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주길 놈!

“엄마, 어느 게 더 이뻐요? 엄마가 원하는 놈 데려올게요.”

14년 넘게 키운 우리 집 고양이 향단이가 죽은 후
고양이 새끼 한 마리 데려다 키우자는
아이들의 간청에 못 이겨
4개월된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해서
이름을 ‘두부’라 지었습니다.

나이 들어 굼뜬 고양이만 키우다
천방지축 철없는(?)새끼 고양이를 데려오자
온 집안이 이 녀석 놀이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쓰레기통 비워 놓으면 쓰레기통에 들어가 앉아 있고,
가방 열려 있으면 가방에 들어가 앉아 있고,
비닐봉투 떨어져 있으면 머리통 헤집고 들어가
턱 하니 앉아 있곤 합니다.

집안 일 한다고 왔다 갔다 하면
지는 더 바쁘게 따라 돌아 다니고
좀 쉬려고 누우면 저도 누워 쉼을 얻습니다.

가뜩이나 일 많은 나에게
똥 치우는 일,
밥 주는 일,
놀아 주는 일,
일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그래도 노는 걸 보면 넘 귀엽고 이쁘긴 합니다.

어느 날,
아래층에서 신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처음 찾은 사무실을 보더니 눈의 휘둥그래졌습니다.
위층에서 못 보던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한 것이지요.

사무실 가득 찬 책장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한참 탐색하더니
책상 위 즐비한 컴퓨터 모니터에 눈이 꽂혀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니터 화면을 잡으려고
눈알 돌려가며 손발이 몹시 바쁩니다.

그러다 새로 또 발견한 것이 자판입니다.
자판 위를 사뿐사뿐 지려 밟고 다니다가
그 가운데 턱 하니 앉아 내 얼굴을 빤히 쳐다 봅니다.
그만 일하고 놀아 달라는 거지요.

그러다 어느 날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신문 마감하는 날 아침!
밤 늦도록 편집디자인 작업을 거의 다 해 놓았는데
이 놈이 사뿐하게 자판 위를 걷다가
그만 어느 키를 밟았는지 작업 해 놓은 것이
다 날라가 버렸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여기저기 다 찾아보아도 파일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매정하게도 영구 삭제되었다고 화면에 뜹니다.

아, 이 주길 놈!
야단을 쳐도 펄쩍펄쩍 좋아라 하고,
소리를 질러도 그렁그렁 좋다고 소리를 내는 이 놈을…

비상이 걸렸습니다.
디자인과 편집이야 밤새워 다시 하면 되겠지만
한 장 밖에 없는 날라간 사진은 어찌해야 할지…

허옇게 뜬 엄마 얼굴을 본 아들까지 합세해서
컴퓨터를 온통 뒤지며 찾아 헤맵니다.

그렇지!
한참을 씨름하다
컴퓨터 박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러저러해서 다 날라갔는데 어쩌유?”
“아, 이렇게 저렇게 함 해보셔요.”

시키는 대로 프로그램 다운을 받고
가르쳐준 경로를 찾아 들어가보니…
오~ 다 살려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사진을 살려냈으니 감사하죠!

잠시나마
다 날라갔다고 난리를 피우며
4개월된 고양이 새끼를 죽일 놈 살릴 놈하며
그 놈만 탓했던 제 모습이 참 웃기더군요.

급할 때 한 박자 쉬고,
열 받을 때 두 박자 쉬고,
숨 넘어갈 때 그냥 내려 놓으면 되는데
이게 정말 안 된단 말이지요.

깊게 심호흡 한번 하고
덜된 나를 좀 가다듬어 보아야겠습니다.

이전 기사물고기 문에서 울부짖는 소리, 통곡하는 소리!
다음 기사339호 라이프
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