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 보타닉 가든

남궁소영 권사<은총교회>

가을에게

남궁소영

가을에게 물어봅니다
넌 어디서 왔느냐고

비를 타고
바람에 실려 여기에 온
가을에게 묻습니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느냐고

높아진 하늘만큼 품이 커진
가을에게 물어봅니다
언제가 제일 빛났었냐고

무덥고 뜨거운 여름을 건너지 않으면
결코 내게 오지 않을
가을에게 묻습니다
서늘하니 좋지않느냐고
묻기만 하는 나에게

가을이
대답대신
가만히 손을 내밀어 줍니다

바람이 불어주는 가을 누리길

어제는 여름이었는데 오늘은 가을이다. 밤새 불어대던 바람이 비가 그 둘을 갈랐다. 어제와 다른 계절인 오늘은 뜬금없고 서늘하다.

가을의 첫날이다. 이렇게 가을이 느닷없이 오기도 하지만 어떤 땐 또 얼마나 살금살금 오기도 하는가

게으른 햇살처럼 느직느직 기지개 켜듯이, 아니면 온 줄도 모르게 있다가 슬그머니 가버려 아쉬울 때도 있고. 그 가을을 올해는 잘 붙잡고 선선해진 공기와 나무들의 미세한 변화들을 놓치지 말고 누려봐야겠다.

지난해 친정엄마를 보내고, 혼자 남으신 아버지나 점점 더 작아지시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나도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다 보니 가을이 꼭 나 같아서 왠지 짠하고 애틋하다.

한국에서의 가을은 뭔가 한 해를 정리하거나 마무리하는 그런 계절이었는데 여기 뉴질랜드에서는 학교 새 학년이 시작되고 새 달력에서 겨우 두어 장 뜯어내고 교회에선 부활절 칸타타 연습이 한창인 그런 즈음에 가을이라니 영 어색한 면이 없지도 않다.

하지만 가을에 새로 시작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열매를 맺는다는 건 씨앗이 생긴다는 걸 의미하니까 어쩌면 더 큰 일을 도모하는 깊은 계절이 가을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가 삶의 지혜에 관해 이야기할 때, 너무 욕심을 부리고 그러다가 상심하곤 하는 우리네 성정을 다스리라는 뜻으로 솔로몬의 전도서에 있는 잠언을 인용하게 되는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는 그 구절 말이다.

때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아름다움, 이루고자 하는 목표,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 같은 것까지도 모두 가볍고 부질없다 생각하게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싶다. 솔로몬의 마지막은 하나님을 잊고 산 시절이었다는 걸 배제하고 말이다.

하지만 솔로몬 부럽지 않을 만큼 많은 걸 누린 다윗은 자기와 자기 백성이 하나님의 전을 짓기 위한 많은 것들을 기쁘게 드릴 수 있음을 감사하면서 그만큼 부요하고 그만큼 높아진 그 자신의 고백을 이렇게 한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역대상 29:12).

사실 난 그 부와 귀가 없으니 굳이 다윗의 기도도 솔로몬의 탄식도 해당 사항은 없지만, 누구나 그 나름의 애씀과 그 분량의 감사가 있지 않겠는가? 헛되다 하지 말고 귀하다 하고 싶다.

요즘 방송된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뭐 하고 젊음을 맞바꾸셨어요? 소중한 걸 지키려고 젊음을 맞바꾸신 거잖아요.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기를 바래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나이 들어 좋아하는 사람이랑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이 태어나 근사하게 자라주고 큰아들은 그의 가정을 이루고 연로해지신 부모님 돌보고 염려하며, 어렵거나 쉬웠거나 늘 함께 걸어온 남편, 이런저런 모양으로 섬기는 교회, 속한 직장이나 모임, 그리고 여러 친구와의 관계들이 그때 마다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이 되어 사랑하고 견디고 참고 바라면서 나이가 이렇게 들었나 보다.

뭐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귀하고 귀하니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가을은 깊어지고 또 다른 계절이 오겠지만 오늘만큼은 더없이 맑은 하늘과 노르스름해지려는 나무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람이 불어주는 가을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