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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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 청년들 곧, 16세~20대와 결혼을 앞둔 30대 전후의 Youth 또는 Young adult의 목회자로, 상담가로, 친구로, 형, 오빠, 누나, 언니, 동역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결혼을 앞둔 싱글이거나 한 여성의 남편이거나 그 반대로 한 남성의 아내들도 있으며,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집의 가장이며, 지혜로운 어머니와 친구 같은 엄마인 이들이다.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신학도도 있으며, 과일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커피숍에서, 길거리에서, 심지어는 그들만 찾는 공간에서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새벽에도 문제가 생기면 응급실로 달려가는 이 청년 사역자들은 사역자이기 이전에 ‘청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나이가 많아도 청년이고 평생 청년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지옥에라도 달려가서 그들을 끌어 안아줄, 복음과 청년에게 목숨 건 선교사들……

청년 사역자
청년사역자들은 깊은 고민과 딜레마에 빠져있다. 지난 수십 년간 자리잡고 있었던 차세대사역이라는 다음세대사역은 갈 길을 잃고 있다. 잃어버린 길에 서서 지워지고 있는 길들 위에 과감하게 다시 ‘도화선’을 짙게 가르며 이것이‘예수님이 걸으신 길’이라고 청년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길이 아니다. 옛길이며 막혀있던 곳을 터트려 우리에게 알려진 기독교의 보편적 사실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길이다. 곧 ‘예수는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다’ 라는 핵심 명제를 다시 드러내 가로막힌 길의 장벽들을 폭발시켜 나아간다. 이 길 위의 넓고 굵은 장벽이 즐비하여 있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기에 함께 더불어 동역하는 것은 정말로 필수적이다.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그러다 몸 져 눕거나 포기하기 쉽다. 삶이 완전히 꼬이기라도 하면 다시는 다이너마이트를 손에 쥐고 달려갈 수도 없다.

대도시 청년사역 실태
이렇게 오늘 글이 다급한 이유는 그만큼 지금 청년들의 문화와 환경이 황당하고 급진적이며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면보다는 좋지 않은 면들이 더욱 많으며 이러한 사건사고들은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다. 청년사역의 미래의 전망도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IVF청년사역 연구소와 학원복음화협의회에서 기독청년들의 실태들을 조사한 것들을 살펴보면, 복음에 적대적인 세속에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막연하게 느끼게 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다고 한다.

교역자들의 윤리문제는 둘째 문제라 하더라도, 교회는 획일적인 답을 가지고 있고, 이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에 끼우기 식으로 답변을 한다며 그들과 그들의 삶에 파고들어 구체적으로 함께 고민하며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다고 한다. 겉으로만 이해한다는 식인 것이다. 듣는 답변들은 그들이 교회에서 생활하면서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뻔한 답변들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어쩌면 이 ‘뻔한 답’이 진리이거나 사실적으로 맞는 이야기일 텐데 뭐가 문제일까? 그들은 뭔가 코드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생명을 걸만한, 인생을 걸고 죽도록 따라갈 만한 가치를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에서 발견하지 못해서인가? 아니면 자신이 듣고 싶은 답을 이야기해주지 않아서 일까? 후자라면 호통이라도 내야 할 일이지만 전자라면 교회가 회개해야 할 일이다. 연자 맷돌을 메고 물속에 뛰어들지는 못하더라도 십자가를 부여잡고 통회해야 할 일이다. 이는 십자가를 잘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리라! 삶은 없고 흉내만 내는 가짜들은 참으로 회개해야 하는데, 정말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싶다.

그리고 절망, 그러나 다시……
아무리 애를 써도 한 청년의 고민이 3년, 4년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을 때, 여전히 문제들이 앞에 태산처럼 쌓여있고 고민과 기도제목들은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고 나면 ‘이 친구는 앞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불가능은 없다는 말씀 하나로 또 휴대전화로 그 녀석(?)을 부른다. “커피 마실까?” 또 기도하고 그토록 부르짖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는 입술을 터트리고 속에서 화가 돋아 병을 얻고 나면 , ‘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혹자는 그만큼 하지 않고도 능수능란하게 헤쳐나가는 실력 있는 사역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애를 쓰며 해야만 한다면 저기 밀림 속 선교사들처럼 이 도시에서 목숨 걸고 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어찌 되었든 초림 때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흥하심이 재림하여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오늘의 세례요한이 된 우리의 몫이 아닐까 싶다. 평안이라는 이름의 ‘살로메’라는 세속이, 크리스천 청년들과 청년사역자들에게 칼춤이라도 추며 다가 온다고 해도 물러서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한 명의 청년이 그리스도께 돌아오면 기뻐서 흥분된 얼굴을 감추지 못한 것을 목격한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역자들과 함께 하는 것은 오늘 교회의 큰 기쁨일 것이다.

청년을 사랑하는 이들
청사모의 김태원회장(현)의 ‘사역시작과 사역정체성’에 대해서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김태원 목사의 청사모 이야기이다.

청년 사역자 몇몇이 모여 1년동안 비공식적으로 교제와 자료를 나누면서 서로 위로가 되고 사역에도 도움이 되다 보니 멤버들도 더 초청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집회를 계획하게 되어 2010년에 처음 시작했다. (중략) 2010년 첫 수련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수련회 형식으로 시작했었으나 지금은 집회 형식으로 바뀌어 3년째 진행되고 있다. 청.사.모.는 ‘청년 사역자의 모임’의 준말이었지만 ‘청년을 사랑하는 모임’으로 dual meaning 이 가능하다. Breakthrough 집회를 시작하면서 청년들이 1.5, 2세대들로서 뉴질랜드 땅에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언어, 문화, 관계의 문제들과 미래의 불투명함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돌파해 가자’라는 취지로 사용하게 되었다.

사역자들과 그리고 다른 교회의 청년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역과 전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노방전도와 지역선교를 함께 해왔다. 청사모 임원들이 부교역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시간적으로 할애하는 것에 부담이 되고 어려운 점이 많다. 해외한인사역자인 특성 때문에 종종 한국이나 타국으로 떠나거나, 청년사역이 아닌 다른 부서로 옮기는 분들이 있어서 몇 년 동안 꾸준히 함께 할 상황이 마련되어있지 않다.

매년 새로운 임원으로 처음부터 만들어 나아가야 하는 상황으로 담임목회자들이 움직여 주지 않는 이상 이러한 청년선교는 이뤄지기가 힘들다고 본다. 또한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반응하는 것이 부교역자들이 참여하는 이러한 사역에 힘을 실어주고 결국 담임목사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우리의 비전은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마음껏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매달 회의하고 계획하고, 지금 모인 이 집회 팀이 one off가 아닌 앞으로 있을 청사모의 많은 집회와 사역들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연합집회 특성상 장비가 잘되어 있는 큰 교회로 몰리는 현상에 대해 청사모 집회가 앞장서게 될까 봐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매년 유지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여기서 더 부흥하길 바라며 이 땅에서 연합해 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단체가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