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묶어라

강창호목사/영원한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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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베드로전서 1:13)

그리스도인은 영적 거듭남을 통해 살아있는 소망을 품게 된 사람입니다. 구원의 영광이 제 것이 된 성도의 마음을 무엇이 지배하고 있어야 할까요?

“그러므로”
1절부터 12절까지의 진리를 근거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세수하기 전 소매를 걷어 올립니다. 옷에 물이 묻을까봐 그럽니다. 허리를 묶는다는 말은, 뭔가 긴장을 요구하는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길게 흘러내리는 하나로 된 통옷을 입었습니다. 평소 겉옷을 펄럭이며 걷던 사람도, 빠르게 걷거나 노동을 할 때는, 흘러내린 옷을 허리께로 끌어올려 넓은 띠로 고정시킵니다.

로마 군사들은 전투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굵은 벨트로 허리를 묶었습니다. 군복이 펄럭이는 상태로는 전투를 수행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이며, 때로는 이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마음의 허리”라 했습니다. 이 단어(디아노이아)는 생각 기능 또는 작용, 즉 생각세계를 뜻합니다. 따라서 마음이란 단어를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원어적으로 적합하게 보입니다. 모든 개인은 생각세계라는 비밀의 방을 가집니다. 여기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자신만 아는 세계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입으로 결코 말하지 않을 내용도, 이 생각의 방에서는 소리를 냅니다. 서로의 생각세계를 엿볼 수 있다면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은밀한 욕망도 숙성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어디서 이런 욕심의 숙성이 진행될까요? 바로 여기 생각의 방에서입니다. 인큐베이터는 미숙아 또는 이상이 있는 신생아를 넣어두는 기기입니다.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은 ‘생각의 방’이라는 인큐베이터에서 자랍니다. 아주 중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방치되는 곳이며, 정돈이 절실한 곳입니다.

생각을 방치하는 것은, 달리기 선수가 신발끈을 묶지 않고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넘어지지 않더라도 분명히 달리는 데 지장을 줍니다.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생각세계에 들어와 있으면, 다른 일에 집중하는 중에도, 상대방이 했던 말이 나를 괴롭힙니다. 그러면 나의 삶은 비생산적이 됩니다. 그 생각을 처리하지 않으면, 신발 속에 든 작은 모래 알갱이처럼, 불편함이 떠나지 않습니다.

또 죄로 인해서나, 아니면 막연한 두려움이 생각세계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두려움이 처리되기까지 그 사람은 좁은 방에 갇힌 것 같은 경험을 합니다. 비교의식이 그의 생각을 지배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비교 대상이 자식이나 배우자이든, 아니면 외모나 학벌이든, 생각세계를 어지럽히는 것을 처리하기 전에는 자유함이 없습니다. 이때 다윗의 시편이 절실합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편62:8)

평소에 이런 말씀을 마음판에 새겨놓고, 생각이 어지러울 때, 그것을 주께 정직하게 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문자적 의미는, 술 취하지 아니한 맑은 정신입니다. 술 취하면 평소 통제 가운데 두었던 말을 풀어놓습니다. 그리고 술이 깬 뒤에는 후회를 합니다. 술 취하면 어리석은 행동을 합니다. 영원한 나라를 약속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을 추구하는 대신, 왜 세상적인 것에 몰두할까요?

몸에 알코올이 들어가면 감각기관에 영향을 미치듯, 세상적인 무엇이 그의 내면을 채워 영원한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기 떄문입니다. 사람들은 입사 시험 면접 같은 중요한 만남을 앞두고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주 중요한 만남을 앞두고 있습니다. 내 영혼의 구주이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본문에서 동사가 세개 나오는데, 본 동사는 여기 나오는 ‘엘피사테’라는 명령형 동사입니다. 이를 직역하면, ‘소망을 두라(set your hope)’입니다.

1절에서,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 썼습니다. 그는 이 서신을 작성할 때,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위임하신 영적권위를 가지고 서신을 써내려가고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따라서 13절의 명령은 베드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주 예수께서 사도를 통해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너희는 전부를 이곳에 걸어라. 내가 다시 올 때 너희를 위해 모습을 드러낼 은혜를 소망하고 또 소망하라!’

영어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Don’t put all your eggs in one basket!”(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다 담지 말라) 이 말은 주식 투자 관련 강의 현장에서 많이 듣습니다. ‘분산해서 투자하십시오. 계란을 한 곳에 담았다가 깨지면 다 잃듯이, 이런 일 안 당하도록 다양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다르게 권면합니다. “네가 가진 전부를 이곳에 투자하라! 너희 삶을 이곳저곳에 분산투자하지 말라. 여기에 전적으로 all-in해라. 대충 투자하지 말고, 네가 가진 것을 모두 여기에 걸어라! 적당하게 사는 것 결코 지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전적으로 소망하라!”

포커게임에서, 자기가 받은 7장의 카드 중에서 같은 숫자의 카드가 두 개 나올 때를 ‘원페어’라 합니다. 한 게임에서 원페어를 잡을 확률은 43.79%입니다. 가장 높은 패를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라 하는데, 한 게임에서 이를 잡을 수 있는 확률은 0.0001539%입니다.
이런 행운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박사들은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 패를 잡으면 그냥 모든 것을 다 걸어라.”

예수 믿는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의 복은 상상을 초월하는 행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보혈로 가능해진 복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토록 알고 싶었던 신비였으며, 하늘의 천사들도 살펴보기 원했던 것입니다(12절). 엄청난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복을 손에 쥔 성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이 같이 큰 구원(such a great salvation)’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복을 앞두고 이 땅에서 구별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생각세계가 세상적인 가치들로 어지럽히지지 않도록 다스리고, 내 영혼의 구주이신 그 분과의 만남을 앞두고 깨어 있길 애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투자이며,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날이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영광의 날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시간과 열정과 기회를 사용하며, 영원을 위해 오늘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