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어요 살 빠져요”

“에구~, 뭐가 이리 많은지 필요한 것만 남겨 놓고
이제 좀 버리고 살아야겠어요. 여기저기 넘 많아요.”

신발장을 열어 봐도 신발 가득,
옷장을 열어 봐도 옷이 가득,
부엌 찬장을 열어 봐도 그릇이 가득,
수건 캐비넷을 열어 봐도 수건이 가득,
여기저기 열어 봐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건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아니라 책입니다.

아래층에도 가득,
이층에도 가득,
방마다 가득,
이제는 거실까지 한 벽을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남 주자니 그렇고,
다 가지고 있자니 욕심이 넘쳐나는 것 같아
마음은 늘 버리고 살자 합니다.

어느 날, 맘먹고 버렸다가
이 옷은 얇아서 여름에 시원해서 안되고,
이 옷은 두꺼워서 겨울에 한번 더 입어야 하고,
이 그릇은 멀쩡하니 좀 더 쓰고 버리고,
이 수건은 빨았으니 한번 더 쓰고 버리지 뭐.

밖에 버렸던 물건 주섬주섬 다시 들고 들어와
또 한가득 쓰레기통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 가운데서 제일 못 버리는 것이 책입니다.
또 그 가운데서 더 못 버리는 것이 큐티 책입니다.
몇 년이 지난 책인데도 다시 찾아볼 일이 있을 거 같아
연도 별로 주욱~ 꽂아 놓고 한번도 안봅니다.

어느 날, 문득 버려야겠다고 책장에서 다 뽑아 놓고는
“말씀이 기록된 이 귀한 큐티 책을 버릴 순 없지!”
다시 제 자리에 꽂아 놓고 눈으로만 만족해 합니다.

버리자, 버리자!
비우자, 비우자!

늘 마음 속 구호로만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 두 명이 들어도 들기 어려운 물건이 하나 집에 들어 왔습니다.

우리 집에서 제일 큰소리로
“버리고 살자! 비우고 살자! 없애고 살자!”
외치던 남편이 중고 러닝머신을 착한 가격에 가져 온 겁니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 밖에 안 하는 사람이 러닝 머신을 들여 오길래 상당한 기대를 했지요.
“아~, 저렇게라도 운동을 하려나 보네”

하루이틀사흘……
웅장한 모습으로 러닝머신을 거실 한 쪽에 모셔 놓고 그 옆자리에 앉아 책만 봅니다.
“보고만 있으면 저절로 운동이 되고, 살이 빠지나? 왜 갖다 놓고 한번도 뛰진 않아요?”

아이들도 아내도 궁시렁궁시렁 투박을 줘도 절대 뛰지 않던 남편이 어쩔 수 없는 성화에 못 이겨
하루는 맘먹고 러닝머신에 올라갑니다.

모두가 신기한 듯 쳐다보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곰 한마리가 쿵쾅쿵쾅 달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절대 남편이 뛰지 않았습니다. 그냥 걷기만 했습니다.

“얘야, 천천히 걸어라, 배 꺼질라”
배고픈 시절에 밥 먹고 아이들이 뛰어 놀면 어른들이 말씀 하셨다지요.

“여보, 천천히 걸어요. 살 빠져요.”
우리가 이렇게 말해야 할 판입니다.
걷는 그 소리가 하도 웅장(?)해서 소음 공해를 일으킬까 해서요.

그래서 남편은 아직도 버리지 못한 뱃살을 고이 간직하고 있답니다.

“버리자! 비우자! 없애자!”

구호가 아닌
정말로 내가 버리고, 비우고, 없애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오늘은 내 자신부터 좀 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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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