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퇴근해서 집 앞까지 와서는 집에 못 들어가고 차 안에 늘어져 버릴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매일 저녁 집에 가면서 신나고 흥분되며 기대하면서 집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신혼이거나 불륜일 것이라고, 갈 때마다 흥분되는 건 놀이동산과 카지노밖에 없다고까지 덧붙였습니다. 웃자고 한 말이지만 곱씹어 보면 뼈가 있는 말입니다.

직장인에게 집으로 향하는 저녁 길은 설렘의 시간이 아니라, 하루의 무게를 끌고 지쳐서 돌아가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모든 일이 귀찮아 대충 던져 놓고 널브러집니다. 집은 본래 무장해제의 공간입니다. 집 밖에서는 옷차림을 신경 쓰고, 말투를 다듬고, 표정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집의 대문을 넘는 순간 우리는 경계 태세를 풀고, 오랫동안 곤두세웠던 긴장의 스위치를 내립니다. 그래서 퇴근한 아버지가 소파에 파묻힌 채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게으름이 아니라, 하루 종일 바깥에서 온 신경을 끌어모아 버텨낸 몸이 긴장이 풀리니 이제야 늘어지는 것뿐입니다.

집은 본래 일터가 아니라 쉼과 안식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집은 더 이상 예전의 안식처가 아닙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우리는 집 안에 있으면서도 집 밖의 세계와 촘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녁이 잘 차려지고 식사를 같이하려고 하는데 “잠깐만, 지금 하던 것만 정리하고 삼 분 뒤에 먹어요.”라는 가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삼 분은 대개 삼 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집안에 도착했지만 마음은 퇴근하지 못해 여전히 바깥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입니다.

《감정호텔》이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감정이 손님이라는 개념으로 디지털 과의존을 조금 들여다보게 해 줍니다. 이 책은 우리 마음을 하나의 호텔로 묘사합니다. 그 호텔에는 매일 다양한 감정의 손님이 찾아옵니다. 기쁨이라는 손님, 분노라는 손님, 두려움이라는 손님, 시기라는 손님들이 옵니다. 미숙이라 이름표를 단 지배인은 손님 한 명이 들어오면 호텔 전체를 그 손님에게 내어줍니다.

분노가 찾아오면 로비부터 휘저으면서 온 호텔을 시끄럽게 소동을 부리듯이 우리의 마음과 몸이 분노로 물듭니다. 두려움이 찾아오면 삶 전체가 두려움의 색으로 뒤덮입니다. 그러나 노련한 지배인은 손님을 정중히 맞이하되 딱 한 개의 방만 내어줍니다. 손님은 그 방에서 머물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나고, 지배인은 로비와 나머지 모든 방을 여전히 자신의 몫으로 지켜냅니다. 감정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게 방 하나를 내어주되 호텔 전체의 소유권까지 내어주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나누고 있는 디지털 디톡스 주제와 연결됩니다.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늘 연결된 우리의 삶에는 초대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손님이 몰려옵니다. 단체 채팅방의 알림은 긴장이라는 손님이 찾아옵니다. 뉴스 피드의 자극적인 기사는 분노라는 손님으로 옵니다. 소셜미디어 속 타인의 삶은 시기라는 손님을 데려옵니다.

예전에는 퇴근하여 현관문을 닫으면 적어도 특별한 손님 아니면 가족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손님들이 문 앞이 아니라 손안의 화면을 통해 곧장 안방까지 걸어 들어옵니다. 지배인이 자리를 지키지 못한 호텔에서는 모든 방이 뒤죽박죽 섞이고, 결국 마음의 호텔은 난장판이 됩니다. 애써 가꾸어 놓은 평온한 저녁 식탁에는 긴장과 분노와 두려움과 시기의 손님이 대신 앉아 소란을 피웁니다. 그 감정 손님들이 나의 마음의 호텔뿐 아니라 함께 사는 집 안 전체까지 뒤집어 버립니다. 삶의 경계를 잃어버립니다.

ITAA 열 번째 단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인격에 대한 검토를 계속하여 잘못이 있을 때는 즉시 시인하였다. 이는 단지 디지털 과의존에서 회복하려는 이들만을 위한 지혜가 아닙니다. 하루를 마감하며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그날 있었던 감정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이 습관은 감정호텔의 지배인이 매일 저녁 손님 명단을 점검하는 일과 정확히 같은 작업입니다.

열두 단계 가운데 앞의 아홉 단계가 과거의 잘못을 정리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일회적인 작업이었다면, 열 번째 단계부터는 그것을 하루하루의 습관으로 만드는 지속적인 작업으로 넘어갑니다. 회복은 한 번의 큰 결심이 아니라 매일 저녁 반복되는 작은 점검 속에서 유지됩니다.

열 번째 단계의 핵심은 완벽함이 아니라 꾸준함 입니다
저녁에 잠들기 전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 상처를 주었는가? 오늘 나를 찾아온 감정은 무엇이었는가? 그 감정에 나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이 질문들에 정직하게 답하는 순간, 낮 동안 정체 모를 그림자로 떠돌던 감정들은 비로소 이름을 얻습니다.

“아, 오늘 회의에서 느꼈던 그 불편함은 사실 무시당했다는 서운함이었구나. 아, 친구의 소식에 마음이 복잡했던 것은 부러움과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조바심이었구나.” 이름이 붙여진 손님은 신기하게도 훨씬 얌전히 제 방으로 물러갑니다. 나의 마음의 호텔은 평안하게 밤을 지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면 아침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아침을 경험합니다.

디지털 과의존은 이 저녁의 점검 시간을 자꾸만 빼앗아 갑니다. 감정이 채 이름을 얻기도 전에 우리는 다음 알림,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 버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마음속 거실에 가득 차면 그저 막연한 피로와 예민함에 시달리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힘든지도 모른 채 그저 지쳐 있는 상태, 그것이 바로 지배인도 없고 열 번째 단계의 점검도 없는 마음의 호텔의 풍경입니다. 저녁의 디지털 디톡스는 단지 화면을 끄는 소극적 행위가 아니라, 작은 다이어리를 꺼내어 하루 동안 이름 없이 떠돌던 감정들에게 마침내 이름을 붙여 주는 적극적인 자기 점검의 시간입니다. 열 번째 단계가 권하는 정직한 자기 검토와 감정호텔이 권하는 손님 배웅하기는 결국 같은 문을 향해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권면합니다. 이 말씀은 감정을 억누르라는 뜻이 아니라 감정에게 하루 전체와 집 전체를 내어주지 말라는 권면에 가깝습니다. 분노라는 손님이 찾아왔다면 그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려놓되, 해가 지기 전에 그 손님을 배웅하라는 것입니다.

저녁 기도는 바로 이 열 번째 단계를 신앙의 언어로 실천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하루 감사했던 일뿐 아니라, 오늘 나를 힘들게 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AI 대신 주님과 함께 나누어 보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이름을 얻은 감정은 더 이상 온 집안을 몰래 잠식하는 유령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손님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실천은 단순할수록 오래갑니다. 저녁 식사 시간만큼은 휴대폰을 다른 방에 두기로 가족이 함께 약속하고, 잠들기 전 짧게라도 오늘 찾아온 손님의 이름을 서로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다들 어색하고 불안합니다. 손이 자꾸 허전한 주머니로 향할 것이고, 확인하지 못한 알림이 마음 한구석을 간지럽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색함을 견디는 시간이 쌓이면, 열 번째 단계를 매일 밟아가는 회복자들이 그러하듯, 우리도 어느 순간 손님이 찾아와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분노가 찾아와도 예전처럼 온 집안을 뒤흔들지 않고, 두려움이 찾아와도 잠을 온전히 빼앗기지 않습니다.

ITAA에서는 열 번째 단계를 결코 혼자만의 은밀한 작업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매주 디지털 디톡스 모임에 나가 한 주간 자신이 점검한 내용을 다른 이들 앞에서 정직하게 나누는 것이 이 회복의 핵심 훈련입니다. 혼자만의 반성은 쉽게 흐지부지되지만, 누군가에게 정직하게 털어놓는 반성은 훨씬 오래 지속됩니다.

신앙의 가정에서는 가정예배와 말씀 나눔이나 저녁 식탁에서 나눌 때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가족은 무장을 벗고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회복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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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충성
장로회 신학대학 신대원, 기독교교육 대학교 석사 졸업. 밀알선교단장. PCK선교사. 장애인 토요학교, 연합주간센터 (UNITED CROSS CULTURAL COMMNUNITY CENTRE, 치매 어르신 주간센터, 주바라기 사랑방)를 운영하며, 인생에서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