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가족이 되어야 진정한 목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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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 사이 평소 가까이 알고 지내온 이웃 교회 성도님 두 분이 소천하셨다. 낯선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 뵈었던 이민 선배요 신앙의 선배며 부족한 우리 가정을 많이 아껴주셨던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이었다. 돌아가신 분들이 노환으로 가신 것이 아니고 아직도 이 땅에서 할일들이 많은 분들이었기에 아쉬움이 더하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깊은 섭리 가운데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일찍 부르시는 것 같다. 천국 환송하는 장례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을 스친다. 그 중에서도 젊은 자녀를 먼저 떠나 보낸 부모님을 대할 땐 마음 한 켠이 시리고 아파온다.

목회자로서 교회를 섬기고 예배를 인도하는 일들이 주 업무이지만 이렇게 종종 인생살이의 기쁨과 슬픔에 깊이 동참해야 하는 순간들이 올 때에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결혼식 주례는 어찌 보면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사역이다. 하지만 장례예식을 주관할 때는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평소에 미처 깨닫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들이 얼마나 우리 삶의 소중한 것인지 되새겨지곤 한다.

한국에서라면 가족과 친지들, 또 친구들이 있어서 가정의 큰 일을 만나도 도움의 손길과 위로를 주고 또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과 친척을 떠나 낯선 땅에 이민을 오는 순간 가족이 그리움으로는 남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곁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것은 한국에 계신 부모형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웃 사촌이란 말이 더욱 실감이 난다.

교회의 식구 중에 어려운 일을 당하면 온 교우들이 가족이 되어서 경조사를 챙겨주고 누구보다 위로가 되어준다. 그래서 이민교회 성도들은 실제로 가족과 같은 존재라기보다 이곳에서는 가족 그 자체인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가족

허물과 죄가 용납되고 덮어지는 곳이 가정이고 가족 관계이다. 성도들에게 교회는 아픔과 상처가 치료되는 곳이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곳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구원이란 죄인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가족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에 우리는 한 형제요 자매요 한 가족인 것이다.

실제로 육신의 가족은 서로 멀리 떨어져 살 수도 있고 부부가 이혼으로 헤어질 수도 있고, 가족이 먼저 죽으면 아쉬운 이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족은 영원하다. 그래서 이 땅에서 내 가족이 구원받아 나와 함께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천국까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은 가장 귀한 축복이다.

에베소서 2:19은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셨다. 권속(members of God’s household)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가족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로 하여금 영적 혈연 관계를 맺게 하였다. 교회 가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이 되어 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벽돌이다. 여기에는 영적 교훈이 있다. 어느 한 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다는 말이다. 만약 건물을 짓다가 벽돌 하나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해보라. 몸의 지체 하나가 상처가 나면 모든 신경이 거기에 쓰여 다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교회 안에서 한 사람이 상처를 받거나 시험에 들면 다른 사람까지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기에“나 한 사람쯤 없어도 되겠지”라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 기억하여야 한다.

로마서 12장 5절“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또 하나는 우리 모두가 아직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서기 전까지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목사의 아들로 암스테르담 대학교 신학부를 마치고, 한때 전도자로 활동했던 화가이다. 그는 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 탄광에서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하곤 하였다.

그가 탄광에서 일하던 중, 어느 광부가 입고 있는 옷에 눈길이 갔다. 이 광부는 포장지로 옷을 지어 입었는데, 그의 잔등에 포장지에 쓰였던 글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깨지기 쉬운 물건이니 취급에 주의할 것”. 이 때 고흐는 큰 깨달음을 얻고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인간이란 정말 깨지기 쉬운 것. 나는 전도자라고 하지만 얼마나 자주 깨어지는가! 날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나를 지켜야 한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깨지기 쉬운 물건과 같다.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더럽혀지기 쉬운 존재이다. 사실 이런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아는 것이 은혜이고, 인정하는 것이 겸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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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서로 만나서 힘든 것을 같이하는 관계

성도의 교제에 사용되는 단어‘코이노니아(Koinonia)’는‘네 아픔에 내가 참여하고, 너의 고통을 내가 함께 나누는 것’이다. 교회에 모여서 교제하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라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 특별한 사람이란 세상에 없다. 관계에 의해서 특별해질 뿐이다.

릭 위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 실린 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험담과 비난과 불평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훔친 물건을 받는 장물아비와 같다.”그 비판을 듣는 것만으로 지금 불평하는 자와 같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유기체이다.

결혼을 미루고 있는 노총각 아들이 아버지께 결혼하면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 아버지가“연애는 서로 만나서 좋은 것을 하는 거야. 하지만 결혼은 서로 만나서 힘든 것을 같이 하는 거지.” 라고 답했다고 한다. 간단한 대답 같지만 상당한 의미가 담긴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은 위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서로 의지가 되고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한 지체가 약하면 어떻게 해서든 세워 주려고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영적 가족의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