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_이승현 쓰고, 이예빈 그리다

2025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5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쟁 중에 혼혈아와 전쟁 고아가 늘어났다. 혼혈아에서부터 전쟁 고아까지 해외로 입양을 보냈다. 전쟁이 끝나고나서도 고아 호적으로 만들어 해외 입양을 이어갔다. 더 나아가 장애 아동과 미혼모 영아까지 해외로 입양갔다. 오는 5월 11일 20번 째 입양의 날을 맞이하면서 한국전쟁과 입양에 관한 단편소설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어머니가 오셨네.”


어머니의 존재조차 몰랐던 유만은 세상에 태어나 비로소 처음으로 어머니를 불러보았다. 한때는 존재했으나 실체는 없고 이름만 남아있는 어머니.


“순 킴을 아십니까?”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잘못 걸려 온 전화려니 했다. 유만은 심호흡하고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저는 영사관에서 일하는 조영산데요. 전에 6.25 실종군인 찾기를 위해 DNA 표본을 보내신 적이 있었죠? 이번 실종군인 발굴 조사 과정에서 유만 씨와 일치하는 DNA가 나왔습니다. 순 킴은 한국식으로 하면 김 순인 것은 아시죠?”


서류에 기록만 되어 있던 김 순이라는 이름이 사람의 입으로 불리고 자기 귀에서 살아나는 순간, 유만의 송수화기를 든 왼손이 떨고 있었다. 머릿속은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서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귀에서 소리가 왕왕거리기만 할 뿐, 송수화기 저편에서 말하는 것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유만은 얼른 서재로 달려가서 따로 모아 놓은 서류철을 뒤져 사실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귀에 대고 있는 송수화기에서 손도 떼 지를 못하고 엉거주춤 그대로 서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해야 할 말도 뒤죽박죽 얽히고설켰다. 생각이 꼬이니 말도 꼬여 아~음~하면서 신음만 토해냈다. 아내가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마나 송수화기를 꽉 쥐고 있었는지 손안에서 땀이 나고 어깨와 팔이 저릴 정도였다.


“여보세요, 제 말이 들리지요? 지금은 실감 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관련 서류를 가지고 나오세요. 그럼 더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미 전화는 끊긴 신호만 보내고 있었지만, 유만은 여전히 송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아내의 얼굴이 어른거리자 유만은 그제야 긴 한숨을 쉬고는 혼잣말을 했다.


“유만 킴 코헨.”


자신의 출생 과정은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유만은 지나온 세월의 흔적 가운데 숨겨진 기억의 지문이 묻어있는 기록의 지도를 찾았다. 유만은 천사원에 맡겨졌다. 유만이 커서 입양서류에서 확인한 것은 어머니 김 순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은 유만.

국군 유해 발굴 감식단에 의해 6.25 참전 전사자와 유가족 DNA 시료 채취 방법이 제시되면서 전사 통지서를 받았지만, 시신을 찾지 못한 경우와 전투 중 실종군인은 20여 만 명 가운데 2만 9천여 명은 발굴하고 아직 17여 만 명의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김 순은 간호장교로 입관 후 전선을 따라 이동외과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전선이 급히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파견 나간 후 실종됐다가 뼛조각이 되어 어떻게 든 집에 돌아왔다. 김 순은 남으로 가는 피난길에서 전봇대에 붙은 여자 의용군 모집 공고를 보고 태어난 지 3개월 된 아이를 천사원에 맡기고 입대하여 교육대에서 낮에는 무기 사용법을 익히고 밤에는 포복 훈련을 받았다.


김 순의 뼛조각이 DNA로 확인되자 그 당시 함께 근무했던 소해인 간호장교를 만났다. 해인은 김 순에게 들은 대로 유만은 출생신고도 못 한 채 태명 그대로 근호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유만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근호였다는 것을 들었다.


근호 아버지는 김 순과 3개월 된 아들과 함께 피난 가다가 비행기에서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추억이 없이 자란 유만은 생소한 아버지 이국천은 사실적이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았다.


해인이 하는 말은 귓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귓등을 지나 흘러가는 바람 소리 같았다. 이국천이라는 말은 하늘 아래 공중에 떠 있는 뜬구름 같았다. 유만은 이해해 보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고 인정해 보려고 해도 인정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한꺼번에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 마치 흘러가는 물 소리 같을 뿐이었다.

해인이 기억하는 김 순의 모습은 젖이 넘쳐 힘들어하는 것이었다. 젖몸살로 끙끙거리며 앓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기엄마라는 사실을 숨기고 입대해서 젖가슴을 붕대로 칭칭 감아도 젖은 흘러넘쳐 붕대를 적시고 훈련복까지 젖힐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군사훈련으로 땀이 유난히 많은 것으로 미뤄 짐작했지만, 땀내보다 시큼한 젖내는 감추지 못했다. 동기들은 알고도 모른척하거나 다른 내무반에 있던 동기들은 코를 킁킁거리기도 했다.


시간이 가면서 조교들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어도 애써 따지거나 묻지도 않았다. 김 순도 묻지 않는데 일부러 먼저 말하지 않았다. 아니 긴장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의 훈련이 고되어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됐다.


근호는 사변둥이라고 했다. 6.25가 터진 해에 태어난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 근호라는 이름만 들었을 뿐 사진 한 장 없이 얼굴을 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라고 혜자가 말했다.


유만은 입양서류에 첨부된 흑백사진이 자신을 나타내는 첫 번째 증명이었다. 낯선 아이의 모습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마치 이 사진이 자신이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인은 근호 아버지가 교사였다고 말하는 김 순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도 않았다. 물어서 다시 아픔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동기들은 먼저 말하기 전에는 아무 말도 안 하려고 했다. 지금 살 수 있고 먹을 게 있고 안전하게 잘 곳이 있는 것에만 감사했다. 훈련 중에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깊이 잠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훈련이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는 동기도 있었다.


군의관이 지시하는 붕대와 약을 필요한 곳에서 척척 찾아 다 줄 정도로 반복되는 의무교육으로 귀로나 복창하는 입이나 움직이는 손발이 따로 놀지 않을 정도가 됐다. 전선의 상황에 따라 간호인력이 더 필요했지만, 당장 경험 있는 간호원이 없어 전투 상황에 따라 훈련을 마치고 사단에 배치되어야 했다.


간호장교 후보생은 시험을 보아야 했다. 시험에 떨어지면 간호장교가 되지 못했다. 떨어진 동기들은 일손이 급한 외과 이동병원이나 국군병원에 보조원으로 근무했다. 더 나아가 여고생의 자원봉사 지원으로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간호교육을 하고 도움을 받았다.


해인과 김 순은 대구 육군병원을 시작으로 전선을 따라서 이동외과병원에서 근무했다. 전선으로 이동 중에 인민군과 마주쳐 전투가 벌어졌다.
후퇴하다가 해인과 김 순은 인민군에게 붙잡혔다. 그들은 이북으로 가는 트럭에서 야밤에 뛰어내려 무작정 남쪽으로 향하는 철길을 따라 밤에만 걸었다.

해인은 그때 트럭에서 뛰어내리면서 엉치뼈를 다쳐 지금까지 왼발을 절었다. 낮에는 철길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철길로 걸었다.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자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걷고 또 걸었다.


가다가 만난 사람들은 같은 피난민으로 보지 않고 인민군으로 착각했다. 군복은 입었으나 여군도 아니고 간호장교라는 말은 더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낮 무렵 해인과 김 순은 포탄이 떨어지는 곳에 있었다.


마을 근처에 숨어 있는 피난민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탄이 쏟아졌다. 폭탄은 쉬지 않고 떨어졌다. 아비규환이었다. 지옥이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북진하는 부대를 만난 김 순은 이동외과병원으로 전속됐다.


고지전에서 화상과 파편상뿐만 아니라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부상자들이 고지 탈환 작전을 하고 나면 실려 왔다. 포탄이 터지면서 흙먼지 파편이 몸을 뚫고 들어와 감염시켰다. 파상풍이었다. 감염된 상처에 부글부글 가스가 발생하면서 피부가 썩어들어가는 가스괴저병이 생겼다.


파상풍과 가스괴저 환자는 깜깜한 암실에 입원시켜 빛과 소음을 가능한 한 막으려고 했다. 빛이 들어오면 신경 자극이 심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간호원은 맨발로 소리 죽여 가며 부상자에게 다가갔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즉각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그곳에서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다가 일주일 사이에 죽어갔다.


해인은 김 순에게 잊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외과 수술실에서 군의관을 돕던 김 순은 한 군인이 수술 중에 죽는 것을 보았다. 여기저기 터져 나간 살점과 파편을 제거하다 죽은 군인의 가른 배도 제대로 꿰매지 못했는데, 생사가 오가는 부상자보다 살 가망이 있는 부상자를 먼저 살려야만 하는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어머니를 부르며 죽었던 군인에게 정말로 그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아직 그의 몸은 굳기 전의 상태였는데 죽은 아들을 확인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고 하더니 자신의 혀로 아들의 몸을 정성스럽게 얼굴부터 핥아 내려갔다. 그 순간 수술실에 있던 군의관과 간호장교 그리고 일손을 돕던 의무병도 하던 동작을 멈추었다. 죽은 아들과 어머니의 작은 움직임은 살려 달라, 죽겠다며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는 수술실과는 다른 낯선 모습이었다.


정전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직선과 곡선으로 이어지는 정전협정안은 시간만 끌었다. 기존의 38선을 그대로 하자는 조선인민군과 현재의 전선으로 하자는 미군의 대립은 해를 넘기고도 이어졌다. 남북한의 경계선을 놓고 주도권 싸움으로 38선을 중심으로 고지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화살머리고지에서 치러진 전투에서 죽어간 전사자는 전사 통지서 또는 실종확인증이 가족에게 전달됐다.


휴전선을 따라 248Km에 걸쳐 남북한 유골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유해 발굴은 무기, 전투복, 계급장이나 철모, 수통, 탄약을 비롯하여 빗, 칫솔, 컵, 숟가락, 만년필, 약병, 도장, 결혼반지와 같은 개인 소지품을 통해서도 신원 파악을 하고 있었다. 유해의 치아와 DNA 조사를 통해 사망 이유와 나이를 파악할 수 있도록 3D 입체 프린터를 이용하여 가상으로 복원했다.

6.25전쟁이 3년을 끌면서 혼혈아가 생겨났다. 그 숫자가 늘어나면서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은 혼혈아를 아버지의 나라로 보내라고 했다. 처음에는 미국 중심으로 혼혈아와 전쟁고아를 보내다가 점점 해외 입양이 늘어나면서 유럽까지 가게 됐다.


1961년 한 신문기사에는 은평국민학교에 고아원에서 보낸 전쟁고아들이 대부분이었고, 혼혈아는 불의의 아이들이라고 적고 있었다. 유만은 전쟁 직후 혼혈아와 전쟁고아가 미국에 보내질 때 코헨 부부가 입양했다.


유만은 4살 무렵에 미국의 코헨 부부에게 공항에서 전달됐다. 코헨 부부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어 유만은 막내처럼 미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큰 굴곡 없이 성장했다. 자라면서 양부모와 형제들과 다른 외모로 인해 차별은 당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구별된 느낌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유만은 해인이 기억하는 김 순의 고향 주소를 들고 길을 나섰다. 찬 우물 삼거리에 버스가 멈추었다. 버스에 남은 세 사람은 밀려나 버려지듯이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는 왔던 길로 돌아섰다. 눈길을 헤치고 가던 버스가 흔들렸다.


찬 우물 삼거리 버스정류장 푯말 곁에 선 가로등이 깜박거렸다. 유만과 배부른 소녀와 초조해 보이는 사내는 길에 버려진 듯 눈 내리는 신작로에 서 있었다. 그들은 한 곳을 바라봤다. 허름한 버스정류장이 삼면만 벽이 있었고 앞은 퀭하니 터진 곳이었다. 배부른 소녀가 그 안으로 들어가자 두 사내도 따라 들어갔다.
눈발이 잦아들자 배부른 소녀는 멀리 산줄

기가 버드러진 곳에 있는 마을로 난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엉거주춤 서 있던 두 사내도 길로 나섰다. 휘돌아 가는 길에는 커다란 탱자나무가 눈을 맞고 있었다. 가는 길에는 제방 둑이 있고 안쪽에는 갈대가 무성했다. 갈대밭 너머의 저수지에서는 철새 떼가 날았다. 길 건너편에는 갯가가 보이고 길은 들녘과 닿아 있었다.


유만이 걷는 길은 외줄기로 흐르는 물처럼 낮은 곳을 지나 흘러가는 듯했다. 유만을 지나 성큼 앞서가던 사내를 따라 유만은 눈꽃이 날리는 하늘을 무심히 올려다보고는 천천히 길이 오라는 대로 몸을 맡기고 걸었다.


유만의 구두코는 사내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었다. 눈은 앞서가도 천천히 가도 유만을 따라왔다. 사내의 발걸음도 느려지고 따라가던 유만도 잠시 쉬어가자는 몸의 재촉을 느꼈다.


눈은 내리고 고요하던 길에는 숨소리와 더불어 눈을 밟고 따라온 유만의 발걸음 소리에 뒤를 돌아본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사내도 유만을 기다렸다. 찬 우물 버스정류장에서 버려지듯 내렸던 세 사람 가운데 배부른 소녀는 무거운 몸으로 저만치 가고 있었다. 두 사내는 배부른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길을 걸었다.


두 사내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자 그녀는 거친 호흡을 하며 힘이 드는지 양손으로 불룩 나온 배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유만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기를 바라며 가만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숨을 고른 그녀는 머리에 내린 눈을 털더니 웃어 보이는 듯 입가를 살짝 움직여 작은 입술을 벌려 말했다.


“조강리 가세요?”


말없이 걷기만 하던 사내도 이 말을 들었는지 손을 들었다. 유만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제야 안심을 한 듯 그녀는 보조개를 만들며 웃는 얼굴을 했다. 유만은 그녀와 조금 떨어졌지만, 그녀의 발걸음과 비슷하게 걸었다. 사내도 유만을 따라 나란히 발을 디뎠다. 세 사람은 말없이 굽어진 길을 걸었다.


서로는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를 생각하는 중인 듯 발걸음이 지칫거렸다. 걷다 보니 그녀가 가운데서, 사내는 갯벌에서 부는 눈바람을 맞으며 걷고 유만은 갈대를 스치며 걸었다. 눈이 내렸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세 사람은 작은 언덕길에서 잠시 섰다. 세 사람의 머리와 어깨에는 눈이 쌓였다. 길은 여전히 갈대와 갯벌을 가르며 저 멀리 이어져 있었다. 두 사내가 말이 없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조강리에 사는 외할아버지 집에 가는 길이예요. 저도 거기서 태어났거든요. 엄마 아빠가 도시로 돈 벌러 나가고 쭉 할아버지와 살다가 저도 도시로 살러 갔다가 이제는 집으로 가는 길이죠.”


혼잣말하듯이 말을 이어가던 그녀는 한숨을 푹 쉬고는 짧게 말을 이었다.


“아직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지.”


사내의 눈은 북쪽을 쳐다보았다. 유만은 사내와 그녀를 번갈아 보면서 어떤 말이든 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이 얼른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눈만 껌벅거리기만 하던 유만은 조강리라는 말은 확실히 알아들었다는 듯이 짧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를 따라가면 어머니의 고향에 가리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유만은 해인이 준 쪽지를 꺼내 사내와 그녀가 보도록 했다. 쪽지에 쓰인 글자가 보이지 않자 사내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켰다.


‘경기 월곶 조강리. 이국천, 김 순’


유만이 내민 쪽지를 바라보던 사내와 그녀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생각이 났다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면 될 걸요.”


사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사내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린지 어깨를 움츠렸다. 세 사람은 눈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마을 입구에 조강1리라는 푯말이 보이자 그녀는 조금 앞서서 걸음을 내딛었다. 익숙한 듯 걷던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어서 따라오라는 듯 손사래짓을 했다. 마을 길을 이리저리 지나 앞서가던 그녀를 따르던 두 사내는 산자락 아래 외떨어진 한 집에 섰다.


“할아버지, 희진이 왔어요.”


유만과 사내는 뒤에 그대로 서고 희진은 대문조차 없는 허름한 집 마당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조용했다. 희진이 창호지를 바른 문을 열었다. 서둘러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간 희진은 한참을 누군가와 두런거리더니 얼굴을 문밖으로 내밀고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사내와 유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는 엉거주춤 문으로 다가갔다. 사내가 먼저 댓돌에 신발을 벗고 툇마루에 올라서고 한두 걸음을 걷고 나서 키 낮은 문안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다. 유만도 사내를 따라갔다. 문안에 선 유만은 어두운 방에 낮은 촉수의 알전구에서 내는 빛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낡은 벽지에 기대어 앉은 늙은이는 병이 깊은 듯 잦은 기침을 했다. 희진이 손끝으로 가리키는 자리에 불편하게 앉은 유만에 비해 사내는 자연스럽게 책상다리했다. 방을 덮고 있는 어둠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서로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오셨소?”


유만과 사내는 서로를 보다가 유만이 입을 열었다.


“나는 유만이다. 미국에 입양갔다. 어머니의 유해를 찾았다. 김 순은 조강리로 시집왔다가 전쟁이 났다. 아버지는 이국천이다. 교사였다. 피난 가다가 죽었다. 이국천이라고 들어봤나, 아니면 김 순은…”


잠자코 유만의 말을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기억에 없는 듯 머리를 돌리고 한참 기침하고는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내가 살던 조강리가 아니고, 전쟁 나고 피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살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거야. 조기를 잡던 어부들은 전류리로 가고 농사를 짓던 농부들은 여기 남아서 농사를 짓거나 장사하던 사람들은 인천으로, 도회지로 갔지.”


잔기침을 하고나서 “인천에서 염하를 거슬러 오는 배들과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고 흐르는 곳에 송포, 조포, 마포, 강나루와 전류마루를 지나오면 모두 여기 조강포에 모였다가 떠났거든.”


할아버지는 회상에 젖은 듯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이를 두고 ‘조강에서 여강까지’라고 했지. 여기 조강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고 황해도의 예성강이 흘러오고 염하까지 만나는 모든 강이 모이는 강이라고 해. 조강 건너편도 황해도 개평군 조강리이야. 전쟁 전에는 배로 조강을 건너 오갔거든.”


할아버지의 말을 듣던 사내는 눈빛이 빛나더니 왼손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키다가 손을 다시 북쪽을 가리켰다. 마치 자신이 조강 건너편 조강에서 왔다는 듯 그러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손바닥에 무언가 쓰는 흉내를 냈다.

희진은 종이와 연필을 찾았다. 희진은 종이와 연필을 주면서 자신이 여기를 떠나기 전에 쓰던 것이라고 했다. 종이와 연필을 든 사내는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류시원. 탈북자. 아버지의 고향이 저 건너편 조강리. 아버지가 그리워 고향 땅을 보려고 무작정 왔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농사짓고 있다. 나는 한의사다.”


방 안은 따듯한 알전구가 내비치는 빛이 벽 모서리에 낀 얼룩까지 드러내 주고 있었다. 조강에 모인 사람들. 희진은 익숙한 듯 무거운 몸을 일으켜 작은 문을 열고는 한 손으로 더듬거리며 무엇인가를 딱하고 누르니 방 안보다 더 낮은 불빛이 켜졌다.


어둠을 밝히는 작은 알전구에 비친 검게 그을린 부엌이 보였다. 구멍이 숭숭 나고 손때가 잔뜩 묻어난 문고리에는 문을 여닫기 쉽게 하려고 줄이 달려있었다. 희진은 작은 문을 열어둔 채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먹을만한 것을 찾았다.


유만은 시원과 종이를 사이에 두고 필담으로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진지하게 서로를 쳐다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유만과 사내가 종이에 적어 가리키는 단어를 보지만, 눈이 침침 한지 제대로 소리내 발음조차 내지 못했다.


유만이 서툴지만, 천천히 어눌한 말로


“이국천을 아세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참이 지나자 희진이 힘겹게 개다리소반을 작은 문안으로 올려놓았다. 시원이 앉은뱅이걸음으로 다가가 소반을 들었다.


개다리소반에 둘러앉아 희진이 떠주는 밥이 상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묵은 김치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생선으로 끓여낸 매운탕을 보던 유만은 더운 김이 나는 쌀밥을 한 숟가락 뜬 다음에 쉰내 나는 김치 한 조각을 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밤에도 눈이 내렸다. 할아버지의 전쟁 이야기를 듣다가 아랫목의 벽에 기댄 유만. 지붕에 쌓인 눈이 처마를 타고 흘러내리다가 가끔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만은 꿈속에서 낯선 김 순을 만났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유만이 돌아온 날은 눈이 오고 있었다. 이월 그믐날과 삼월 초하룻날 사이에 유만이 김 순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날은 겨울도 봄도 아닌 그 경계에 머무는 윤달 이십구일이었다.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그날에 유만이 눈과 함께 왔다. 눈이 먼저 왔는지 유만이 앞서 왔는지 유만의 뒤를 따라 눈이 왔는지는 그 어느 것 하나가 중요하지 않았다.


유만이 온 것이 중요했다. 유만을 멀리 보내고 나서도 김 순은 유만을 다시 만나기를 기다렸다. 유만이 돌아오는 그날을 바라면서 말이다. 유만이 김 순의 눈앞에서 보였던 그때 눈도 보였다.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럽다고 하면서 말로 표현하거나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김 순이 유만을 본 것은 피에 젖은 군복을 빨던 분주한 때에 부상병인 줄 몸이 벌써 알고, “어디가 아파요?” 하며 쳐다볼 때였다. 환영인 줄 알았다. 유만이 불쑥 김 순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김 순은 나이가 든 유만을 본 것이었다. 그때 빛바랜 천막이 살그머니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꼈다. 눈비나 해를 피해 볼 요량으로 세워 둔 천막에 이어 붙여 늘어뜨린 비닐 가리개가 떠는 소리를 냈다.


김 순이 군복을 빨려고 끌어온 물이 토해내는 검은 호수가 뱀장어처럼 꿈틀거렸다. 김 순이 호수를 잡고 있던 한 손은 힘이 풀렸고 피 묻은 군복을 든 한 손마저 떨렸다. 천막 안에는 수술대에서 배를 가르고 튀어나온 내장과 피부마저 벗겨진 채 죽은 군인의 머릿결이 흔들렸다.


콸콸 쏟아내는 물은 호수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유만의 낡은 구두코에 튀었다. 김 순이 얼굴을 떨구고 본 유만의 구두가 붉게 물이 고인 웅덩이에 서 있는지 떠 있는지 분간을 못 했다. 유만의 구두는 검은 호수에 서 쏟아내는 물이 바닥에 튕겨내는 물방울을 맞고 있었다.


유만의 구두코가 내리는 눈이 녹으며 생긴 얼룩인지 호수에서 토하듯 나온 물에 의해 젖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유만의 구두코가 젖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바람에 천막이 흔들리고 호숫물은 흐르고 유만이 선 길 뒤로 바람이 지나갔다. 붉게 물든 물그림자를 밟고 선 유만의 구두코가 아른거렸다.


“아랫배가 아파요.”


귓가에 맴돌던 소리에도 김 순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김 순은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새를 한 손으로 내쫓으며 아프다고 말하는 유만을 쳐다보지도 않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픈 것은 지나가면 괜찮아요.”


검은 호수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소변이 마려웠다. 눈을 떠보니 알전구 아래 할아버지는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내는 밥을 먹고 난 개다리소반에서 한 손으로 김치를 집어먹으려 했다. 유만은 고개만 벽에 기대어 있고 몸은 스르르 아랫목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유만은 꿈의 환등기에서 만난 김 순을 기억해 보려고 했다. 꿈에서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젖은 구두코였다. 젖은 구두를 벗지 않으려고만 했던 유만은 알전구 불빛에 내려앉아 검게 물든 구석진 그늘에서 아른거리는 것을 보려고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희진이 그늘진 벽 모퉁이에 몸을 기대고 사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만은 참기 힘든 아랫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눈은 그쳤고 달은 저 만치에서 구름 사이로 혼자가 되어 흘러갔다. 담장도 없고 집의 경계도 모호한 곳에 있는 작은 움막이 화장실이려니 생각하고 가까이 가서 적당한 곳에 소변을 보려고 바지춤을 내렸다.


남자오줌은 꽉 차 있었지만 소변줄기는 시원찮게 나오다가 그만 바지를 적셨다. 들녘은 은빛으로 빛나고 나무마다 눈을 이고 있었다. 유만은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낯선 풍경이었지만 전에 있었거나 살았던 곳처럼 편안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냄새는 묵은 김치에서 나는 것임을 코끝으로 알 수 있었다. 늘 알 수도, 맡을 수도 없었던 낯선 냄새가 나는 이곳에 서서 보니 엄마의 자궁 안에 있는 듯했다. 유만은 탯줄이 남긴 흔적인 배꼽을 만져보았다.


늘 걷잡을 수 없었던 외로움이 몰려들거나 온몸이 아파 침대에 누워 끙끙 앓으면서도 그리워했던 그 편안함이 깃든 이곳이 향수를 불러오는 고향인 것을 말 안 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이 내렸다. 할아버지를 따라 집을 나섰다. 조강 건너에서 왔다는 시원과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왔다는 유만.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살았던 조강. 희진과 그의 아버지도 태어난 곳에 찾아온 눈발은 성기기만 했다. 태백산 삼수령에서 스며든 물은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골리천, 조양강, 동강을 굽이굽이 돌아 양수리에서 두물머리로 북한강을 만나고 한강이 되어 임진강과 합쳐져 조강을 이루어 서해와 한 몸을 이뤘다.

조강에서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강화해협을 염하, 소금강이라고 했다. 강의 첫물은 여리고 어린 물이었지만 흘러내리는 동안 점점 물이 모이고 모여 강물이 되어 힘차게 요동치며 흐르는 청년의 한강이 됐다.


청년의 한강은 임진강과 만나고 바다에 다다르다 보면 북에서 내려온 예성강도 합쳐지면서 강이 늙어간다고 여겨 할아버지의 강인 조강이라 불렀다. 조강은 넓은 갯벌, 습지, 강 이쪽과 강 건너편의 논밭을 품은 외로운 이름이 됐다.


조강 가운데에는 새도 머무르는 섬인 유도가 보였다. 섬의 경계가 남쪽과 서쪽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모습이 제비 꼬리 같다고 해서 유도라고 할아버지는 손끝에 보이는 섬을 가리키며 말했다.


눈 덮인 조강리에서 보면 멀리 한남정맥 끝자락의 나지막한 산이 문수산이고 애기봉이었다. 무수산에서 보면 태백산의 영험한 물이 흘러와 합쳐지는 조강을 볼 수 있다. 강물이 모여 물길을 내면 뱃길로 이어지던 조강은 한국 정전 이후부터 뱃길이 끊겼다.


사람의 왕래조차 거절하는 단절의 강에도 눈꽃이 내려앉았다. 잊힌 강, 이름조차 부르지 않는 강은 한강 하구로 불려 유유히 오늘도 흘러갔다. 조강은 자유로운 강이지만 사람의 길을 막았다.


한국 정전협정 1조 5항에는 “한강 하구의 수역으로서 그 한쪽 강 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 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용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라고 했다. 분명 남북한의 민간 선박의 왕래가 자유롭게 통행하는 지역으로 지도까지 첨부했지만 1960년 남북한의 순시선이 왕래했다가 남북한의 긴장이 올라가면서 통행이 막힌 금단의 강이 되어버렸다.


한반도는 1945년 해방이 되었어도 통일되지 못하고 남북한을 가르는 38선이 생겼지만 남북한의 조강리를 잇는 뱃길은 사람에 의해 이어졌다. 그러다 1950년 6월 25일 황해도 강령포를 통해 조강을 건넌 조선인민군은 김포로 진격해 왔다.


눈 덮인 너른 갯벌에는 겨울 철새인 재두루미 떼만 머물고 있었다.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아 적막하기만 했다. 모든 것이 소멸하여 가는 강에는 강물만 흐르고 있었다. 사람의 흔적을 지운 조강. 포구의 기억이 사그라진 조강. 문수산 애기봉에서 보면 조강에서부터 강물이 거꾸로 뒤집혀 흘러 들어가는 전류리가 있었다. 황토물이 마치 중국의 황하와 같았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기에 고향 집이 있었어.”
“전쟁 나고 밤에는 보초 서고 낮에는 산에서 내려와 지내는 동안 악몽이었지. 밤에 적을 만나면 조준하고 있다가 총을 쏴야 했어. 적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전쟁이 치열할수록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학도병으로 전선을 따라가며 싸웠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을 이었다.


“그해는 유난히 추웠어. 중공군과의 고지전은 참 치열했어. 철원에서 여러 차례 후퇴와 진격을 반복하다가 밀려오는 중공군과 싸우다가 다쳐 이동외과병원에서 수술받았지. 그때 유난히 아파하던 나를 ‘죽을 것같이 아파도 지나고 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던 젖비린내가 나는 가슴으로 다가와 붕대를 갈아주던 간호장교가 생각나네… 정전까지 고지 탈환을 반복하다가 결국 지켜냈지만 1중 대원 중에서 4명만 살았더라고.”

유만은 간호장교라는 말에 귀가 번쩍했다. “그 장교를 아나요?”라고 물어도 할아버지는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강에 남았던 가족은 전쟁 나던 그해 11월에 김장한 것을 김칫독에 넣고 겨울을 대비하려고 볏가마까지 덮어두었지. 군인들이 떠나라고 해서 이불과 간단한 것만 지게에 지고 피난을 갔어. 정전한 뒤에 이곳에 와 짚으로 엮어 움막을 대충 짓고 살았어. 후에 군용 천막을 주어 그 추운 겨울을 견뎌야 했지. 겨울만 지나면 고향에 갈 거라고 했던 것이 지금까지 집에 가지도 못하고 살고 있네.”


텅 빈 들판은 터키군이 들어와서 모두 밀어내어 생긴 것이었다. 그러다 진달래꽃 필 무렵부터 씨를 뿌렸다. 뱃사람은 떠났어도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이젠 더 이상 농사지을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피난 나간 친구도 고향을 잃고 떠돌다가 병들어 고향에서 가까운 이곳에 죽어 장사 됐다.


죽은 그 친구는 자식과 살던 도회지에서 없어지거든 고향에 간 줄 알라고 자식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죽으면 고향이 보이는 언덕에라도 묻어주라고 했다. 고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떠나는 동안에 조강을 기억하고 오는 사람이 있어 기쁘다는 할아버지.


철새는 자유롭게 조강을 날아다니고 북녘 땅에서 먹이를 찾고 남녘 땅에서 새끼를 낳는데도 조강을 사이에 두고 철조망이 벽이 되어 사람의 왕래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철조망을 친 곳이 집이 있던 자리고 친지가 살던 집터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남북으로 갈라놓은 철책선은 조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조강에는 사람이 살았고 사람이 살아갈 곳이 되려면 철조망을 걷어내야 하고 철책선이 필요 없는 그날이 어서 와야만 했다. 강만 열리면 되는데 서로 다른 사상과 사조의 관념 벽을 허물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조강에 살았던 사람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고향이 보이는 곳에 묻혔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애기봉에서 성탄 등탑에 불을 밝혀 시원도 불빛을 바라보면서 조강이 열리는 날을 그려 보리라.


전쟁이 할퀸 자리에는 사람이 살던 흔적도 사라지고 성긴 눈발이 흩날리는 들녘만이 남아있었다. 유만의 구두코는 눈을 밟으며 길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을 나섰다. 눈을 밟을 때마다 나는 소리는 서로 혼자이면서도 하나의 음률을 내듯이 서로 어우러졌다.


나무들이 따로따로 떨어져 자라더라도 더불어 숲을 이루듯이 엄마는 하늘의 별이 되 지는 별이 되면 하늘에서 엄마별과 나란히 었다는 것을 유만은 느끼게 됐다. 유만도 빛날 것을 알게 됐다.


산줄기가 버드러진 곳에 있는 마을을 구석구석 살펴보던 유만은 전쟁이 할퀸 고향 집에 돌아가려고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뤄지고 고향에 찾아온 희진과 시원이 홍연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눈길을 걸었다.


느티나무를 지나고 탱자나무 아래에서 잠깐 쉬던 유만은 갈대와 갯벌 사잇길을 휘돌아 가는 보릿고개를 넘었다. 찬 우물 삼거리 버스 푯말이 보였다.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들고 한 두 사람 모여들었다. 해가 뜬 버스정류장에는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시겨?”
“조반 잡수셨시까?”
“험자, 어디 가시겨?”
“장에 가이다.”


유만은 정겨운 한국어의 운율에 편안함을 느꼈다. 유만에게도 아는 척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정겹게 웃는 얼굴을 했다. 얼굴이나 모습이 비슷비슷하여 혼자만 다른 인종이 아니라 오랫동안 더불어 살아온 이웃을 대하듯 유만은 그동안에 알게 모르게 눌린 압박감에서 슬슬 풀어졌다. 유만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검게 그을린 어둠의 그늘이 아침햇살을 받으며 사라져가는 느낌을 받았다.


조강리에 사는 할아버지와 희진 그리고 시원에게 조강이 열리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유만은 찬 우물 삼거리에서 동네 사람들과 같이 읍내 장날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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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현
본지 발행인. 마운트 이든교회 담임.“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생명구원”(요한복음 20:31) 위해 성경에 기초한 복음적인 주제로 칼럼과 취재 및 기사를 쓰고 있다. 2005년 창간호부터 써 온‘편집인 및 발행인의 창’은 2023년 446호에‘복 읽는 사람’으로 바꿔‘복 있는, 잇는, 익는, 잃는, 잊는 사람과 사유’를 읽어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