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성경읽기가 필요해

고충근 목사<해밀턴지구촌교회>

어릴 적 기억 속에, 아주 친한 친구가 다니던 교회에서 여리고 함락 기도작전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친구가 다니던 교회의 온 성도들이 새벽과 저녁에 동네 주변을 침묵하며 도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었고, 내가 다니던 교회가 이런 영적 기도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불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뒤 친구가 다니던 그 교회에 문제가 생겨서 교회에 분란이 생기고, 결국 갈라져서 그 지역을 점령하기는커녕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일이 일어났다. 그 때의 기억 속에“지난번에 돌았던 여리고 함락 기도작전은 뭐였지? 왜 이 동네를 점령하지 못하고 교회가 무너지는 걸까?”하는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우리는 성경을 ‘일반화(一般化)’시켜서는 안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세기말까지 구속이라는 관점 속에서 이끌어 가시는 내용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구속을 위해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구속을 위해서 세상을 구원하시고, 구속을 위해서 세상을 심판하신다.

이러한 구속의 관점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이 바로 성경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하나님의 의도인 구속사의 관점에서 읽어야만 한다. 이렇게 읽을 때, 성경의 깊은 의미와 가려진 진리들이 드러나게 된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성경읽기에 대한 중요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Q.T’이다. 많은 성도들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미명하에 단락으로 구별되어진 본문을 묵상하고, 그 날 그 날의 말씀을 품고 살아간다.

이러한 Q.T식 성경 읽기가 한국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까이하게 만들고, 성경을 읽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방법적인 면에 있어서는 약간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Q.T의 제일 큰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성경해석의 주관화이다. 앞서 말한 대로 성경읽기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러나 Q.T식 성경읽기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오늘 내게 필요한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나에게 주된 관심사가 있다. 그렇기에 말씀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나의 상황과 환경에 적용하는 말씀으로 이해하여 성경의 진리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한 성도가 사업의 연속적인 실패로 깊은 어려움 속에 있었다. 여러 차례 그 성도를 만나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해 왔었는데 어느 날 그 성도로부터 ‘카톡’이 왔다 .“할렐루야! 오늘 아침 말씀을 묵상하면서 빌립보서 4:13절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왔고, 앞으로 일이 잘 풀리게 될 줄로 믿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빌립보서 4:13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을 고난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이해하고,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이 말씀의 전후 사정은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기록한 옥중 서신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있지만, 예수를 믿는 그 믿음으로 하늘나라의 시민권자가 되었기에 감옥 안에서라도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말하는 ‘자족하는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을 그 분께 차마 설명할 수 없어서“함께 기도하겠습니다.”라고만 답장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몇 년을 더 힘들어하는 그분의 현실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주관적인 해석에 대한 성경상의 예로,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이‘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그 송아지 형상을 만들면서“이것이 바로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경배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이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주관과 생각과 애굽에서의 경험으로 하나님을 제단하고, 판단하여‘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열심만 있는 신앙의 모습이다.

여기에서의 근본적인 문제는‘형상’을 만든 것에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하나님에 대한 무지’에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주관과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큰 문제였던 것이다.

Q.T식 성경읽기 또한 이러한 개인의 경험과 주관적인 해석을 따른다면, 성경을 읽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신앙을 형성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Q.T식 성경읽기가 많은 성도들에게 은혜와 힘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주의해서 성경을 읽어가기를 바란다.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 의 주관적 해석보다는 “오늘도 변함없으신 진리의 말씀”으로 이해해서 ‘객관적인 성경읽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기서 성경상의 진리를 한 가지만 더 나누려고 한다. 우리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성경은 십계명에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 것을 말하고 있는가?

성경을 조금만 더 깊이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형상’을 말씀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골로새서 1:15절에 보면,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으로 계시된 유일한 형상이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유일하고, 온전한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만들어가야 하는 자들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 라고 고백하는 바울의 신앙의 요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