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다리를 넘어

“천천히 후후 불며 먹어라, 담배꽁초 삼킬라”

김진완 시인이 처음으로 쓴 ‘아버지의 국밥(문학동네)’이라는 동화에 보면 꿀꿀이죽이 나온다. 꿀꿀이죽은 돼지나 먹을 만하게 보여 이른 말이다. 좋은 말로는 유엔탕이나 부대찌개라고도 하지만 음식쓰레기이다.

한국전쟁을 치르는 동안 먹을 것이 없던 사람들을 위해 미군부대의 음식쓰레기통에서 먹을만한 것을 건져내 끓인 죽을 미군부대에서 가까운 깡통시장이나 도떼기시장의 골목식당에서 팔았단다.

꿀꿀이죽에는 먹다 버린 햄이나 소시지조각이 있으면 좋고 반대로 담배꽁초나 껌, 심지어 콘돔이 나오기도 했단다. 꿀꿀이죽이 아니면 술지게미로 허기를 채우곤 했다.

한국전쟁이 나기 전에도 보릿고개가 있어 굶어 죽는 사람이 있었다. 산나물이나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연명을 했다. 어린 소나무 껍질로 쑨 죽을 먹고 변을 볼 때 항문이 막혀 찢어져 피를 보기도 했다.

전쟁 중에는 사느냐 죽느냐, 다치느냐 피하느냐, 그리고 먹느냐 굶느냐, 아프냐 괜찮으냐 등 생존을 위한 본능이 우선순위였다. 전쟁가운데 죽고 다치고 굶으면서 여자는 임신하고 피난가면서 아기를 낳았다. 아기에게 먹일 죽 한 그릇을 위해 천대와 거절도 받아드려야만 했다.

시장의 후미진 골목에서 꿀꿀이죽이나 버려진 배춧잎을 모아 끓인 시래기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벌여야 했던 값싼 노동은 모질고 질긴 고통의 연속이었다. 전쟁은 끝났으나 여전히 먹을 것은 부족했다. 조금씩 좀 나은 형편이 되면 따끈한 찐빵이나 왕 만두 그리고 오뎅이나 호떡을 먹어보는 즐거움은 컸다.

어느 빵 공장에서 찐빵을“호호 불어 먹는 호빵”이라는 선전으로 호빵을 팔기도 했다. 찐빵 안에 팥 대신에 야채를 넣은 호빵도 나와 군것질보다 밥을 대신할 정도였다. 또한, 1960년쯤에 군대에서 흘러나온 건빵 한 봉지는 아이나 어른이나 훌륭한 한끼의 식사가 됐다.

건빵은 전쟁에서 나온 전투비상식량이다. 밀가루에 누룩을 넣고 발효시켜 고온으로 구워내면 수분이 다 빠져 딱딱해진다. 이 건빵은 오래 보존되고 간편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먹을 만하다. 뉴질랜드군도 안작군으로 세계 대전에 참전했을 때 건빵을 전투식량으로 보냈는데 너무나 딱딱해서 먹다가 이가 부러지기도 했단다.

프랑스나 미국 그리고 독일과 덴마크 등에서 먹는 건빵과 한국에서 먹는 건빵은 모양이나 크기가 다르다. 한국에서 먹는 건빵은 일본식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기술을 배워서 나온 건빵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국군에서는 전투식량으로 건빵이 지급된다.

건빵을 먹을 때는 금방 목이 메이는 단점을 보완하게 위해 별 사탕과 함께 먹으면 설탕의 단맛이 침을 잘 나오게 하여 먹기 좋게 했다. 이 건빵과 호빵은 전쟁 이후 가난한 시절에 먹던 귀한 먹거리였다. 지금은 추억의 맛으로 또는 건강식으로 보리건빵이나 쌀건빵 등 다양하게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급하게 나오며 구운 전병도 일종의 건빵과 같은 먹거리였다. 전쟁 중에 곧 죽어도 사람은 먹어야 한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먹는 것에 불평과 불만이 있었다면 지난 시간 동안 살아남기 위해 먹었던 음식을 추억해보면 어떨까?

곧 6.25전쟁 68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 동안 배고픈 다리를 넘어 온 전쟁을 겪은 세대나 겪지 않은 세대일지라도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