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첫날 오픈 기도에 함께 참석한 이들
지난 주간 나는 크리스천 라이프에서 주관한 전시 바자회에 다녀왔다. 이 전시회는 화사한 갤러리로 변신한 소망교회 로비에서 3일간 열렸는데 기증자와 관람자 모두에게 뜻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오랫 동안 많은 교민들의 게러지나 뒷방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기약없는 잠에 빠져있던 수십 점의 작품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부처럼 자리 잡고 앉아서 수줍게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불과 얼마 전에 작가의 손을 떠나온 럭셔리한 거울들과 보석함 같은 작품들도 새 주인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민들에게 뉴질랜드로 이민 온 이유를 들어보면 첫 번째가 삶의 질 향상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찌 영어에 치이고, 돈에 치이느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저 한주에 한 번쯤 커피 한 잔 나눌 여유만 있어도 우린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지 않는가?
전시회를 관람한 1.5세대 대학생들
그런데 나는 이 전시회에서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참 쉬운(?) 방법을 보게 된 것이다. 그건 그 사람 때문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점심으로 컵라면 먹고, 일회용 믹스 커피를 디저트라며 궁상떠는 통에 밥 한번 얻어먹어 본 기억이 없는 쫀쫀한 그가 이 전시회에 온 것은 나에겐 미스터리였다. 전시 작품들을 한참이나 둘러보는 그의 모습을 보자니 장님이라도 그의 꿍꿍이가 뻔해 눈에 보일 판이다.
그런데 그가 마침내 그에게 별로 쓸모도 없어 보이는 작은 작품 하나를 집어 들고는 컵라면 한 박스 값 되는 거금(?)을 지불하고 전시장을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가 나간 뒤 쉬지 않고 내리는 비만 멍하니 지켜보는 나에게 전시회 담당자가 다가왔다.
동양화 작품 설명하는 유승재 장로
그리곤 나에게 몇 가지 작품을 손짓하며 ‘저것들은 방금 나가신 분이 기증해 주신 작품’이란다. 이렇게 빗속으로 사라진 그 쫀쫀이가 손도 안대고 내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들어 버렸다.
밥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 작품을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가‘그 어려운 일을 참 쉽게 해내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기증할 줄도 알았다. 그러니 지금까지 삶의 질 운운하며 그 앞에서 잘난체했던 나의 모습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었다.
입장객 중 질 높은 삶을 사는 사람은 비단 이 사람만은 아니었다. 가방을 메고 우산을 입구에 두고 급하게 들어온 그녀는 첫날 미리 사둔 도자기를 찾아가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언 듯 봐도 두 손으로 다루기 쉽지 않은 크기의 도자기를 연약한 노 숙녀께서 들고 나가셨다.
십여 분쯤 지나서 전시장을 빠져나온 나는, 비오는 버스 정류장에 가방을 메고 한 손엔 우산을, 한 손엔 도자기를 잡고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를 차창 밖으로 보게 되었다. 노 숙녀께서 버스를 타고 두 번이나 비오는 거리를 오가며 누렸을 질 높은 삶이 내 맘을 오랫동안 두근거리게 했다.
전시회 전 날 일을 도우러 왔다가 한 작품에 스스로 고가의 값을 매기곤 Sold 딱지 붙이고 스텝들의 저녁 식사까지 냈다는 어느 교민신문 K사장님은, 그 그림을 집에 걸어두기 위해 서너 가지 귀찮은 수고를 또 해야 한다는 것을 그의 지인이면 다 알 것이다.
차림새에서 검소함이 심하게 풍겨져 나오는 친구 목사는 가족들의 손을 이끌고 들어와서 한바탕 말 잔치만하고 그냥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런데 쑤셔 넣은 비닐봉지에 고개 내민 액자들 품고 저만치 떨어져 따라가는 사모님과 아이를 보고는 이내 반성을 한다. ‘저 친구도 오늘은 참 멋있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내년에는 작가들을 모셔 와서 작가들이 작품을 빚어내는 모습을 관람객들이 직접 감상할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뜻을 스텝 한 분이 내게 귀띔해 주었다.
들어온 작품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상설로 문을 열어 전시할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는 몇몇 분의 의견이 있었다. 또 한국과 뉴질랜드의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초대해서 전시하는 대형 프로젝트도 거론되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란 질 높은 문화를 자주 소비하고 생산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들을 사고 물품을 기증하는 분들이 돈이 많은 부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질 높은 문화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부자인 것은 틀림없다는 거다.
이번 전시회에서 나는 참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났다. 전시회에 작품을 보러 온 이들 또한 내 눈엔 살아 움직이는 또 다른 멋진 작품이었다.
박성열 목사<뉴질랜드예수찬양교회>
<작품을 만난 이의 감동>
산과 구름이 나를 부르는데
“한 여름 구름의 모습은 피어나는 연기와 같고 한 여름의 초목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는구나”라는 뜻을 담은 한시가 그림을 설명하듯, 그림의 상단에 멋지게 한시가 쓰여 있는 동양화 한 점을 만났을때 나는 그냥 섬세한 필치로 잘 그린 비단 테두리가 낡은 동양화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전에 그 그림의 정면에서 볼때는 분명 평면적으로 보였는데 좀 떨어져서 45도 정도 옆에서 그림을 보니 구름 위로 솟은 산도, 건너편 나무들도 모두 3D로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심지어 산허리에 짙게 머물렀다 피어오르는 구름이 스멀스멀 액자 밖으로 나올 것 같이 느껴졌다.
거의 두시간 가까이 그 그림에 빠져 있었다. 3D 카드 같은 현상이 보였던 것이다. 동양화든 서양화든 이런 현상은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작품들을 다시금 유심히 살펴 봤지만 그런 현상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내가 본대로 설명하며 다시 감상하게 했더니 모두가 놀라워 하며 공감했다.
도저히 이 그림을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움직이는 구름과 솟구친 산봉우리가 나를 부르고, 그림만 보면 마음이 이렇듯 벅찬데 어떻게 두고 가겠는가?
누군가가 기증한 이 그림은 그날 나에게 눈길이 닿을 때마다 설레이게 하는 귀한 친구로 내게 왔다.
신경화 집사<한우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