은 듯 했다. 그날 이후 눈여겨 보니 샬롬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주위에 몰려드는 비둘기떼의 숫자가 날이 갈수록 더 늘어만갔다. 그리고 아벨이 보기엔, 그들의 꿈도 그만큼 더 부풀어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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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곤
연세대정외과 졸업, 코람데오 신대원 평신도지도자 과정 수료하고 네이버 블로그 소설 예배를 운영하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조건도 구원에 덧붙여져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어른이 읽는 동화의 형식에 담아 연재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