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끝에 매달린 리본

내가 일하는 가게에서는 헬륨 풍선을 불어줍니다. 록다운 기간에도 그래서 제법 많은 풍선을 불었고 그게 꽤 많은 매출을 차지합니다.

그날도 온라인으로 미리 주문한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풍선 여러 개를 불어서 입구 쪽에 갖다 놓으려고 커다란 다발을 들고 카운터 쪽으로 나오는데 뒤에서 앞에서 어 어~ 합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내 뒤로 리본이 쭉 달려 따라와 바닥에 길게 늘어진 겁니다.

풍선을 불어 리본으로 하나씩 묶다가 마지막 풍선을 묶은 리본을 자르지 않고 그냥 매달고 급하게 움직인 거죠. 한참을 웃었습니다. 웃겨서, 민망해서. 그 긴 꼬리 같은 리본은 내가 걸어온 길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사는 일도 신발에 실을 매달고 걷는 걸음들이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숨길 수도 없고 섣불리 건드리다가는 오히려 마구 엉키는 그 걸음의 흔적 말입니다.

얼마나 폴짝폴짝 뛰어다녔는지, 얼마나 굽이굽이 돌아 돌아왔는지, 얼마나 외롭고 고단한 길을 걸었는지를 발끝에 매달려 온 기다란 리본 같은 흔적을 보여 주지요. 어떨 땐 힘들고 지쳐서 어떨 땐 신이 나고 즐거워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그저 나한테만 집중하느라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걷던 길을 그때는 몰랐던 풍경과 사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나온 용어인듯한데요. 동선 확인이나 역학조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일 확진자가 생기면 그 감염경로를 알고 또 다른 감염자가 생길까 봐 확진자의 동선을 확보하고 겹치는 접촉자를 찾아내어 검사를 받게 하거나 자가격리를 하게 하거나 합니다.

본인이 진술하기도 하지만 전화기 위치나 카드 사용, CCTV를 통해서 다 찾아냅니다. 그래서 오클랜드에서도 어느 슈퍼마켓이 며칠 쉬게 되었느니, 어디에서 어디까지 언제 몇 번 버스를 탄 승객을 찾는다느니, 어느 지역의 학교가 며칠 쉰다느니 하는 소식을 듣습니다.

사실 이번 방역과 상관 없이도 SNS 활동 등은 한 개인의 성향이나 관심사나 그의 생각 같은 걸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표시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미국 대사관에서는 수년 전부터 비자를 신청할 때 다년간 사용한 SNS 계정을 제출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미국 프로 야구 선수가 그 구단하고 계약할 때 경기 중에는 SNS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었답니다. 아마 보편적인 일인가 봅니다. 그 조항을 어길 경우에는 상당한 금액의 벌금을 내야 한다네요. 그런데 어느 한 선수가 경기 중에 화장실에 가서 페이스 북 어떤 기사에 ‘좋아요’를 눌렀답니다. 본인도 인지를 하고 있지 못하고 그저 습관처럼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다가 그랬을 수도 있죠.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벌금 청구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별일 아닌 듯한 그런 작은 일도 수집되고 기록으로 남게 되고 내 흔적이 됩니다. 서울 보통의 사람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CCTV에 찍히는 횟수가 100여 회 정도가 된다고도 합니다.

무섭고 두려운 것보다 더 힘든 건 부끄러움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떳떳하게 자랑스러운 데까지는 턱도 없이 미치지 못하는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전에 일하던 가게 옆에는 생선가게가 있었습니다. 그 가게 사장님이 우리 가게에 들어왔는데,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생선 냄새가 확 납니다. 좋은 냄새는 아니지만 그 냄새가 그이에겐 멋진 훈장이 됩니다. 그의 오랜 시간과 그의 열심이 보이는 그런 냄새니까요.

그러면서 우리 자주 사용하는 말인 그리스도의 향기를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그 안에 푹 잠겨있어야 그 냄새를 낼까 말입니다. ‘생선을 싼 종이는 생선 냄새를 내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냄새가 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종이 자체에서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지만 무엇을 싸고 있었느냐가 종이 냄새를 결정하는 거죠. 잠깐 흉내를 낼 순 있어도 몸에 밴 냄새를 주변에 풍기게 될 정도가 되려면 그런 척 가장해서는 절대 이룰 수가 없으니까요.

그 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루 아침에 무엇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굽이굽이 걸어온 길, 여기저기에 전한 말들, 누군가에게 내민 손길, 아니면 매몰차게 거절한 손길, 서성이며 기웃거리던 욕망의 자리에조차.

수년 전 한국에서 많이 팔린 책 중에 ‘언어의 온도’란 게 있습니다. 전에 한국 방문 때 아버지 책상에 있길래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따뜻함을 가진 언어생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원리나 방법들과 그렇게 해서 얻게 되는 관계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지요.

흥미진진한 소설도 아니고 심하게 말하면 뭐 새로울 것도 없는 너무 기본인 이야기가 왜 그렇게 팔렸을까요. 그만큼 사람들은 내가 하고 있는 말이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말에서 상처를 주고받는지, 그래서 관계를 망가뜨리고 슬프고 외로워서 그렇다고 여겨집니다. 쉽게 말하고 그 말이 때로는 어떤 사람에게는 화살이 되고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표현을 열심히 하고 살라는 말이기도 한데요. 또 반대로 하면, 말로 하지 않았으면 영 몰랐을 나의 적대감, 나의 미움. 나의 허술함,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까지 양쪽 모두에게 너무나 소모적이니까요.

어떤 따뜻한 말을 하고 살았는지, 어디를 성실하게 열심히 걸어 다녔는지 그게 내가 걸어온 걸음들이고 그 걸음들이 모여 흔적을 만들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갑니다. 그런 것처럼 그때 굳이 하지 않은 말, 그곳에 가 있지 않았던 단정한 걸음이 또 다른 모양의 흔적이 됩니다.

하얀 벽에 페인트칠을 할 때 가장자리에 마스킹 테이프로 꼼꼼하게 가장자리를 잘 붙여 놓은 다음에 벽면을 칠한 후에 붙여놓았던 테이프를 떼면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요.

생각의 크기와 말의 크기가 같다고 합니다. 알고 있는 단어의 숫자만큼 생각할 수 있고 생각의 범위와 방향성이 그 사람의 말을 정한다고 합니다. 쓰고 있는 언어습관이나 글의 태도는 그 사람을 아주 잘 보여주는 표현방식입니다.

지나온 길을 수정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제부터 가게 될 길을 걸을 때는 발끝에 매달린 예쁜 색깔 리본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온 세상에 알록달록한 리본들이 춤을 추는 꿈을 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