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째 주 찬송/ 25장 면류관 벗어서

3월 둘째 주 찬송/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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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로 ‘코람 데오’(Coram Deo)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이란 뜻이지요.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있으면 이러한 하늘나라의 광경이 늘 펼쳐져 보이지 않겠습니까?

보좌에 둘러선 천사들이 찬송하는 가운데 우리 삶에서 얻어진 값진 보석들을 가지고 나아가 주님 머리에 쓴 면류관에 달아드리는 광경 말입니다.

찬송 시 ‘면류관 벗어서’는 영국의 말덴(Malden) 태생으로 영국국교도로서 나중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브리지스(Matthew Bridges, 1800-1894) 신부가 지었습니다. 1851년 출판된‘마음의 찬송’(Hymns of Heart)에 6절 가사로 발표했습니다.

1절은 ‘많은 면류관들을’(계시록19;12), 2절은 ‘동정녀의 아들께’, 3절은 ‘하나님의 아들께’, 4절은 ‘사랑의 주께’, 5절은 ‘평화의 왕께’, 6절은 ‘만세의 주께 면류관을 드리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후 알포드(Alford)의 수도원장인 트링(Godfrey Thring, 1823-1903)이 6절까지 면류관이 여섯 개인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생명의 주님께’ 드리는 한 절을 더 지어 추가해서 7절 찬송으로 만들었습니다.

원래 7이란 숫자는 하늘의 숫자인 3과 땅의 숫자인 4를 합한 완전 수 아닙니까? 우리 찬송가에는 원문의 1절과 4절, 그리고 5절만을 택하여 3절만으로 간추려져 있지만요.

브리지스가 지은 찬송은 우리 찬송가에 ‘면류관 벗어서’(25장, 통25장)와 ‘내 마음 주께 드리니’(380장) 두 편만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는 앞서 몇 회에 걸쳐 성 어거스틴이 정의한 ‘찬송의 3요소’인 ‘찬미’, ‘노래’, ‘하나님께 드려짐’에 대하여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과 다음 회에서는 음악적인 면에서 찬송가(Hymn)와 복음가(Gospel Song)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찬송의 노랫말이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가장 아름다운 말, 곧 시이어야 하듯이 멜로디와 화성, 곧 음악도 역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어야 합니다. 찬송에 대한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개념은 순음악(純音樂, 혹은 고전음악, Classic Music)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 음악 시간에 배웠듯이 음악을 크게 순음악과 경음악(Light Music)으로 분류합니다. 순음악, 즉 클래식은 ‘예술적 가치가 높은 음악’이라고 정의합니다.

예술적으로 수준 높은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기에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술행위로 드려져야 하지 않겠어요. 성전의 모든 기물들이 아름답고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것과도 같이 말입니다. 시편 96편에 그 성소에 거룩함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곡명 DIADEMATA는 그리스어로‘면류관들’이란 뜻입니다. 영국 캔터베리(Canterbury)태생의 엘비(George Job Elvey, 1816-1893)경이 작곡하여 1868년‘고금찬송가’(Hymn Ancient and Modern)에 발표하였습니다.

엘비 경은 어려서부터 교회 성가대원으로서 교회음악의 정통교육을 받아 뛰어난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19세 때 이미 영국황실의 성 죠지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겸 지휘자가 되어 47년간이나 봉사하였습니다. 그는 “장엄하고, 감정을 드높일 수 있고, 교회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나 높이 솟은 아취 같이 고무적이며 영감을 지녀야 한다”는 교회음악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이 찬송을 부르면 그와 같은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엘비 경이 작곡한 오라토리오나 예배용 합창곡과 독창곡 등 많은 작품이 있지만 찬송가는 많지 않고, 우리찬송가에는 ‘면류관 벗어서’(25장)와 ‘감사하는 성도여’(587장) 두 곡이 실려 있습니다.

이 찬송을 부를 때에 둘째 마디에서‘면류관 가지고’의 높이 솟은 ‘고’음은 원래 영어찬송가에서 ‘crowns’, ‘love’ ‘God’로 되어있습니다.

또 “내 혼아 깨어서 ”의 두 마디는 2도씩 상승모방으로 “주 찬송 하여라” “온 백성 죄를 속하신”으로 발전하여 주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는 듯한 움직임을 주어 더욱 실감이 납니다.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우연히 라디오에서 미국의 어느 남성사중창단이 매우 빠르고 경쾌하게 부르는 이 찬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정교한 앙상블과 하모니가 흥겨웠고 재미있었습니다. 재즈가 유행했던 때인데 이 노래가 재즈 스타일인데 신기했고, 경건하게 불러야만 되는 줄 알았던 찬송을 재즈로 부르는 데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 찬송은 셋째 마디의 ‘변하여 새사람’을 시작으로 후렴의 ‘예수 내 맘에’ 등 ♪♩ ♪ 리듬인 당김 음(syncopation)이 주를 이루는 일종의 재즈(jazz)라 할 수 있습니다.

재즈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 미국의 남부, 뉴올리언스 변두리의 흑인 및 크리올(Creole, 흑인과 프랑스인과의 혼혈)들 사이에서 연주되어 형성된 춤이나 퍼레이드를 위한 음악 등에 1914년경에 누군가가 jass 또는 jas, jaz 등의 명칭을 붙인 것이 그 시초입니다.

곡명 McDANIEL은 재즈리듬을 사용해서 가브리엘(Charles Hutchison Gabriel, 1856-1932)이 1914년에 작곡을 했습니다. 이 찬송을 음악적으로 경쾌하게 부르기 위해서는 당김음 처리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찬송을 부를 때 “변하여 새사람 되고”에 ‘변’자와 ‘새’자, 그리고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에서 ‘주’자와 ‘내’자에 악센트를 주어 전혀 다른 노래가 되곤 하는데, 그러면 음악의 맛이 뚝 떨어집니다. 리듬을 잘 타기 위해선 몸을 가벼이 흔들며, ‘변’자와 ‘새’자, ‘주’가 없는 듯이 약하게 살짝 하고, ‘하여’와 ‘사람’그리고 ‘예수’에 악센트를 주어야겠지요.

이 찬송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노래의 첫 모티브와 마지막 단 “물밀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에서 ‘미파솔라시도레미파솔’ 하며 한 옥타브 반이나 순차진행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용솟아 쳐 올라오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후렴 처음에 “주 예수” 의 ‘주’자도 이 노래에서 가장 높은 음으로 되어 있어 높으신 주님을 나타내기도 하고요.

우리는 몇 주에 걸쳐 성 어거스틴이 정의한‘찬송의 3요소’에 대하여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복음가(Gospel Song)의 음악적인 면을 조명해서 살펴보도록 하죠. 무엇보다 복음가는 세속음악 스타일인 경음악(Light Music)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순음악을 ‘예술적 가치가 높은 음악’으로 정의하는데 반해, 경음악은 ‘오락적 가치가 높은 음악’으로 정의하거든요. 복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전파되어야 하기에 대중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실 복음가가 처음 나올 때에 미국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포스터(Stephen Collins Foster, 1826-1864)의 가곡이 애창되고 있던 때입니다.

포스터는 순수한 미국적 성격을 지닌 가곡을 최초로 작곡한 가곡작가입니다. ‘오, 수잔나’ ‘스와니 강’ ‘금발의 제니’ 같은 아름다운 멜로디의 가곡이 참으로 많아 미국 사람들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애창되고 있지 않습니까.

평이한 그의 멜로디는 아름다운 정서와 따뜻한 정감을 부어 넣은 것이 많은데, 유럽의 민요 영향도 있긴 하지만, 미국 남부 흑인의 민속음악인 흑인영가나 그들의 생활에서 취재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복음가 작곡가들이 바로 이 포스터의 가곡과 같은 분위기의 노래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기에 포스터는 단 한 편의 찬송을 짓지 않았지만 찬송가에 끼친 영향은 실로 큰 셈이지요.

미국 오하이오 주의 브라운(Brown County)태생인 그리스도교회 교단의 맥다니엘(Rufus Henry McDaniel, 1850-1940)목사가 지은 찬송은 약 100편쯤 되는데 우리 찬송가에는 이 한 편만 실려 있습니다. 특히 이 찬송은 그의 아들을 잃은 후 뼈아픈 시련의 나날을 보내다 주님의 위로를 받고 그 이듬해인 1914년에 지은 것입니다.

아들의 자리에 주님이 대신 들어와 계셔서 더 크나큰 기쁨과 평안 얻어 이 같은 고백을 하게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