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갇힌 그리스도인

회귀본능은 동물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연어가 알을 낳으러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고래에서부터 개미까지 자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접한 곳으로 인생을 살다가 다시 돌아온다.

인간들도 어느 정도 회귀본능이 있는 듯하다. 어르신들이 어렸을 때는 큰 도시로 나갔다가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와서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익숙한 곳이고 편안한 곳이기에 나이 들어서는 편안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추어져야 한다. 사람은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때야 말로 편안함을 느낀다.

즉 우리가 어떤 문화에서 자라왔느냐에 따라 그 문화에 적응하고 그 문화적인 배경에서 벗어날 때 불편함을 느낀다. 그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얼마나 이 땅에 오셨을 때 불편함을 느끼셨을까 생각해본다.

성삼위일체 가운데 완전한 사랑과 연합의 kingdom culture로 존재하시다가 서로 위로 올라가 신이 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셔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편함을 의미했을 것 같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선교적인 차원에서 선교사들은 간접적으로 성육신을 시도한다. 내가 난 그곳의 문화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화로 살아가는 것은 좀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은 선교사님에게 들었다.

이민 사회에서 자란 1.5세대나 2세대 그리스도인으로서 온 족속에게 예수님이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9-20)는 말씀은 사실 나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는 말씀은 아무도 나를 선교사로 부르지 않지만 뉴질랜드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전파하라는 말씀으로 들렸다.

하지만 나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생각해볼 때 나는 한인 교회에 갇힌 나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청년이다. 뉴질랜드 땅에 있지만 내 신앙생활은 한인들 사이에서만 하고 내 작은 교회 공동체를 의존하며 내가 편한 방식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사는 것이다. 좀 다르게 말하면 꿈만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 – 다민족 국가
우리를 뉴질랜드로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1세대 이민 교회의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은 뉴질랜드에 1세대 어른들이 정착할 때 믿던 분들은 믿음을 이어 갈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 안 믿던 다른 한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줌으로 그리스도를 알아갈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영어와 이 나라 문화를 배운 1.5세대와 2세대에게는 다른 계획을 세우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인들의 예배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배우고 또 다른 문화에 그것을 전달해 주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다음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닐까?

냉정하게 볼 때 우리는 뉴질랜드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까? 나는 교회활동을 하면서 이민 교회의 한계에 너무 답답했었다.

친구 중에 외국인 남자친구를 사귄 친구가 있었는데 꼭 교회를 데려와서 전도하고 싶은데 한국말만 하는 우리 교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교회를 옮겨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분명 하나님의 한계가 없으시다고 하는 데 왜 한계가 있는 것일까? 우리 교회는 이 땅에 어떠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야 하는 그리스도인 친구들이 대답해야 할 문제이다.

뉴질랜드의 인구 중에 한국인은 1%조차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한국인 그리스도인은 소수 중의 소수이다. 작은 교회에서 리더를 하며 살았던 나는 나의 정서적인 안정감을 그 작은 소그룹 안에서 찾으려고 했다.

분명한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운데 있었지만 명확한 한계가 있는 상태에서 밖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기보단 교회 안으로 더욱 내 시선이 향했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야 느낀다.

내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우리 교회의 예배가 더 나아지면 채워지겠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모임이 더 커지면 채워지겠지? 성도의 교제가 더욱 끈끈해지면 채워지겠지?”라고 생각하며 계속 교회 안에서 문제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위에서 말했듯 1세대 어른들은 그들의 언어와 문화의 한계 가운데 그들의 소명을 삶으로 살아내셨다. 이제 다음 세대들은 알을 깨고 나가는 새처럼 내가 편안하던 나의 교회의 울타리를 깨고 밖으로 나가는 소명이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한인 교회가 고인 물처럼 썩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영어라는 한계를 깨고 하나님의 나라를 뉴질랜드 전 민족에게 퍼뜨리는 다음 세대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다음 세대가 예수님의 성육신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풀어나가는 특수한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음을 확신하길 원한다.

앞으로 다음 세대가 꾸려나갈 한인교회
그렇다면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사실 나도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모든 세대가 섞여 있는 우리 교회에서 어떤 한 방법이 진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을 놓고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서 봉사로 지역 교회를 섬기며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또 어떤 교회들은 다민족 사역을 하기도 한다. 또 내가 본 어떤 교회는 무슬림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그들과 관계를 만들고 복음을 전하고 또 그들을 위한 성경 공부와 주일 예배를 만드는 모습도 보았다.

어떤 부흥한 교회를 따라 해서 잘되는 교회는 없다. 왜냐하면 방법이 부흥한 것이 아니라 고민한 사람들이 부흥의 씨앗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고민을 통해 다음 세대가 이기적으로 나를 채워줄 편안한 공동체를 만들고 만족하고 우리끼리 하나님의 나라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의 99%인 다민족을 섬길 방법을 모색해보기를 원한다.

또한 1세대 어른들이 다음 세대를 ‘교회의 기둥’이라는 의미의 일꾼으로 교회에 가두는 것이 아닌 이런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고 뒤에서 후원해 주시길 진정으로 원한다.

이렇게 될 때만이 1.5세대와 2세대의 학교에서, 일자리에서, 그리고 삶의 터전에서 안 믿는 아무 외국인에게 “우리 교회는 한국 교회니깐 어차피 초대하지 못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곳이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상해 보라. 내 학교 친구, 외국인 매니저, 또는 함께 일하는 친한 동료에게 당당하게 “이번 주 우리 교회 행사에 와 볼래?”라고 하는 다음 세대의 모습 말이다.

기억하자, 예수님의 성육신은 자신의 불편함이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불편함이 만방의 복이 될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능력과 힘을 다해 나의 권리를 포기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어나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