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보면, 백설 공주의 엄마는 죽고 새 왕비는 허영심과 욕심이 많은 마녀였다. 마녀가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물으면 “왕비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없습니다.”고 한다.

백설 공주가 일곱 살이 되었다. 이제 거울은 “백설 공주가 더 아름답습니다.”고 대답한다. 사람은 누구나 새 왕비처럼 관심을 받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관심증후군, 관심병, 더 나아가 사회 관계망에서 관심종자의 줄임 말인 ‘관종’이라는 은어가 있다.

지금은 스마트 폰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마음껏 알릴 수 있다. 마치 백설 공주에 나오는 거울과 같은 ‘가상 거울’이 가능해졌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친구를 맺고 소통을 하다가 좋아요, 댓글, 구독의 조회 수가 늘어나면서 타인과의 공감, 호감을 주려고 좀 더 관심 끌기에 주목한다.

관심을 끌기 위해 얼굴이나 전신사진을 보정하고, 감정의 변화를 노출하고, 여행과 맛집 그리고 명품을 올리고 선전과 선동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반감을 가진 ‘관종’이 댓글로 보기 싫다는 ‘안구 테러’, 갈수록 비호감을 줄여 ‘갈비’, 인터넷상 여론몰이한다는 ‘넷심’이라는 은어가 쓰여지고 있다.
‘좋아요’와 ‘팔로워’가 없거나 적어지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좋아요’와 조회 수를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 ‘가상 거울’에 집중할수록 중독되어 간다. 관심 끌기 위하여 허상과 거짓, 그리고 가짜가 생겨난다.

“거울을 흘끗 들여다보고 떠나가서는 금세 자기가 누구이며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야고보서 1장 23-24절 메시지 성경)고 한다. 꾸며진 거짓 정체성은 허전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그럴듯한 말로 경건한 척하는 사람은 자기를 속이는 자입니다. 그러한 경건은 자기 자랑이자 허풍일 뿐입니다.”(야고보서 1장 26장 메시지 성경)고 분명하게 지적한다.

기독교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관심과 인정 그리고 열등과 우월의 거짓과 가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인정받는 참된 경건은 어려움을 겪는 집 없는 사람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 오염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입니다.”(야고보서 1장 27절 메시지 성경). 이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묻는다면 “바로 당신입니다”할 것이다.

도움을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일은 찬송, 금식, 기도, 예배, 성경공부, 전도를 넘어서는 믿음의 절제와 삶을 통한 섬김에서 비롯된다. 믿음과 행동은 둘이 따로가 아닌 언제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