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중에 가장 장수한 하이든

1732년에 태어났다가 1809년에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하이든은 서양음악사의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음악가 모두를 통틀어 가장 오래 사신 분입니다. 신앙심 깊은 그로부터 음악을 통하여 영광을 받고 싶으셨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건강과 장수를 허락하셨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소개해드린 그의 걸작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들어보면 하나님의 기대가 결코 어긋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동참하여 작곡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단연 그의 대표작이지만 이 곡 외에도 그는 많은 미사곡과 교회음악을 작곡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말씀’
오늘 화요음악회에서 들은 곡은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말씀’이라는 긴 제목을 가진 곡인데 하이든의 걸작 중의 하나이며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옛날 이 곡이 초연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역시’ 하시며 흡족해하시는 모습이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제게는 보입니다.

이 곡은 처음에는 관현악으로 작곡되었고 후에 현악사중주로 개작되었다가 한참 뒤엔 다시 오라토리오로도 쓰였습니다. 하이든의 이 곡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1785년 그가 53세일 때에 스페인의 카디스(Cadiz) 성당에서 작곡 의뢰가 왔습니다. 사순절(四旬節)에 연주할 수 있도록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최후의 일곱 말씀’을 바탕으로 기악곡을 작곡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하이든은 이 의뢰를 수락하고 작곡에 임했습니다.

처음에 엄숙한 서곡이 있고, 다음에 십자가에서 예수가 남긴 일곱 개의 말씀에 해당하는 일곱 개의 악장이 있고, 마지막에는 예수가 세상을 떠난 뒤 일어난 격렬한 지진을 묘사한 에필로그가 붙어 있는 곡입니다. 모두 9악장으로 구성된 곡입니다.

작곡의 귀재인 하이든에게도 이 곡을 작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프레스토의 마지막 지진 악장을 제외한 여덟 개의 악장이 모두 느린 아다지오의 악장이기에 청중이 싫증을 느끼지 않고 계속 음악에 열중하도록 만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완성된 곡은 느린 악장의 연속이지만 다양한 선율 그리고 풍부한 화성과 음색 등을 활용해서 악장마다 극적이고 다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기에 절대로 지루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하이든 스스로도 아주 만족했다고 합니다.

관현악곡으로 작곡된 이 곡은 1787년 비엔나와 성금요일 카디스의 산타 쿠에바 동굴 교회와 대성당에서 가진 초연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믿음 깊은 하이든이 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도움을 받아 작곡하였으니 당연히 그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곡의 구성과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
곡의 구성과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주 Maestoso e adagio에 이어 예수가 십자가의 수난을 당할 때 남긴 일곱 말씀을 표현하는 일곱 곡의 소나타가 이어집니다

제1곡 Largo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

재2곡 Grave e Cantabile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43)

제3곡 Grave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요한복음 19:26-27)

제4곡 Largo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가복음 27: 46)

제5곡 Adagio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 19:28)

제6곡 Lento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

제7곡 Largo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6)
지진 Presto e con tuta la forcha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는 마태복음 27장 51절을 묘사하는 듯합니다.

하이든은 이 곡을 통하여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수난을 당하면서도 우리에게 보여주는 용서, 구원, 사랑, 승리, 그리고 아울러 육신을 가진 인간 예수의 고통과 절망을 표현해냈습니다. 어둡고 격정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정서가 넘치는 이 곡을 하이든은 “음악을 처음 듣는 이에게도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는 곡”이라고 자부했습니다.

조르디 사발(Jordi Savall)과 르 콩세르 데 나시옹(Le Concert des Nations)의 관현악 연주
화요음악회에서는 이 곡을 조르디 사발(Jordi Savall)이 지휘하는 르 콩세르 데 나시옹(Le Concert des Nations)의 관현악 연주로 들었습니다.

조르디 사발은 스페인이 낳은 연주자이며 지휘자이며 또한 고음악 전문가입니다. 한국에도 몇 차례 왔으며 한국에서 그의 이름은 알렝 코르노(Alain Corneau) 감독의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s)’의 사운드 트랙 연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연주에는 예수님의 일곱 말씀의 낭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틴어로 낭독되지만 말씀과 더불어 음악을 들으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마음을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오라토리오로 개작된‘십자가의 마지막 일곱 말씀’
1795년 두 번째 런던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이든은 파사우라는 곳에서 그곳 성당의 악장 요젭 프리베르트가 성악곡으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것을 듣고 흡족해서 프리베르트에게서 가사를 받아 오라토리오로 개작했습니다.

‘오라토리오’(oratorio)란 ‘종교적 극음악’으로 오페라와는 달리 노래 가사로만 극의 줄거리를 전달하는 음악입니다. 하이든의 시대에는 아직 모든 교회음악이 성악으로 연주되는 것이 대세였기에 이 곡을 그렇게 사랑했던 하이든은 오라토리오로도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십자가의 마지막 일곱 말씀’은 오라토리오로 태어났고 관현악 버전과 현악사중주 버전과 합하여 모두 3가지 형태가 되었습니다.

중고 음반 판매장에서 발견한‘오라토리오 십자가의 마지막 일곱 말씀’
오클랜드 시내에 리얼 그루비(Real Groovy)라는 중고음반 판매장이 있습니다. 시내에 나가면 제가 꼭 들리는 곳인데 십여 년 전 그날도 들려서 판을 뒤적거리다 제 눈에 뜨인 판이 허름한 케이스에 들어 있는 ‘오라토리오 십자가의 마지막 일곱 말씀’이었습니다. Josef Messner가 Salzburg Dome Choir와 Mozarteum Orchestra를 지휘하여 연주한 Remington사의 두 장짜리 레코드판이었습니다.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듯’ 그 판을 가슴에 품고 혼자 싱글벙글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턴테이블에 판을 올리고 바늘을 내린 뒤 스피커 앞에 앉았습니다. 곧이어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소리는 천상의 음악이었습니다.

소프라노도 테너도 알토도 바리톤도 청아하고 엄숙하게 그리고 때로는 비통하게 십자가의 우리 주님의 마음을 빚어냈습니다. 그날의 감격은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말씀’은 관현악으로도 현악사중주로도 오라토리오로도 모두 좋습니다. 2020년 새해 조용한 시간에 들어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음악 속에서 주님의 나직한 은혜의 말씀이 들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