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 나를 바라보는 즐거움

직면의 사전적 의미는 ‘정면으로 맞닥뜨리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직면하기 가장 어려운 상대는 나 자신이다. 내 안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 온갖 약점과 상처와 열등감이 가득하기 때문에 젊었을 때는 나 자신을 직면하는 일을 피해 다녔다. 그래서 직면의 반대말은 가면이다. 직면하지 못하면 가면을 쓰게 된다.

나 역시 나를 숨기기 위해서 내가 아닌 나를 사는 모습들이 많았다. 그래서 많이 포장했고, 도망가기 일쑤였고, 비겁하게 숨기고 감출 때가 많았다. 평생을 도망 다니면서 살았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니 용기가 났다. 나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왜냐하면 누가 나를 주시하지도 않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도 없어지고, 내 모습을 포장해서 잘난 척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나이 드니 이런 시간도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도망가지 않게 되었다
직면하지 않을 때는 늘 내 안에 불안과 죄의식이 까닭 없이 나를 억눌렀다.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자신 없어 하고 죄지은 것 같고,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은 초조함에 쫓기며 살았다. 그런데 보는 사람 없고, 찾는 사람 없고, 기대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나니 내가 나를 외면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직면하면서 나와 내가 마주하게 되었다.

직면은 Face이고, 대면은 Face to Face이다. 내 안에 있는 나와 내가 대면하게 되었다. 대면해 보니 그동안 너무 수고했다. 무언가를 잘해 보려고 애쓰고 노력한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를 보듬어 안아 주었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의 약점 그대로, 실수 많은 그대로, 약한 모습 그대로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었더니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안아 줄 수 있는 힘도 생겼다. 내면의 질서가 생기면서, 이제는 더 이상 도망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이것이 노년의 복이라 생각한다.

과거에 메이지 않고 또한 앞날을 미리부터 염려하지 않게 되었다
마더 테라사는 ‘절망에 빠지는 이유는 대개 우리가 과거와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성경에서도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지 말라.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사 43:18 우리말).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의 것으로 충분하다.”(마 6:34)고 말씀해 주셨다.


정말 그렇다. 지나온 삶, 실패하고 싶어서 실패했던 것이 아니고, 망치고 싶어서 망친 일은 하나도 없다. 최선을 다했지만 힘이 달리고 능력이 안되고 때가 안 돼서 무너지고 탈락하고 거절당했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최선을 다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래서 과거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앞날의 남은 삶들, 좀 더 잘 살고 좋은 결과를 얻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해보니 결과는 항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미래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앞으로는 더 은혜롭게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니, 미래 염려, 경제적인 어려움, 지구 멸망 염려까지 다 내려놓게 되었다.

내려놓으니, 현실이 소중하다. 주어진 시간들과 기회들이 소중하다. 그래서 정성을 쏟게 되고 사랑의 물을 부지런히 주게 된다. 삶이 즐거우면 시간이 빨리 가고, 삶이 지겨우면 시간이 늦게 간다. 나의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가고 있다. 달다. 어떤 열매나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아도 현재 주어진 삶 자체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내면의 질서가 잡히고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었다
나를 대면하는 것을 피할 때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나를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평가를 항상 의식했고, 박수 갈채에 길들여졌고, 칭찬과 인기가 중단되면 견디기 어려워했다. 내가 중심이 안 되는 모임에서는 지는 것 같고, 무시당하는 것 같고, 버림당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를 직면하고, 내가 원하는 나와 대면하는 용기가 생기니까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 부족한 것, 연약한 것, 부끄러운 것을 가지고 있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나니까, 별거 아니었다. 그리 심각한 문제들이 별로 없었다. 잘나지 않았는데 잘난 척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간격이 커서 괴로워했던 것이지, 없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니까 간격이 사라지고 갈등이 사라지고 자존감이 높아졌다. 그때부터 내가 나를 살아가게 되었고, 위기를 기회로, 상처를 받아들여 진주로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고,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여 여유롭게 멋을 아는 삶을 누리게 되었다. 내면이 강해지면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다 이겨낼 수 있다.

2년 전부터 손바닥 피부에 문제가 발생했다. 접촉성 피부염이라는 진단이다. 그래서 운전을 오래 하거나 운동을 심하게 하면 손바닥 피부가 갈라진다. 의사들의 온갖 처방을 받아서 별의별 피부약을 바르고, 먹고, 상당한 노력을 했지만 손바닥 피부는 점점 더 심해진다. 피부가 굳어져서 벗겨지다가 이제는 논바닥 갈라지듯이 일부가 갈라진다. 아무리 약을 발라도, 처방을 받아도, 별 진전이 없다. 지금도 약을 바르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진전은 없다. 그래서 이것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낫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지만, 이 과정과 결과도 그냥 받아들이고 살기로 했다.

처음에는 육체의 작은 변화들, 만성 신경통, 근육통, 관절염, 접촉성 피부염 등등이 발생할 때 상당히 초조했고 두려웠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육체가 쇠퇴해 가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불필요한 염려 근심 두려움이 사라졌다. 완전히 해결되는 일도 있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완벽하게 성취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청년의 때에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컸다. 그래서 그 간격에서 오는 자괴감 때문에 마음의 평안이 없었다. 하지만 나를 직면하면서 이상과 현실이 차이가 그리 크지 않게 되었다. 감당할 만하다. 삶의 자극을 줄 만큼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내면의 질서를 잡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죽는 날까지 꿈꾸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제는 꿈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현실에 맞추어 사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내면의 나와 외면의 나 사이에 차이가 크기 않으니 만족할 줄 알게 되었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어진 그대로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나이 드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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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승관
나는 꿈꾸는 사람이다. 목회 35년 동안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꿈을 꾸었다. 3년 전, 조기은퇴 후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현재 Uber Driver로 생계를 해결하며, 글쓰기를 통해 세상, 사람과 소통하는 영혼의 Guider되기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