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무모했고 위대했던 오래된 이야기

32

2016년 9월, 정든 오클랜드를 떠나 런던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유럽 땅, 대체 어떤 생각이었는지. 그 해 6월, 영국은 EU탈퇴를 위한 국민투표를 했고, 간발의 차로‘Leave’결정이 내려졌다(브렉시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Brexit 투표결과가 나오던 그날 비자 지원서를 냈다.

내가 받은 비자는 Tier 5 Youth Mobility Visa로 (소위‘워킹홀리데이’비자), 만 31세 이전의 외국인에게 영국 내에서 자유롭게 2년 동안 살 권리가 주어지는데, 그 해 8월 만 31살이 되던 나로서는 간신히 막차를 타고 턱걸이로 비자를 받은 셈이다.

부끄럽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사실 유럽의 정세나 브렉시트 같은 사회 전반적인 이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다. 늦깎이 이민1.5세, 늦깎이 회계사였던 나는 현재의 삶을 추스르기에도 바빴다.

열등감이었는지, 아니면 겸허하고 빠른 인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수의 내 주변 회계사들이 런던으로 OE(Overseas Experience)를 갈 때도‘나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품을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뉴질랜드에서의 삶을 너무나 사랑했던, 나의 나이와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 그렇게 마음속에서 반 쯤 포기 했었던 나의‘영국 행’은 이런 불안함과 긴장 속에 시작되었다.

현실을 대면한다는 것
나름의 기대를 안고 런던에 도착했으나, 사실 이곳은 나에게 철저히 낯선 곳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회색 빛 느낌의 도시, 흐린 날씨 사이로 보이는 최소 몇 백 년은 훌쩍 넘긴 것 같은 건물들을 보니 뉴질랜드가 얼마나 맑고 깨끗한 나라였던지.‘마침내 런던에 왔구나’를 깨닫고, 철저히‘혼자’라는 현실과 마주 앉아야 했다.

물론 ‘안정’을 버리고 ‘기회와 도전’을 선택했으니 스스로 자랑스러운 것은 있었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하는 것만 같은 불안감과 우울함이 왜 없었겠는가.

어머니의 집밥을 그리워 하며 어설프게나마 밥을 해먹는 시간, 이력서를 아무리 넣어도 전화 한 통 오지 않던 그 한 달 반의 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조금씩 줄어드는 잔고와 함께 늘어나는 걱정,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을 뉴질랜드에 놓고 혼자 이곳에 온 것에 대한 죄송함 같은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나를 깊은 고독의 끝자락까지 나아가게 했던 시간,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고민하는 지점 이었는지도. 서른이 넘으면 뭐라도 하나 이룰 줄 알았는데,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살아내야 하는 현실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한계만 듬뿍인 상황들은 때로는 삶의 무게가 되어 우리를 짓누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은 인생의 가는 길에 그 누구라도 통과해야 하는 ‘터널’같은 일 아닌가. 무책임한 정신 승리가 아닌, 인생의 고독에 끝자락에서 만나는 세계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필요했던 시간이었고, 끝끝내 유익이 되고야 마는 시간들이었다.

열등감과 자존감, 그 한 끗 차이
나는 런던을 배워 나가며,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배웠다. 내가 무얼 원하는지 더 물어보았고, 나의 속 사람을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이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그저 내게 주어져야 할 때가 되었을 때 주어졌다.

물론 치열하게 노력했고 간절히 원해야 했지만, 마지막‘힘’까지 쭉 뺀 초연함을 가진 그제서야 일어날 일도 일어났고 진행 될 일도 진행되었다.

나는 남들에 비해 많이 늦었다고 생각했다. 이민을 늦게 갔고, 졸업 후 취직의 문턱 앞에서 회계사의 길을 한번 포기 했었고, 나이와 상황 때문에 런던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다고 생각 했었으니까. 그리 젊은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가정을 이룬 친구, 부모가 된 친구, 사회적 안정과 위치를 확보한 친구들도 많다.

모두가 소위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이 나이대의 길’에서 나는 뭔가 한참은 멀어져 있는 것 같던 내게 조급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리 늦지 않은 것도 같았다.

돌아간다고 느꼈던 그 모든 길들은 사실 나의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섭리’라는 이름으로 찾아와 내가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언제나 나를 한걸음 나아가게 했다. 돌아가는 모든 길이 ‘런던’을 위한 과정이었나 싶을 만큼 벅찬 일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

우린 아직 젊기에, 혹 조금 늦었다 싶어도 비관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이들과의 비교는 잠시 멈추고, 되려 과감하게 인생의 5년 정도를 대출받은 것처럼 살기로 했다. 열일곱에 이민을 간 서른 하나의 사람이, 열두 살에 이민을 간 스물 여섯 살처럼 살기로 했다.

‘자기합리화’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엄청난 ‘자유’를 맛보았고, 좀 더 꽉 찬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늦었다’고 생각하고 ‘망했다’고 좌절했다면 되려 아무것도 못 했을지도 모른다. 한 없이 젊게 살고 싶지만 철 없어 보일 것과 싸워야 하고, 내 나이에 맞게 가고도 싶지만 그냥 ‘아저씨’가 되기는 싫은, 그 사이의 긴장 속에서 그저 주어진 오늘을 살고 내일에 대한 기대로 ‘지금 이 시간’을 살기로 했다.

한번은 깨고 나와야 하는, 쉬운 듯도 어려운 듯도 한 ‘열등감’에서 ‘자존감’으로의 전환, 그 미묘한 ‘한 끗’을 나는 돌려놓았다. 이 곳 런던에서 부딪히고 깨지면서, 그리고 다시 붙고 연결되면서. 어쩌면 무모한 선택일까 싶던 나의 런던 행이, 어쩌면 위대한 일들의 시작이었다.

영국과 뉴질랜드, 연결의 세계
사람마다 인생의 가는 길이 다르고, 사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를 가나 똑같다. 그래서 나는 가끔 뉴질랜드가 너무도 그립고,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돌아갈 나의 집이라 생각한다.

다만 내게는 런던으로 오게 된 일이 하나의 큰 ‘도약’이었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이 지점에서 앞으로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다.

돌아가는 것이 결코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잠시 주춤 한다고 해서 결코 뒤쳐지는 것이 아니며, ‘신묘막측’한 섭리 속에 살면서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여러 인생의 고리들이 끊어지고 연결되며 당신과 나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의 모든 선택들이 빚어낸 각자의 인생이 때로는 ‘먼지’같이 초라해 보일 지라도 사실은 ‘우주’처럼 무궁무진 하다는 것을. 가벼운 얘기도, 그리고 무거운 얘기도 하면서 가 보겠다. 당신의 낮에 푹 자고, 당신의 밤에 열심히 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