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둘째 주 찬송/579장(통304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지키게 된 것은 쟈비스(Anna M.Jarvis)여사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그녀는 어머니를 기억하고, 그 사랑에 감사함의 표시로 카네이션 한 송이를 가슴에 달아 드리는 운동을 폈습니다. 그것이 온 세계에 확산되어 국제협회도 생겨나게 되고, 드디어 그 분은 ‘어머니 날의 어머니’로 불리기까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 날과 어머니 날이 제정되면서 교회에서도 오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로 지키게 된 것 아닙니까? 언젠가부터 부모님을 함께 기리는 ‘어버이 주일’로 되었지만요.
이 찬송의 시를 작시한 주요한(朱要翰, 1900-1979)은 평양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비범한 재질과 치밀한 관찰력으로 신동으로도 불렸는데요, 평양의 선교사인 마포삼열(Moffet) 목사의 비서 겸 조선어 교사로 채용되어 그 때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주공삼(朱孔三)목사가 일본 동경 조선인교회 목사로 부임하면서 명지학원에서도 공부했습니다. 그는 이미 중학시절에 ‘창조’지에 작품을 싣기도 했습니다.
3.1 독립운동 이후 중국 상해에 건너가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지의 편집도 하면서 독립운동의 비밀결사인 흥사단에 입단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호강대학에서는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학창시절, 합창단, 축구부, 야구부 주장, 영어 웅변부 주장, 교내잡지 영문 주필, 주일학교 위원장, 과학클럽회장 등을 하였고,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역임하였습니다.
해방 후에는 경제인으로 활동을 하여 한국무역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를 창설하였고, 국회위원을 거쳐 부흥부, 상공부 장관까지 역임하였습니다. 그는 ‘새벽’을 비롯한 시와, 시조, 수필, 평론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기었으며, 찬송가는 이 찬송 한편을 남기고 있습니다.
찬송가의 윗부분 작사 작곡자 이름 옆의 작사 작곡 년도가 1967년으로 되어있지요? 한국찬송가위원회가 1967년에‘개편찬송가’를 편집하면서 위촉하여 태어난 찬송입니다.
작곡가 구두회(具斗會, 1921- )는 충남 공주 태생으로 평양요한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일본 동경제국고등음악학교에서 수학하였고, 미국 보스턴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평양의 의성학교, 대전 사범학교, 배재고등학교에서 교사를 거쳐 귀국 후에는 숙명여대에서 작곡과 교수로 학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교회음악협회 회장과 한국음악협회 회장도 역임하였으며 남산감리교회에서 성가대지휘와 장로로 평생을 봉사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매년 한 번씩은 이 찬송을 부르게 되지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빛 바랜 어머니의 초상을 보는 듯합니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헌신적으로 사신 신앙의 어머니, 아들 앞에선 언제나 자상하시던 모범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들려옵니다.
그래서 이 찬송의 클라이맥스는 9째 마디 “내가 울 때 어머님은 주께 기도 드리고”의 높은 선율입니다. “주께 기도 드리고”의 ‘도도도시레도시’가 어머니의 울음 섞인 간절한 기도소리 같지 않습니까?
2절에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읊으시는 말씀에 영생의 기쁨이 느껴지고, 3절에선 꽃이 만발한 천국이 보이며 용기가 솟아오릅니다. 4절에선 “온유하게 살아라. 올바르게 살아라. 굳세게 살아라”가르치신 어머님의 교훈이 들려옵니다. 이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에 힘입어 드디어 일어섭니다. “예, 어머니의 뜻 받들어 살겠습니다. 보람 있게 살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5월 셋째 주 찬송/574장(통303장) 가슴마다 파도 친다
나는 학교선생을 오래 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로 출발하여 34년을 줄곧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요, 지금도 내 나이 보다는 수십 년 아래의 청년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죠. 그러다 보면 부러울 때가 참 많이 있어요.
하루 종일 지나다 보면 나는 힘이 모자라 허덕이는데 젊은이들은 며칠 밤을 새워도 힘이 남아돕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불필요하다 싶은 힘도 많이 가지고 있어 그 힘을 주체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때도 있지요. 그러다 보니 어쩌다 실수도 하게 되고, 주위의 유혹에 호기심도 많아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되기도 합니다.
이 찬송은 젊은이들의 파도같이 넘치는 기상, 화산같이 타오르는 힘, 폭포같이 줄기차게 뿜는 피를 어떻게 주체할까를 노래합니다.
이 찬송의 작사 작곡 년도가 같은 1967년이지요? 1967년 하면 ‘개편찬송가’가 나온 해이니까 이 찬송도 찬송가위원회의 위촉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찬송의 작사자 반병섭(潘秉燮, 1924- )목사님은 만주에서 8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뒤이어 13살 때 어머니마저 잃고 고아로 자랐는데요, 그런 가운데에서도 16살 때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이 후 주님의 가르침을 본받으며 늘 희망에 넘치는 삶을 살면서 건실하게 자랐습니다.
그는 해방 후 월남하여 한국신학대학과 일본 동지사대학 대학원, 미국 루터신학대학원을 거쳐 캐나다 토론토 한인연합교회에서 이민 목회를 하였습니다.
이 찬송에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개편찬송가’ 편집을 위한 찬송가위원회에서는 청년을 위한 찬송이 없어 당시 시인이었던 반병섭 목사님께 작사를 부탁 드렸는데요, 반 목사님은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무진 애를 쓰던 끝에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즉시 응답을 받지 못하고 일본 동경 동지사 대학에 유학을 갔는데요, 어느 날 잠자리에서 환상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눈앞에 끝없는 넓은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엄청난 파도가 밀려오는 광경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너무나 벅찬 마음에 벌떡 일어나 그 즉시 펜을 들어 그가 본 환상을 종이에 적어내려 갔는데, 바로 그 내용이 ‘하늘같이’, ‘화산같이’, ‘대지같이’, ‘넓고 깊자’, ‘줄기차자’, ‘우람차자’ 같은 단어입니다.
이는 또한 돌이켜보건대 그가 젊은 시절 만주 벌판에서 키워왔던 비전이고 주님께서 용기를 주셨던 말씀이었다고 하는군요. 그야말로 젊은이들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이 힘찬 표현들이 부르는 이들로 하여금 불끈불끈 사명이 일어나게 하고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의 피를 끓게 합니다. 이 땅 위에 태어난 것이 하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당당한 외침이 전 4절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곡명 우리들의 젊은이는 이동훈(李東勳, 1922-1974) 교수가 지었습니다. 그는 섬세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음악가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합창지휘자인 그는 필그림 합창단을 창단하여 합창의 묘미를 자아낸 우리나라 교회음악운동의 선구자이지요. 만년에 찬송가를 비롯하여 성가합창곡을 많이 작곡했고 숙명여대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그의 작품이 3편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345장) ‘가슴마다 파도 친다’(574장),‘어둔 밤 마음에 잠겨’(582장)가 그 것입니다. 박력이 넘치고, 행진곡풍인 힘찬 멜로디가 더욱 힘이 솟게 합니다.
프레이즈의 시작마다의 붓 점으로 출발하여 ‘우리들의 푸른 꿈’에서 반음계적으로 솟아오르는 진행도 몰려드는 파도 같고, 분출하는 화산 같습니다. 음역(音域)도 넓어 ‘도’에서 ‘파’까지 이르는데, ‘주 만 따라’, ‘주 뜻대로’, ‘충성되게’에서 젊은이의 약동을 마음껏 나타내고 있습니다.
회중들이 부르기에는 ‘다’(C)장조로는 다소 높기 때문에 내림 나(Bb)장조로 이조(移調)하여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