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인터뷰, 부활에 대해

이제 부활한 예수를 만나 2차 인터뷰를 시작할 때이다. 나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 조반을 준비하고 같이 아침 식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예수를 찾아갔다. 제자들과의 만남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다 나는 예수와 별도로 자리를 같이 했다.

부활한 그의 모습은 십자가 처형 전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만났을 때와 전혀 달랐다.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초라하거나 왜소해 보이지 않았으며 형언할 수 없는 광채가 느껴졌다. 그의 외모는 십자가 처형 이전에 비해 완전히 달라졌으나 그가 예수라는 느낌은 이상하게 똑같이 들었고 쉽게 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무척 평안해 보이십니다.”
“흐음, 이 땅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쳤고 곧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에 그러겠지.”

이전보다 훨씬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공식적 인터뷰의 일관성을 위해 이전에 질문했던 방식 그대로 반말에 가까운 딱딱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십자가 죽음 이후 부활 때까지 3일 동안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는가?

“말 그대로 죽어서 음부에 갔다가 왔노라.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해 나를 그곳에서 건져낼 때까지 나는 그곳에서 복음을 선포(베드로전서3:19)하였고 내가 건짐을 받을 때 그곳에서 구원을 기다리던 모든 신실한 믿음의 하나님 백성들이 함께 건져졌노라.”

당신의 죽음이 인간의 죄에 대한 사함을 의미한다면 왜 부활이 있어야 하는가? 대속적 의미를 가지려면 계속 죽은 상태로 있어야 하지 않는가? 진짜 속죄 양처럼…

“내가 너희와 같은 인간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즉 한 의로운 인간이 다른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고 해서 그가 그런 의로운 행위 때문에 다시 살아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정한 기간 동안만 생명을 갖게 되어 있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을 위해 죽는다는 의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남은 생명 기간 즉 여생을 타인에게 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타인이 그 사람의 여생만큼을 살게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원래 존재했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나의 본질이다. 즉 나는 생명 그 자체이며 결코 죽을 수 없는 존재이다. 내가 비록 인간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 죽음의 고통을 겪기 위해 인간으로 이 세상에 왔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나에게는 죽음이 결코 계속적 상태로 지속될 수는 없다. 인간으로서 완전한 죽음의 고난을 겪어야 했기에 3일간 죽은 상태가 되었고 그것으로 충분히 인간의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며 아버지의 공의적 진노를 풀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부활은 의로운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이 아니라 실제로는 원래 나의 자리로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성령을 통해 인간으로서 죽은 나를 살려내시는 것을 너희에게 보여줌으로 너희도 또한 이런 구원이 있을 것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만 있고 이런 부활을 통한 영생의 약속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듣고 보니 부활과 영생이 없다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의 죄를 대신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그의 죽음이 정말 우리의 죄를 대신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야말로 그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신성모독죄로 죽어 마땅해서 죽었는지 누가 안단 말인가? 부활이 없다면 아무리 좋게 보아도 그의 십자가 죽음은 한 의로운 사람의 억울한 죽음 이상을 넘지 못한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을 이겨낸 부활이 있기에 예수가 신적 존재임이 증명된 것이고 그의 죽음은 인간의 죄를 대신할 정도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활했으면 이 땅에 계속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지 않은가? 왜 당신은 부활해서 제자들에게 다시 하늘 나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것을 부활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부활이라는 것은 사망의 늪에서 건져짐을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육신의 부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 즉 육신은 사라진다는 말이다. 죽어서 음부에 내려가는 것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이다.

부활은 그 영혼이 음부로부터 건져짐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음부로부터 건져진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은 다시 죽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천국을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천국에 있는 하나님이나 천사들이 죽은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영원히 사는 존재들이다.

나는 하늘 나라로 올라가면서 십자가 죄 사함의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죽어 음부에 머물고 있던 나의 모든 백성을 되살려 모두 데리고 천국으로 갈 것이다(시편 68:18, 에베소서 4:8). 그 가운데는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이삭과 야곱 그리고 다윗이나 최근의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하나님 백성이 된 자들 모두가 포함된다.

이들도 죽음의 늪에서 건져짐을 받으므로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부활하여 계속 이 땅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땅에서 구원 사역이 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때문이다. 즉 내가 인간의 육신으로 이 땅에 온 것은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너희를 구원하기 위함이다(요한복음 3:17).”

왜 본격적인 구원 사역을 위해 당신은 이 땅에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하는가?

“이미 말했듯이 부활한 나는 이전의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못박힌 나와는 전혀 다른 역할과 권한이 주어졌다. 지금의 나는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 받았다(마태복음 28:18).

즉 지금 나에게는 이 땅을 심판하고 다스리는 권한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내가 이 땅에 계속 있다는 것은 지금부터 심판을 시작하라는 말인데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우리의 구원 사역이 끝날 때까지 하늘 나라 아버지 우편에서 함께 그 과정을 지켜볼 것이다. 나의 십자가 죽음과 3일 후 부활한 것이 복음 즉 좋은 소식(Good News)이 되는 것은 너희 죄인들에게 죄 사함과 영생을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제자들을 통해 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라고 명령하는 것이고 온 세상으로부터 이를 믿는 나의 백성을 모을 것이다. 그 일이 다 끝났을 때 끝이 올 것이고 그때 나는 다시 이 땅에 내려와 최후의 심판을 내릴 것이다. 그 이후에 비로서 이 땅에서 나의 백성들은 육신의 부활이라는 마지막 은혜를 입을 것이고 그때 나의 왕국이 이 땅에 완성될 것이다.

그 동안 이 땅에서는 나를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가 세워질 것이고 그 교회를 통해 복음이 계속 전파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땅을 떠나야 약속했듯이 성령을 보낼 수 있으며 그가 세상 끝날까지 이 일을 하실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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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웅
연세대 졸업. 한국 워킹우먼 전 편집장. 해밀턴 지구촌교회에서 집사로 섬기고 있는데, 2016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2년 여의 항암 투병기간을 보내던 중 자신이 만난 예수를 인터뷰 형식으로 쉽게 풀어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복음의 핵심을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썼다. 2018년 1월 2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의 유고를 분재한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른 시각의 기사가 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