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드림의 나라와 홈리스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미국은 특별한 나라입니다.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동맹국임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최고의 선진국,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로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념과 종교의 자유가 있고,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실용적이며 자유 경쟁 체제 속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기회를 누릴 수 있는 나라로 인식돼 왔습니다.

2012년 12월 말,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신학대학원 학업을 위해 뉴질랜드를 떠나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 이전에도 단기로 미국을 방문했었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기대가 있었습니다. 장기간 이곳에 살면서 이 나라의 무한한 잠재력과 위대함을 경험할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와 환상이 깨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2008년 전 세계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많은 미국인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낮은 금리로 주택대출을 받은 후에 갑자기 이자율이 높아지면서 심각한 수준의 경제공황을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노동인구의 6%에 해당하는 900만 명의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산층의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장과 비즈니스를 잃고 홈리스가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내가 미국 땅을 밟았을 때는 그 여파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한인들도 경기 침체 속에서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자바시장으로 대변되는 한인 의류 산업계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홈리스를 마주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신학 공부를 했던 신학대학원이 있는 곳은 캘리포니아 LA 카운티에 속한 Pasadena라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미국 최상위 공과대학 중의 하나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이 있고, 매년 1월 1일에는 신년 퍼레이드가 열리는데 미전역에 생중계가 되고, 이 행사가 끝나면 곧바로 슈퍼볼 미식축구가 열리는 곳입니다. 백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전형적인 부촌입니다.

당시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미국장로교회에 한인 목회자 목회하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도 나누는 가운데 어느 날 교회에서 홈리스 봉사를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그 지역의 교회들이 돌아가면서 섬기는 봉사였습니다. 오후에 교회에 모여서 음식을 준비해서 함께 봉사 장소로 출발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어느 미국교회의 강당이었는데 농구 코트가 3개나 있는 넓은 규모였습니다.

그곳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그 넓은 강당에 군용식 간이침대 수백 개를 설치했습니다. 홈리스들의 잠자리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런 백인 동네에 도대체 홈리스들이 얼마나 되길래 이렇게나 많은 간이침대를 준비하는 것일까? 조금 지나자 삼삼오오 가족 단위의 홈리스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 넓은 강당이 홈리스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또 한번은 새벽기도를 마치고 어떤 집사님이 식사를 대접한다고 해서 LA 시내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고난 다음에 전철역에 데려다주었는데 다운타운의 Skid Row라는 지역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바깥에 펼쳐지는 풍경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집사님도 이 지역은 절대 걸어서 다니면 안 되는 곳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거리가 마치 난민촌을 방불케 하는 곳이었습니다. 거리에 텐트가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홈리스들이 아이도 낳고 그냥 거기서 사는 것입니다. 다운타운 지역 범죄의 60%가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곳이었습니다.

아메리칸드림의 나라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왜 이것을 방치하는가? 과연 미국은 크리스천 국가인가? 도대체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작동하는 나라인가?


지금은 뉴질랜드로 돌아와 교회에서 홈리스 사역을 시작한 지 7년째가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분 중에는 슬프게도 홈리스 사역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홈리스 사역에 부정적인 분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홈리스=가난=게으름=악”이라는 등식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제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뉴질랜드에는 수당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왜 게을러서 홈리스가 된 사람들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까?” 하면서 오히려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합니다. 이것은 오해입니다. 홈리스 문제는 가난과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탐욕적인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고 멘탈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한국전쟁 이후에 베이비붐 시대와 경제부흥 시대를 거치면서 가족이 밥 굶지 않고 사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는 굶어가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무엇이든 열심히만 하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사회환경도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는 것이 눈에 보이고, 먹는 것만 해결되면 행복할 수 있는 단순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밥만 먹고 사냐?”라는 말이 대변하듯이 인간의 욕구는 더 다양해졌습니다. 특히 부와 관련해서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미국의 극단적인 자본주의자들은 “돈이 없는 사람들은 죽어야 한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실제로 미국 사회는 엄청난 의료비용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픈데도 그냥 참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든지 사업에 실패하고, 실업자가 되고, 가정이 깨지면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며칠만 길거리에서 지내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줄을 놔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멘탈이 무너지고 홈리스가 되는 과정입니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홈리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와 학교 주위에 있는 교회들에서 신학생들을 위해 부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공부하던 학교에는 학생부 주관으로 매주 수요일 오후에 학교 한켠에 있는 창고 앞에서 부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캔류의 식료품, 과일과 야채 등을 도네이션 받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한인교회에는 토요일 오전에 신학생 가정을 위해 채소와 라면과 다양한 식료품을 나누어 주었고, 또 다른 교회는 한 달에 한 번씩 냉동된 돼지고기와 계란과 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처음에 바구니를 들고 홈리스처럼 길게 줄을 서서 부식을 받으러 기다리는데 마음속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구걸해서 생활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자괴감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일시적인 필요 때문에 내가 도움을 받는 것이고, 뉴질랜드로 돌아가면 내 집이 있고 내 가족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그때 일을 생각해 봅니다. 만약 내가 정말 직장을 잃고, 가정을 잃고, 의지할 데 없는 홈리스가 되어서 구걸하며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한겨울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콘크리트바닥에서 그 긴 밤을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개월을 보내면서도 과연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런 희망없이 인간성을 유지하면서 버텨낼 수 있을까?

믿는 자들에게 이 땅은 영원한 처소가 아닙니다. 머리 둘 곳 없었던 예수님도 그러셨듯이(마 8:20) 우리도 영적인 홈리스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갈 곳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견딜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육적인 홈리스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크리스천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서 그들도 품을 수 있는 건강한 교회를 세워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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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주표
미국 Fuller Seminary 선교학 석사, LA World Mission University 목회학 석사, 감사선교교회 담임. 7년째 오클랜드 시티 도서관 옆에서 매주일 오후 12시 30분 홈리스 위한 거리예배와 음식나눔 봉사, 한인 위한 행복의길 상담사역 하면서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나눈다(www.facebook.com/thanks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