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나 없이도 시작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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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의 방향과 초분시의 시간은 정확한 실체가 없다. 다만 생각의 틀 안에 존재할 뿐이다. 정보와 지식이 인식의 틀 안에 형성되면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준다. 그럼 사고와 사건의 차이를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한다. 사실과 진실을 가려내기 어려워진다.

사고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사건은 의도적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사고와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면 자신의 틀 안에서 주어진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비난하거나 두둔한다. 이 또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전략적으로 제시된 정보에 따르는 행동이다.

보여주기 원하는 것만을 담은 틀 안에서 듣고 보고 느끼고 말할 때 상대방의 의도한 덫에 걸려들게 된다. 이를 반대하거나 거부하면 부정적인 모습으로 보여지도록 왜곡한다. 정확한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갇히고 닫힌 사회의 실상일수록 사실과 진실을 의도된 틀 속에 담아 전달하려고 한다. 조작된 사건을 과대 포장하여 좋은 의도로 보여주려는 선동에 넘어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정치적 이념과 사상을 담은 전략과 전술에 노출된 상황에 바르고 정확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진보는 개선과 개진을 말하고 보수는 안정과 안주를 말하지만 모두가 정권을 잡기 위한 목적과 수단에 불과하다.

집에서 보면, 왼쪽 처마끝은 좌측에 있고 오른쪽 처마끝은 우측에 있다. 집을 정면에서 보면 집 쪽에서 보는 것과 정 반대로 보인다. 또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기독인도 보수와 진보로 나눠져 서로의 논리를 펴고 있다.

성경에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에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이여…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까 불가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마가복음 12: 14 하반절-15 상반절).”

예수님은 “그 외식함을 아시고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마가복음 12:15 하반절)”고 하셨다. 그들이“가져왔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화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다(마가복음 12:16).”라고 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마가복음 12:17 상반절)”라고 대답하셨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하지만 예수님은 로마 주화인 데나리온에 새겨진 황제의 얼굴과 문구에 대하여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씀한 것이다.

또한, 성경에 보면“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나훔 3:18).”고 나훔 선지자가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로 가서 짧은 장송곡으로 예언했다.

앗수리아는 B.C. 612년에 멸망하여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최근에 시청률이 높았던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 유진은 “나라를 빼앗긴 것은 도로 찾을 수 있지만, 나라를 내어준 것은 도로 찾을 수 없다.” 는 말을 남겼다.

세상의 정치와 종교의 오늘은 언제나 나와 상관없이 시작된다. 이는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나훔 3:18).” 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