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고 vs 하나님의 은혜

뮤지컬 ‘Evita’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뉴질랜드의 여러 쟁쟁한 배우들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했던 나로서는 뮤지컬을 향한 장밋빛 미래를 그리게 되었다.

‘Evita’가 끝나기 전 이미 세계적인 뮤지컬 ‘Wicked’ 오디션에 합격했었고, 2021년 3월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9월 ‘Wicked’ 공연을 위한 리허설을 시작했다. ‘Evita’ 작품의 안무가와 음악감독 및 일부 친한 배우들이 다시 함께했기에 자신감 있게 뮤지컬 연습을 참여하던 중, 예상치 못한 시련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13년 만에 받은 영주권
오클랜드 대학을 졸업하고 워크 비자로 영주권을 기다리며 6년 가까이 일하던 직장에서 5월이 시작되자마자 더 이상 비자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당장 8월이면 비자가 만료되어 뉴질랜드를 떠나야 했기에 9월의 공연을 준비하는 뮤지컬 팀에 사정을 알리고 아쉬움 속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나선 직장을 찾기 위해 남북섬 전역에 100개가 넘는 이력서를 썼었다. 그러나 3개월 밖에 안 남은 워크비자를 가진 나에게는 고작 2번의 인터뷰 기회만 주어졌었고, 결국 어떠한 Job Offer 없이 한국행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표를 알아본 후 마지막 주일날, 같은 목장의 친구와 잠시 이야기하게 되었다. 당시 회계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던 그 친구는 마침 Full time 직원을 구하고 있었고, 극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8월에 새로운 워크비자를 받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9월, 정부가 특별 영주권 정책을 발표하면서 나 또한 13년의 기다림 끝에 2022년 1월 영주권을 받게 되었다.

사실 해고를 당하기 3개월 전, 한 친구에게 영주권에 대한 내 솔직한 생각을 나눈 적이 있다. 나는 당시 대학 졸업 후 갑작스러운 법 개정으로 2년의 영주권 신청을 기다려야 했었고, 연합정부가 들어서며 1년 반 가까이 영주권 승인이 없는 상태에서 코로나를 핑계로 또다시 1년의 시간 동안 정부의 느린 행정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조금씩 진행되어 가는 승인들을 보며, 나도 1년 뒤면 영주권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누었는데, 사실 이렇게 영주권을 받으면 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을 했었다. 그동안 수많은 괴로움 속에서 버텨온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기에 이 영주권만큼은 받아도 하나님께 감사함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솔직히 말했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1년 만에 영주권을 주셨다는 누군가의 간증과 달리 나는 영주권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그동안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왔었다. 그리고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모든 이력서가 거절당했을 때는 이곳의 삶과 관계에 지쳐 하루라도 빨리 뉴질랜드를 떠나고자 했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새 직장을 찾아 비자를 연장하고 특별 영주권까지 받게 되었을 때, 내 안에는 진실한 감사보다 알 수 없는 허탈함과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있었다. 졸업 후 5년간의 눈물과 재정을 쏟아부었던 그 영주권 신청서가 아닌, 갑작스러운 정부 정책으로 신청 2개월 만에 영주권이 나오자 내가 부어온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 보였기 때문이다.

체면상 또는 습관적으로든 영주권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주변에 말하면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물을 수밖에 없었다. 13년 동안 내 삶을 갈아 넣은 나의 ‘수고’가 아닌 뜬금없이 영주권을 받은 나도 과연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해야 하는지. 인생 속에서 무엇을 얻고, 얻지 못했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단정할 수 있는지. 내 안에는 눈물 섞인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과연 삶 속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들만을 은혜라 생각하고, 은혜라고 말한 그 사건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고난이라 원망하는 일을 종종 보고 또한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오늘날 성도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 ‘은혜’라는 단어는 너무 쉽고 가볍게 다뤄지며 그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놓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교회를 박해하였기에 사도로 칭함 받을 수 없다고 말함과 동시에,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수고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수고는 자기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확실히 못 박는다(고전 15:10). 이는 사람들 앞에서 은혜라 말하지만, 사실 나의 자랑과 수고를 나열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분명 달라 보인다. 과연 바울의 수고와 하나님의 은혜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을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종합 예술이라 불리는 이 뮤지컬을 위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도움의 손길들이 필요했다. 인맥이 없던 나였기에 구글과 코리아포스트, 인스타그램을 끊임없이 검색하며 메시지를 보내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도움을 요청했다.

예를 들어, 배우들의 이스라엘식 옷을 만들어줄 디자이너를 SNS에서 발견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일주일동안 답장을 기다리다 직접 그 옷가게를 찾아가 문 앞에서 들어가기를 한참을 망설였었는데 결국 만나 대화를 나눴지만 그분의 개인적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했었다.

최소 4명의 밴드 연주자, 악기 대여, 음향 감독, 무대 감독, 오클랜드 한인교회 장소를 안내할 스태프와 주차 봉사까지, 도움의 손길이 모자라고 또 모자랐다. 리허설이 없는 날은 퇴근하자마자 사람을 찾아 연락하고 그들을 방문하며 찾아다녔기에 이 부분들을 나의 ‘수고’라 말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것이다.

의지할 것 하나 없어 매일 밤마다 교회로 가 엎드려 기도했던 시간 속에서 나는 분명 나의 ‘수고’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 수고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이자 동행하심을 느끼는 기쁨의 증거였지만, 동시에 나를 교만하게 하고 사역적 열매의 보상을 받고자 하는 길로 이끌 수 있는 시한폭탄이기도 했다.

2024년 7월 공연을 앞둔 2주 전, 6개월 가까이 준비했던 공연을 취소할 각오를 하고 모든 배우들을 불러 모았다. 나와 배우들 사이에 너무나 큰 오해가 있었고, 그 간격을 더 벌리려는 말을 잠재우고자 가장 중요했던 밴드 연습까지 취소한 모임이었다. 나는 공연을 올려야 한다는 결심 하에, 많은 시간 침묵을 선택하며 배우들이 차라리 나에게 화살을 돌려 공연을 완주하길 원했었다. 그러나, 배우들은 내가 이 뮤지컬을 대충 소홀히 여기고 있고 공연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전해 듣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창작한 이 내용을 배우들이 부끄럽게 여기고 있고, 대부분이 이 팀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있었기에 나는 더더욱 언행을 조심하던 참이었다. 우연히 모든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을 때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있었음에도 그 모든 것을 가슴에 묻어두고 이 뮤지컬 메시지만 공연하고 뉴질랜드를 떠나고자 했다.

그러나 오해는 멈춰지지 않았고, 배우들이 더 이상 나에게 연습에 오지 말라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결국 모든 연습을 취소 후, 배우들과 모여 약 4시간 걸쳐 내 가슴속 이야기들과 그동안의 진실들을 털어놓게 되었다.

이 복잡한 갈등 속에서 배우들이 공연을 그만둘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너무나 컸기에,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며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상황들이 계속 나타났다.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은 나 역시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한다. 이 뮤지컬 이야기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로 만들어진 나의 ‘수고’가 열매의 보상심리로 흘러가지 않도록, 여러 흔들리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보게 하셨기 때문이다.

영주권을 위한 지난 삶의 순간을 돌아봤을 때, 나는 내가 수고하고 인내하며 심은 것들에 대한 결과를 보고자 했다. 체면과 겸손으로 포장할 수는 있어도, 나의 수고가 의미 없어지는 듯 보였을 때 느꼈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위한 ‘수고’를 세상의 일과 동일하게 여겼다면, 내 인생은 사역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하는 교만하고 불쌍한 사람이자,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로 귀결되었을 지 모른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나같이 배우지 못했고, 원망과 서운함이 가득 찬 이를 변화시켜 하나님을 위해 수고하는 은혜를 주셨다. 또한 그 수고가 나를 잡아먹어 교만하지 않도록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이끌어 주셨는데, 수고하는 모든 길목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나로 부인할 수 없게 하셨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았다. 시작과 과정, 그리고 끝마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경험해 보았건대, 어쩌면 바울 또한 자신의 수고와 하나님의 은혜의 관계를 이러한 마음가운데 고백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전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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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준영
2019년오클랜드 사랑의교회 집사. LoveU대표. 대학에서 회계를 전공하며 뮤지컬과는 연관 없는 삶을 살던 나를, 하나님께서는 지난 2년 동안 세 편의 창작 뮤지컬을 만들고 공연하게 하셨다. 크리스천 라이프에 매달 연재를 하며, 내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