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나 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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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는 교수가 히브리어와 헬라어 공부하라고 책을 보내왔는데 히브리어랑 헬라어 공부 좀 같이 해볼까? 같이 하면 재미있을 거 같은데.”

“오우~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재미있겠다. 근데 난 히브리어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별 관심은 없구 헬라어는 다시 도전해 보고 싶네요. 내가 헬라어는 학부 때 쫌 했었거든.”

“좋아, 그럼 같이 함 도전해 보자구.”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근데~, 그런 문법책 같은 거 백 날 해봐야 별로 소용없는 것 같아요. 실질적으로 필요한 걸 해야지.”

“예를 들면 어떤 거?”
“음~, 성경 이 구절은 헬라어 원어로 이러이러한 뜻이다, 구약의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말하자면 이러이러한 말이다, 뭐 이런 거요”

“하긴 그러긴 해.”
“아, 이 참에 헬라어로 성경쓰기를 해볼까?”

학부 때 헬라어 매력에 흠뻑 빠져 그리스로 유학 가는 것이 나의 큰 꿈이기도 했었습니다.

“왜 미쳐 생각 못했을까? 헬라어 성경쓰기 한다는 걸!”

교회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남편과 함께
이러 쿵 저러 쿵, 히브리어니 헬라어이니
둘이서 새로운 도전에 신나게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뒷 좌석에 앉아 잠잠히 듣고 있던 아들 녀석이
툭 내뱉은 말 한 마디!

“엄마 아빠는 영어공부나 더 하세요! 히브리어 헬라어 보다!”

깨갱!

아들 녀석의 한 마디에
히브리어도, 헬라어도 물 건너 가고 말았습니다.

히브리어를 공부하겠다느니…
헬라어로 성경쓰기를 하겠다느니…

시작하기도 전에 흥분하며 들떠 있던 우리 부부는
더 이상 한 마디도 못하고 무지 민망해 하며
기어가는 소리로…

“맞어~, 우린 영어공부나 해야지 무슨…”

아, 이노무 영어…

참, 이 대책 없는 엄마 아빠가
그렇게 영어공부 하라고 해도 신경도 안 쓰면서
또 딴짓(?)을 하려고 작당(?)을 하고 있으니…

아들 말에 민망해진 나는 가만히나 있으면 될 걸!
운전석에 앉은 남편의 어깨를 턱 잡고는

“근데, 당신은 왜 영어 공부를 안 하는데?
나야 그렇다 치고 당신은 조금만 하면 지금보다
더 잘할 거 아녀?”

“엄마는 남 얘기 할 거 아녀요. 엄마가 더 문제지~”

깨개갱!!
가만히나 있을 걸…

에휴~, 이노무 웬수 영어…

그런데 제가 말입니다.
단어 하나도 안 외우고
영어 공부는 하나도 안 하면서
맨날 영어 안 된다고 탓만 하고 있더란 말이지요.

성경 한 장도 안 읽고
기도 한 마디도 안 하면서
맨날 믿음이 안 자란다고 탓하는 것처럼요.

아직도 아들의 그 한 마디가 귀에 쟁쟁합니다.
“영어공부나 더 하세요. 딴 거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