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셋째 주 찬송/6월 넷째 주 찬송

6월 셋째 주 찬송/604장(통288장), 완전한 사랑
이 아름다운 사랑의 찬송시를 쓴 거니(Dorothy Frances Gurney, 1858-1932)는 영국 런던 태생으로 영국 국교회 목사의 딸로서 배우 출신인데요, 나중에 주교가 된 성직자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거니 부부는 나중에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지요.

거니는 어려서부터 문학에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서 두 권의 시집과 명상에 관한 서적도 출판하였습니다. 찬송 시는 오직 이 한 편 뿐입니다.

이 찬송이 1883년작 이라고 쓰여 있으니까 윈더미어(Windermere)의 풀 와이크(Pull Wyke)에서 살던 25살 때 결혼 전에 쓴 작품입니다. 여동생은 거니보다 먼저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의 가족들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둘러 앉아 이 찬송 저 찬송을 부르며 어느 찬송이 좋을까 순서를 의논하다가‘힘과 머물음’(Strength and Stay)이란 노래를 부르기로 거의 작정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거니는 그 찬송의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살며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노래 가사를 뜯어 고치다가 아예 새로 짓게 되고, 마침내 그 노래가사를 그의 가사로 아주 바꾸어버렸습니다. 이 축시를 짓는데 불과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찬송가 ‘거룩 거룩 거룩’(8장)의 작곡가 다익스(John Bacchus Dykes, 1823-1876)의 곡인 STRENGTH AND STAY에 붙여진 이 찬송가는 이로서 그의 동생뿐만 아니라 결혼하는 많은 분들의 결혼선물이 된 셈이지요.

이 아름다운 곡조 O PERFECT LOVE는 저 유명한 반비(Joseph Barnby, 1838-1896)경의 곡입니다. 반비는 영국 요크(York)태생으로 어린 일곱 살 때부터 요크 대성당 성가대에 들어가 성가대원으로 교육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미 열네 살 때에는 교회 오르가니스트와 교회 성가대 지휘자가 되었다고 하니까 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타고난 신동입니다. 런던에 가서 왕실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셜리번(Sullivan)경에게 배우는 등 작곡과 오르간, 합창지휘로 이름나 웨스트민스터 교회를 위시하여 영국의 유명한 성 미카엘교회, 제임스교회, 성 요한 교회, 안드레교회 등 여러 교회에서 지휘를 했습니다.

246여곡의 찬송가를 비롯해 오라토리오 ‘리브가’(Rebekah), 시편, 칸타타 ‘주는 왕이시다’등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반비 합창단을 조직하여 지휘한다든지, 알버트 홀(Albert Hall)에서 합창음악 감독도 하고, 매년 열리는 바흐축제(Bach Festival)을 비롯해 여러 음악축제의 상임 음악 감독으로 ‘마태수난곡’과 드보르작(Dvorak)의 ‘성모애상’(Stabat Mater), 바그너의 오페라 ‘파시팔’(Parsifal) 등을 영국 초연하는 등 교회음악과 합창 분야에서 대단한 활약을 한 분입니다.

1889년 7월 27일에 죠지 V세의 여동생인 루이스 공주와 파이프(Duke of Fife)공작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이 결혼식 음악을 맡았던 반비는 이미 불려 지던 STRENGTH AND STAY곡 대신에 자신의 곡으로 바꾸어 연주를 하게 된 이래 바로 이 찬송은 영국왕실의 전통적인 혼례찬송이 되었습니다.

재미있죠? 한 찬송이 먼저 한 여류 시인에 의해 가사가 바뀌어 불리다가 곡까지 바뀌어 버렸으니 이제는 원래의 시와 노래는 아주 없어져버린 것 아니겠어요? O PERFECT LOVE란 이름의 이 곡은 SANDRINGHAM이란 곡명으로도 불립니다. 같은 곡조에 제목이 둘인 셈이지요.

‘개편찬송가’(1967년)에 수록된 이래 우리나라에 알려졌는데, 저의 결혼식에서도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 찬송에서 ‘완전한 사랑’을 2절에서 ‘온전한 생활’(O perfect Life)로 표현하고 있는데, 원래 영어 가사는 ‘확신’, ‘부드러운 사랑’, ‘확고한 믿음’, ‘끈기 있는 소망’, ‘마음의 평화’, ‘꿋꿋한 인내’등의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우리 찬송에선 단순하게 ‘믿음’, ‘소망’, ‘사랑’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6월 넷째 주 찬송/462장(통517장), 생명 진리 은혜 되신
로우리(Somerset C. Lowry, 1855-1932)목사가 지은 이 찬송은 “내가 너희에게 행 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15)는 관련 본문과 같이 원제목은 ‘하나님의 아들, 영원하신 구주’(Son of God, Eternal Saviour)입니다.

이 제목은 영어 찬송가에서 바로 1절과 마지막 절인 4절 가사에 꼭 같이 쓰여 지고 있죠. 이 찬송에 있어서 특별히 눈에 띄는 단어는 2절에 나오는 ‘본’(本, example)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에 앞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날 밤 최후의 만찬 때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는 손수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기시고 하신 말씀이지요.

남 섬기는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 혹시 발 씻을 겨를도 없이 키 재기를 하고 있었던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이 손수 팔을 걷어 부친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가 내 발을 씻어줘야 마땅하지.” “내가 무엇이 그들보다 모자라서 저들의 발을 씻어줘야 돼?” “내가 저들의 종인감?”

베드로가 극구 자기 발을 예수님이 씻지 못하게 한 것도 그런 뜻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의 발을 씻는 법이지. 선생님께 내 발을 맡기다니. 절대로 나만은 그럴 수 없어.”

낮아져 종의 모습으로 사신 주님의 최 측근인 그 마저 마지막 날 밤에 이르도록 주님의 교훈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죠.

“무릎 꿇어 낮추어 고통 받는 낮은 자들의 발을 보라. 그리고 그들의 마음으로 발을 만져 주어라. 그들의 키만큼, 아니 그보다 더 발만큼 낮아질 순 없겠니? 부탁한다.”는 간절한 무언의 액션은 아니었을까요?

찬송 시를 지은 서머셋 로우리 목사는 많은 찬송을 쓴 로버트 로우리(Robert Lowry, 1826-1899)목사와 다른 분입니다. 영국의 홈우드(Holmwood)에서 목회를 할 때인 1893년에 지어 이듬해인 1894년 ‘하나님 뜻’(God will)이란 잡지에 발표했는데, 그분이 지은 찬송은 우리 찬송가에 이 한 장만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1절과 4절 처음부분에서 grace와 race의 [에이스], plead와 need의 [이드], 2절에서 live와 give의 [이브], sea와 Thee의 [이], 3절에서 Peace와 cease의 [이스]와 pain과 gain의 [에인], 4절 후반에서 one과 done의 [언] 등의 발음에서 시적 감흥이 넘치죠.

곡명 IN BABILONE는 네덜란드 민요인데, 로우리 목사가 작사 발표한 10년 뒤 1904년에 출판된‘고금찬송가’(Hymns Ancient and Modern)에 곡이 붙여 수록되었습니다.

나는 이 찬송을 참 좋아합니다. 우리찬송가에는 거의 모든 내용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치중되어 있고, 신자로서 어떻게 살아야할까에 관한 찬송은 극히 드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찬송은 참으로 귀한 찬송이지요. 또 이 찬송은 우리나라 교회에서 잘 불리지 않고 있는데, 성숙한 신앙인의 차원 높은 찬송이기에 많이 애창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찬송의 원래 가사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도 한번 불러보면 알 수 있듯이 운(韻, rhyme)이 규칙적으로 딱딱 맞아 떨어져 아름다운 맛을 냅니다.

1.Son of God, eternal Saviour, source of life and truth and grace, Son of Man, whose birth incarnate hallows all our human race, thou, our Head, who, throned in glory, for thine own dost ever plead, fill us with thy love and pity; heal our wrongs, and help our need.

2.As thou, Lord, hast lived for others, so may we for others live;freely have thy gifts been granted, freely may thy servants give: thine the gold and thine the silver, thine the wealth of land and sea, we but stewards of thy bounty, held in solemn trust for t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