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에도 봄은 어디에나 있다

봄은 겨울을 홀로 넘어온다. 때로는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어도 봄은 오고야 만다. 겨울을 뚫고 온 봄을 먼저 꽃이 맞는다. 겨우내 시린 땅에서도 봄의 전령으로 수선화가 핀다. 겨울과 봄의 불분명한 경계의 문을 수선화가 열어준다.

봄이 오는 길목에 서서 미리 봄으로 다가가다 보면 봄이 오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고, 봄의 꽃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코끝으로 맡을 수 있고, 봄동을 입으로 맛볼 수 있고, 새봄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설레는 가슴으로 풀이나 나뭇가지가 피워내는 봄의 꽃을 바라보라.

나뭇잎보다 먼저 봄을 맞는 꽃잎이 있어
먼 북쪽에서 바람에 실려온 비가 내린 뒤에 앙상한 가지에 붉은 꽃망울이 터진다. 겨울의 끝비를 아는지 매화가 핀다. 돌길을 따라서 담장 곁에는 동백꽃도 꽃집으로 마을을 이루어간다.

겨우내 신작로를 보듬던 목련도 피었더니 겨울이 시샘을 하는지 꽃샘바람을 불러온다. 바람은 찬비도 불러 오고 매화, 동백꽃, 목련과 함께 한바탕 춤을 춘다.

지난 겨울의 서러운 아픔과 슬픔을 이기고 봄의 꽃은 피었어도 날아가는 생은 짧기만 하다. 그럼에도 꽃은 봄의 축복이다. 매화는 바람이 불어도 그대로 떨어지지 않고 꽃보라가 된다. 봄 꽃의 생애는 바람을 따라 사라진다.

이미 겨울의 계절은 지났건만 바람과 비가 자주 내린다. 봄의 꽃들은 바람과 비에 몸살을 앓는다. 매화는 상처가 나고,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만다. 목련도 느리고 무겁게 꽃잎을 떨군다. 동백꽃은 꽃을 활짝 피운 듯하더니 꽃덩이로 떨어지고 만다. 꽃의 생도 사람의 생과 같이 생로병사가 있다.

봄의 꽃이 핀 날에도 바람은 불고 비가 와
바람이 불고 비가 온 뒤의 볕이 강한 길 위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린다. 봄 길은 끝이 없다. 살아서 아름다운 꽃들이 지더라도, 지상에서의 방 한 칸 없이 떠돈 삶에는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길 위의 인생은 늘 힘겹고 고단하고 외롭기만 하다. 때로는 아프거나 병들어도 가던 길을 멈추지 못한다. 갈 수 없는 길이더라도 가야만 한다. 목숨이 있는 한, 배고프고 헐벗더라도 길 위에 떨어진 꽃잎을 피하지 말고 즈려밟고 가라.

봄의 길이라고 언제나 꽃피는 봄날과 같지는 않다. 봄의 꽃이 핀 날에도 바람은 불고 비도 온다. 때로는 꽃샘추위도 있다. 날마다 날 만 탓하지 말고, 꽃도 보고 꽃 길을 따라 걸으며 세상에 주어진 생을 살아내어라.

결코 멈추지 못하고 가야만 하는 생의 길
결코 멈추지 못하고 가야만 하는 길은 있다. 아침에 길 떠난 나그네를 따라온 그림자도 힘이 드는지 잔망스럽다. 나그네는 아침에 떠난 길에서 쉬더라도 멈추지는 않는다. 결코 멈추지 못하고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지금 이민과 유학으로 춥고 외로운 겨울이더라도, 살다 보면 봄은 반드시 온다. 소망의 씨를 심었다면, 봄에는 꽃이 피고 나무에 새순이 나듯이 봄 날은 보게 된다. 겨울이 지난 뒤에 오는 바람이, 비가 봄의 꽃을 데려오고 봄의 새순을 나게 한다. 봄의 꽃은 흙바람 속에서 핀다.

봄바람이 불어 오는 동안 수선화도 지고, 매화, 동백꽃, 목련은 떨어져도 다시 봄은 벚꽃을 품었다가 들과 길에 꽃구름처럼 풀어낸다. 지난 겨울은 가고 다시 가야 할 새봄이 곁에 있다. 봄을 마냥 바라보지만 말고, 봄의 꽃을 밟고 생의 길로 나아가라.

꽃샘추위에 비바람 불어도
봄의 꽃은 어디에나 있다.

봄의 꽃보다 더 아름다운
봄의 꽃은 바로
한 번뿐인 생을 사는
당신이다.

이승현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