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러분께 들려주고 싶은 노래는 나의 자작곡입니다. “What Makes You Sad?”
한국어로 “무엇이 너를 근심하게 하느냐?” 라는 제목입니다.
묵상은 예수님과 부자 청년과의 만남에서 내가 느껴진 한 부분입니다.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냐고 물을 때 예수님은 계명들을 지키고, 완벽 하려면 모든 재산을 구제하는데 사용하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에 이 청년은 가진 것이 많아서 근심하며 떠납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한테 비판하는 억양으로 제목을 지었습니다.
“희서야, 넌 무엇을 못 버리길래 예수님을 못 따르고 근심해 하고 슬퍼하고 있냐?” 라는 질문입니다.
나와 부자 청년을 한 번 비교 했을 때, 나는 청년이기는 하지만 부자는 절대로 아닙니다. 계명들을 어렸을 때 지켰냐고요? 모태신앙이기는 한데 절대로 하나님이 기뻐하기만 한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마가복음 10:17에는 그 청년이 달려와서 예수님께 무릎을 꿇으면서 묻습니다. 저는 이만큼 영생에 대한 갈망도 있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8:18에는 그 청년을 청년이라 부르지 않고 번역에 따라 관리, 관원, 유다의 지도자라 부릅니다. 나는 이렇게 지위도 높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가진 것이 훨씬 없는 나인데 왜 이렇게 버리는 것이 힘들까? 라는 고민에 빠집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를 깨달으면 버리기 쉬워집니다. 이것은 당연한 사실이겠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분이라는 것을 알면 당연히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분을 따를 텐데, 왜 못 버릴까?
내 생각에는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아는 동시에, 돈, 명예, 지위의 위대함을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는 듯 합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에 대한 갈망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재물을 잃으면서 까지 좇을 마음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를 마음이 없던 것이 아니라, 단지 재물을 잃는 것이 아까워서 근심한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버리라는 말 없이 따르라는 말만 했더라면 따랐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희서야, 돈, 명예, 지위 같은 것들 다 챙기면서, 버리지 말고 나를 따르라”라고 절대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시고, 2등도 되고 싶지 않으시는 욕심쟁이 이십니다.
이 노래는 대학교에서 과제로 만든 노래인데, 그 과제의 내용이 내가 좋아하는 다른 노래들의 장점들을 활용해서 새로운 노래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용한 것들 중에 하나를 설명하자면 노래가 진행이 되면서 저절로 고조되는 멜로디입니다. 특히 이 묵상의 고민에 대해서 생각했을 때 한 순간에 끝나는 어떤 정답이 있는데도, 그 정답에 이르는 성화의 과정을 한 순간에 갈수가 없기에, 음악적인 해석을 이렇게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노래 중에 가장 클라이맥스가 있는데, 그 다음이 바로 노래에서 가장 잠잠하고 잔잔한 음악이 나옵니다. 마치 영적인 전쟁을 치열하게 싸우다가 그 싸움을 끝내고 평안을 누리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