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설교자로 거듭나기

나명균 목사<조은교회>

나는 학생 때부터 성경을 자주 샀다. 내가 보기 위해서도 그랬고 남에게 주기 위해서도 그랬다. 다양한 편집본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 66권 모두를 설교하기로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지금의 아내가 된 강혜경씨가 선물 하나를 하고 싶다고 하길래, 두말없이 국한문성경 한 권을 사달라고 했다. 그리고 신학생이 되던 날, 나는 성경 66권을 다 설교해 보리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전도사 시절부터 그 위대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특히 신대원 시절 설교학 은사이신 정성구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일하게 되면서, 교수님 역시 성경 66권을 다 설교하는데 실천하신 분이셨기에 더더욱 힘이 붙었다. 제법 분량이 쌓여갔다.

뉴질랜드에서 목회하면서 첫 작품으로 <시편에서 만난 하나님>을 출간했다. 로토루아 갈릴리한인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매일 새벽마다 나누었던 시편 강해를 집에서 복사기로 200권을 발행했던 것이다.

돈도 없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 목사의 책을 출판사에서 출판해줄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이 한 권의 책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이어서 <교회의 사람들>이라는 디모데전후서 강해집을 내었다. 똑같은 방법이다.교회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하여 원하시는 다양한 일군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목사인 나를 비롯하여 교회의 제직들에게 권하는 마음을 담아 보았다.

내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믿음의 선배 사도 바울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성경 66권을 설교하고자 하는 야심찬(?) 작업은 지속되었다. 새벽기도회를 위한 설교조차 원고가 준비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설교하고 난 원고들은 그렇게 한 상자씩 늘어만 갔다.

교만을 걸러내기로
그러다가 어느 날, 상자 하나를 열어 정리를 하다가 문득 독백과도 같이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나목사! 이렇게 해서 이것으로 너의 자랑삼으려 하는 것 아니니?”

마치 철퇴로 뒤통수를 맞는 그런 기분이었다.‘맞아! 그럴 수 있어. 아니 그래 왔어! 하나님의 영광은 뒷전이고 내가 해냈구나. 나는 하고 있다.’는 자만심, 극도의 교만함에 빠져 들 수도 있고 이미 빠져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해졌다.

모든 설교자들이 똑같이 느끼고 경험하는 바, 특히 연속 강해하는 설교자들은 꼭 해야만 하는 그런 부담감에 맞닥뜨려질 때가 분명히 있다. 나도 수차례 경험한 바이다.

그런 것을 극복해야만 이 연속 강해설교를 할 수 있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건너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설교자가 가지는 가장 위험한 질병은 바로 교만이다. 성도들이 부담감을 갖든 말든, 자신은 계속 고집스럽게 앞으로만 나아간다면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는가?

설교자인 목사 자신은 나는 이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성도들은 분명 지루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 경우가 그랬던 것같다. 에베소서는 불과 6장의 짧은 분량인데 일 년 내내 설교하면서 자신은 능력이 있는지 몰라도 성도들은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설교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같은 본문을 가지고 수십, 수백의 목사들이 설교한다고 해도 다양하게 증거되고, 작년에 했던 설교 본문으로 올해 설교한다면 또 다른데, 성경 66권을 다 설교했다고 하는 표현 중에서 ‘다’라는 표현은 정말 설교자의 교만의 정도를 나타내는 하나의 수치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어느 날, 그 위대한 사역(?)이라고 확신했던 ‘성경 66권을 다 설교하기’를 포기한다는 선언을 나 자신에게 던지게 된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펴지는 곳을 설교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다.

우선은 설교자인 나에게서 교만이라는 거품을 우선 빼자는 것이다. 이것을 하지 않고는 설교는 더 이상 설교가 아니라는 생각에 든다.

성숙한 설교자로 거듭나기
이제 나도 설교자로 단에 선 것이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어린 아이들 앞에 섰던 날부터, 강도사 인허를 받고 나니 담임목사님께서 친히 예배 사회를 보시면서 설교자인 나를 소개해주셨다.

또 그날 설교에 대해서 많은 교인들 앞에서 칭찬을 곁들인 평을 해주셨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설교자로 강단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고백하며 감사한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겨울이 다 지나고 봄의 절정도 넘어가는 즈음에 심한 감기로 고생을 해야 했다. 토요일 새벽기도는 어떻게 인도했는지조차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토요일 늦은 밤, 주일 아침에 전할 설교 원고를 가슴에 품고 “하나님! 내일 설교가 마지막 설교가 되어도 좋습니다. 제가 이 몸을 이기고 내일 설교를 할 수 있도록 나를 일으켜 세워주세요!”

기도하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눈을 뜨니 아침 5시 30분 정도를 헤아린다. 그 심하던 감기가 어디로 갔는지 말끔해졌다. 그렇게 한 번의 설교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 가운데 행할 수 있었다.

그렇다. 수년 전부터, 설교자인 나는 성경을 대하는 자세가‘성경 66권 다 설교하기’에서‘한 번의 설교에도 최선을!’로 바뀌었다.

단 한 번의 설교할 수 있는 기회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하고, 또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