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런 날이 있어 봤을 것이다

“아, 오늘은 정말 출근하기 싫다…”

난 승무원 일을 너무 좋아한다. 공항이 설레고, 설레는 사람들 사이에서 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전 세계를 누비는 이 모습을 나는 훗날 그리워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안다. 하지만 이 일도 결국에는 일이기에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특정 나라를 비행하기 전 이런 생각이 더더욱이 크게 드는 것 같다.

다시 겪어야 할 손님들의 말도 안 되는 기내 가방들과의 전쟁… 도대체 이분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큰 짐이 기내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화장실과의 전쟁… 도대체 이 사람들은 변기 활용법을 모르는지, 사람과의 전쟁… 도대체 이 사람들은 승무원들을 뭘로 보는지… 등등 비행 시작도 전에 한숨이 푹푹 나오는 나라가 있다.

생일 다음 날에 그 나라 비행이 잡힌 이번에는 유난히 그 나라의 비행이 꺼려져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항상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나님께 기도까지는 아닌 부탁 정도를 드리다가 이번에는 꽤나 진지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나를 불러 주신 날을 명분삼아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 생일인데… 솔직히 내일 비행만큼은 시련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꽤나 진지하게 기도드렸다.

그리고 괜히 기분이 좋아서 동료에게 말했다. ‘우리 내일 그 나라 안 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동료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몇 시간 딜레이가 될망정 회사에서 비행편을 취소시킬 일은 없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같은 편 비행의 최근 세 개의 비행편 모두 세 시간 딜레이가 있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비행기는 호주를 떠나 그 나라로 향했다.

만약 비행편에 차질이 생긴다면 승무원들에게 미리 연락을 해서 준비 시간을 늦추고 호텔에서 조금 더 대기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나는 그 연락을 왜인지 모를 좋은 기분 때문에 기다렸다. 그리고 비행 당일 민망할 만큼 회사에서 아무 연락도 받지 못한 채 순조롭게 약속된 시간 안에 준비를 마친 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올라타 손님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어제 나의 자신감을 목격했던 동료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현실을 직시하라 하였다.

그런데 기장들이 비행기에 올라탄 뒤 기장실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비즈니스 캐빈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나머지 승무원들도 상황을 파악하러 앞으로 갔고 갤리 담당이라 남들보다 준비과정이 더 길었던 나만 뒤에서 열심히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느낌이 조금 쎄했던 나도 상황을 파악하러 앞으로 간 나에게 기체결함으로 최소 세시간 딜레이라는 업데이트가 전달되었고 나는 다시 기도했다.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만약에 이 비행이 오늘 떠나지 않는다면 남들은 그냥 우연이라 생각해도 나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신 거라고 믿겠다고.

그리고 비행기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와서 우리에게 알렸다. 이 비행은 캔슬해야 할 것 같다고. 내 승무원 생활 동안에 있어서 첫 캔슬이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감사함보다 더 큰 경외심이 들었다. 남들에게는 그냥 많은 비행편 중 캔슬이 된 비행일망정 나에게는 내 기도를 들어 주신 하나님이었고 항공사도 꼼짝 못 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왜 목사님들께서 사소한 일들까지 하나님께 내려놓고 기도하라는 것인지 나는 깨달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기도의 응답에 대한 간증으로써 하찮고 우습다고 느낄 수 있지만 나에게는 분명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였다.

기체 결함으로 비행편에 차질이 생긴다면 승무원들은 일단 공항에서 대기해야 한다. 혹시라도 회사에서 남는 비행기가 있다면 재빨리 그 비행기를 가지고 와서 비행에 보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의 여건상 보통 남는 비행기는 없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게이트에서 바로 입국사무소로 내려갔다. 나와 동료 승무원들은 제발 우리들의 가방이 먼저 나와서 취소된 비행에 화가 난 손님들을 최대한 피했으면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우리의 가방들은 나오지 않았고 손님들도 슬슬 수하물 컨베이어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우리를 쳐다보던 몇몇 손님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비행이 취소된 이유가 우리 탓도 아닌데 왜 우리를 저렇게 쳐다보는지 모르겠다는 승무원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괜히 찔리는 느낌을 받으며 잠자코 있었다.

캔슬된 비행기는 하루 만에 기체 결함을 해결하였고 비행편은 다음날 다시 같은 기장들과 승무원들을 통해 운행되었다. 역시 비행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고 여러 종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륙 준비를 하고 있는 내가 있던 비행기 뒤까지 찾아와서 말도 안 되는 요청을 하고 거절당하자 자기는 착륙하자마자 변호사를 통해 고소하겠다는 협박을 받으며 빡쎈(?) 비행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난 속으로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었다.

‘네 마음대로 해라~ 나도 빽있어~ 내 빽 아니었으면 비행기도 못 탔을 거면서!!‘

여느 비행과 다름이 없었을 뻔했던 이 비행은 하루 뒤에 떠나면서 나에게 다른 마음가짐을 심어주었다. 위에 받았던 협박을 전날에 받았다면 ‘이것들 또 시작이네 … 이런… 도저히 못 해 먹겠네’ 라는 생각을 가지고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부터 부정적인 마음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 마음은 비행 내내 이어져서 나의 기내 서비스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분명 나에게 스트레스를 선물한 승객이 아니더라도 그런 말을 듣고 다른 손님에게는 하하호호 웃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상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손님들에게도 우리 항공사에 대한 좋지 않은 서비스 인식을 심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은 나는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고 하나님께서 이 승객들을 이 비행에 태워서 나를 만나게 해 주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한마디라도 더 건네고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지려고 하였다. 위스키를 끊임없이 계속 요청하는 손님에게 유쾌하게 거절을 하며 친근하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사람이 비행이 캔슬되고 제공된 호텔 체크인 과정 중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통번역 일을 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하면서 술 이외의 것을 권하며 진심으로 대하였다. 보통 술 요청을 거절당한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비행기에서 내리는 반면 이 손님은 공항 이미그레이션에서 날 마주치자 큰 목소리로 ‘Goodbye Sing! Thank you!’라고 크게 외쳤고 매니저 앞에서 난 어깨가 하늘 위로 치솟았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정말 놀랍다. 나는 의심이 정말 많고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내 주위에서 나를 위해서 일하시고 항상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하는 이 승무원 일 가운데서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계획하심이 있으시고 많은 비행 가운데서도 아무 의미 없는 비행은 전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항상 이 마음을 꾸준하게 가지고 모든 비행에 임하려고 노력해야겠다.

이전 기사그리움
다음 기사고통에 답하다
김 승원
로토루아에서 자라 오클랜드 대학 회계학과 졸업, 빅4 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증 취득 후 현재 콴타스항공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MZ 뉴질랜드 청년. ‘세상이 그렇게 넓다는데 제가 한번 가보지요’를 실천 중이다. 말 그대로 천지 차이인 두 근무환경에서 일어난 다사다난한 근무일지와 그 안에서 신앙인과 세상사람이 공존하는 여느 MZ청년과 다름없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