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시험과 고난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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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6:1-3 (New International Version)

Exodus 16:1-3 (New International Version)
The whole Israelite community set out from Elim and came to the Desert of Sin, which is between Elim and Sinai, on the fifteenth day of the second month after they had come out of Egypt.

광야, 시험과 고난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곳

 

의역: NIV 영역 성경을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본다.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엘림에서 출발하여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로 왔으니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두번째 달 십오일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출애굽기 16장1절)

Exodus 16:1-3(New International Version)
The whole Israelite community set out from Elim and came to the Desert of Sin, which is between Elim and Sinai, on the fifteenth day of the second month after they had come out of Egypt.

단어공부
Whole: 전체의, 모든, 온, 온전한 Community: 주민, 지역 사회, 공동체 Set out: 출발하다, 착수하다, 시작하다 Desert:광야, 사막, 황야, 볼모지

말씀의 나눔
광야! 그곳은 한없이 척박하고 메마르며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땅이다. 하지만 성경은 이 광야를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며 그분의 은혜를 경험하는 곳일 뿐 아니라 시험과 고난의 장이라 말하고 있다. 먼저 광야가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피해 도망쳤던 하갈이 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창세기16:7).

애굽을 떠나 광야에서 사십년을 살아야만 했던 “The whole Israelite community” 온 이스라엘 공동체는 그곳에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이제 더 이상 바로도, 그리고 그들의 노력도 아닌 오로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 만으로 살아야 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5-18장). 우리를 구원하시려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 광야는 시험의 장소였고 고난의 장소였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태복음 4:1).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그 광야로 들어가기 위하여 반드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애굽을 떠나야만 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높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그 거친 홍해를 건너야만 했다는 것이다.

한사람 야곱의 후손인 온 이스라엘 공동체가 애굽을 빠져나온 날은 정확하게 그들이 애굽에서 살게 된지 사백삼십 년을 채웠던 날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출애굽기 12:40-41). 여호와의 절기인 유월절이 아빕월, 음력 2월 15일 이었으니 야곱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생존을 확인하고 오랜 흉년으로 인한 기근을 피해 그의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들어간 때가 바로 2월 14일 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온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의 경험을 통해 바로의 종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 “All the LORD’s divisions”로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신분의 변화를 맛보았다.

이렇게 그들이 애굽을 빠져나와 경험해야 했던 것은 광야의 체험이 아니라 먼저 홍해를 건너는 일이었다. 그것은 신분의 변화를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들에게는 “The LORD’s divisions,” 곧 ‘여호와의 군대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출애굽기 13:17-18). 이처럼 우리가 예수를 만나고 신분의 변화를 맛보았다 할지라도 우리 인생에 홍해를 건너는 체험이 없이 바로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혜를 경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조상들이 건넜던 이 홍해를 세례(침례)라 표현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린도전서 10:1-2). 세례(침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미는‘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The whole Israelite community” 온 이스라엘 공동체는 그 홍해를 건너므로 옛사람은 죽이고 이제 그들의 새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이것이 홍해를 통과하게 하심으로 그들이 받았던 그 세례(침례)를 통해 주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영적 교훈이었다. 하지만 홍해를 건너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자아를 쉽게 죽일 수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넜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생명의 눈이 아닌 옛 사람의 눈으로 가나안을 바라봄으로 무려 40년간을 그 광야에서 떠돌며 살아야 했다.

거칠고 황량한 광야! 그곳은 분명 야곱의 후손인 온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혜를 체험했던 축복의 장소였으며 그 광야는 홍해를 건넜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았던 그들의 자아를 죽여야만 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생명을 붙들고 자신의 자아를 죽일 수 없었던 첫 세대들은 그 생명을 모두 광야에 묻어야만 했다. 그렇다. 분명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의 삶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긍극적인 목표는 그 광야가 아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여 어서 속히 이 거친 광야의 삶을 정리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지체들이 되기를…

영어 한마디
The beginning is half of the whole
시작이 반이다.
We are members of the community.
우리는 그 공동체의 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