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구이칠육육! 392766!”

“냉면이 먹고 싶어요. 맛있는 냉면 드시러 가실래요?”

날씨가 제법 차가운 겨울 한 날,
갑자기 냉면이 먹고 싶어
평양이 고향이신 어르신을 찾아 뵈었습니다.

“누가 이북사람 아니랄까 이 겨울에 냉면을 찾네?”
“냉면은 원래 겨울에 먹는 거잖아요!”
“그래, 원래 냉면은 겨울에 먹는 거지~”

그랬습니다.
고향이 이북이신 우리 부모님은
한 겨울에 살얼음 둥둥 떠있는 동치미 국물에
동치미 무를 얇게 저며 삶은 고기와 더불어
덜덜덜 이가 부딪치면서 먹는 것이
진짜 냉면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덜덜 떨면서 냉면을 다 먹은 후에
뜨끈한 아랫목에 배를 쭉 깔고 누워서
차가운 배를 따뜻하게 덥히는 것이 바로
냉면의 진수라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늘 하시는 말씀은

“이 이남사람들은 냉면을 먹을 줄 모르지 안카써?
냉면을 와이레 이 더운 여름에 먹간?
냉면이래~ 겨울에 먹는 것이 제 맛 아니간?”

그렇게 겨울만 되면 덜덜 떨면서 먹던
살얼음 둥둥 떠있는 동치미 냉면이
차가운 이 겨울날에 왜 갑자기 먹고 싶은 걸까요?
동치미 냉면이 입과 눈에 삼삼합니다.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겨울에 냉면을 찾는
이북따라지 이 여인네가 가여우셨던지
이미 이북식 냉면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가서 뭘 먹간? 내레 동치미 냉면 해주갓써.”
“네? 메라구요?”

엄마 돌아가신 후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집 밥,
이북식 동치미 냉면을 피양 분이 만들어주신 것을
이 이역만리 이 땅에서 먹어볼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동치미 국물에 저민 고기와 동치미 무를 척 얹어
슴슴하게 먹는 이 고향(?)의 맛!
아, 바로 이 맛! 엄마의 손 맛!
따뜻하고 포근한 찐한 사랑의 맛!

이남(?)사람인 남편도 제대로 된 이북식 냉면에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후딱 해치웠습니다.

뜨끈한 아랫목 대신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가며
살아 온 지난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을,
살아가야 할 내일을 오고 가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덧없이 갑니다.

그 중에 오늘의 하이라이트!!

“우리 집에 전화가 여러 대 있지 안카써?
내래 전화국 직원에게 좋은 전화번호를 달라 했지.
그 번호가 뭔지 알간?
000에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다섯여섯일곱여덟!”

“네?”


“000에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다섯여섯일곱여덟!
이거이 우리 집 전화번호라우!”

“네?”


“000에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다섯여섯일곱여덟!
젊은거이 와 말끼를 못 알아 듣간?”


“네?”


“000에 1234 2234 5678”
“아~, 네에~”

저는 국민체조 구령 붙이시는 줄 알았습니다.
학창시절, 아침마다 국민체조 구령 붙이던 아저씨의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다섯여섯일곱~여덟!”

사람들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줍니다.
“우리 집에 전화하려면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다섯여섯일곱여덟으로 하라우.”

모두가 공통으로 하는 말!


“네?”

하나님께서 오늘
“삼구이칠육육! 392766!”하실 때
“네?”
모른 척 그리 대답하지 않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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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