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어보니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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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얼굴이라고 만나면 반가워 한다. 전화와 문자를 보낸다. 밥도 사준다. 자랑하면서 꼭 한번만 가자고 한다. 안면 때문에 마지못해 따라간다. 가면 친절하다. 일어나라 하더니 사랑한단다. 이를 두고 당신을 향한 특별한 초청이란다. 그러고는 끝이다.

그의 삶을 보면 가까이 하고싶지 않다. 다시 가지 않으면 차갑다. 그럼, 그 동안 친절했던 그 모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제는 친절도 상품이 되었다. 다시 그때가 되면 친절로 다가온다. 이로 인해 ‘안나가’ 교인이 생겨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당신 때문에 알게 되는가 아니면 당신 때문에 멀어지게 되는가 보라.

수평이동이라는 현상으로 교계에도 반드시 먹이사슬이 존재한다. 이제는 작은 교회에서도 한 영혼 전도를 안 하려고 한다. 전도해도 예수 믿고 침례 받고 교인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사업이든 자녀교육이든 어떤 이유로든, 중간 규모의 교회로 옮기거나 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로 이동한다. 건물, 보스, 조직으로 종교의식은 있어도 다툼이 나면 갈라지고, 결국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지 못하고 안나가 교인만 늘어난다. 성경보다 자기가 옳은 대로 산다.

지금 ‘미투’가 한창이다. 하지만 성경으로 보면 ‘유투’는 있는가 보라. 뿌리 깊은 왜곡된 성의 정체성이 드러나고 있다. 성은 돈과도 밀접한 상호관계로 되어 있다. 또한, 성과 돈의 연결고리로 인해 일도 부정과 부패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빠르게 변하는 물질의 세상을 영혼이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다. 그 틈새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며, 먹을 것과 보는 것이 있고 탐하는 것이 있고, 그리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유혹이 찾아온다.

물질이 많아짐으로 마음이 높아지고, 뜻이 강퍅하여 교만으로 치솟아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있다. 지금은 바벨론 포로시기의 왕과 종교지도자의 때와 같다.

이 때에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와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벽에 쓰여졌다.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고 하고,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고 하며,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 한다(다니엘 5장).

저울에 달아서 보니 부족하다는 것은‘함량 미달’이라는 말이다. 지금은 하나님 앞에서 어느 누구나 함량 미달의 시대를 살고 있다. 아모스 시대에도 다림줄로 재어본들 바르고 옳은 것이 없었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전도서 5:8)”

백세 시대라고 노인은 많으나 진정한 어른은 보기가 어렵고 힘들다.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욥기 32:9)” 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욥기 32:8)” 라는 엘리후의 말을 들어보라.

이번 고난 주간과 부활 주일을 맞이하면서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역대하 7:14)” 는 말씀처럼 나는 죽고 예수로 거듭나기를 강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