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졌을 때를 대비한 생존 훈련

나이 들수록 부부가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내 아내는 남섬에서 할 일이 있어서 나 홀로 오클랜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목회하면서 보니, 노년에 사별했을 때 아내들은 오랫 동안 천수를 누리지만, 남편들은 2년 이상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런 가 보니 외로움의 문제도 있었지만 홀로 생존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먹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스스로 음식을 해 먹고,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몰라서 불규칙하게 살다가 급속하게 건강을 잃어버리게 된다. 본의는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나는 이 나이에 혼자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밥심으로 산다
아내 없으면 혼자서 못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생존이 걸린 상황이 되니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한국인들은 쌀과 김치만 있으면 산다고들 하는데 내가 해 보니 진짜 그렇다. 밥만 잘하면 반찬은 한 가지만 있어도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밥맛이다.

작년에 한국에서 2달 사는 동안 일인용 압력밥솥을 알게 되었다. 7분이면 완성되는 따뜻한 밥을 매일 먹었다. 그 경험을 살리기 위해서 뉴질랜드에서 찾아보았는데 찾지 못해서 온갖 냄비들을 태워 먹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구입해 준 무쇠 돌솥으로 밥을 하게 되었다.


무쇠 돌솥으로도 초기에는 숱하게 밥을 태워 먹다가 이제는 제법 적당히 누룽지가 생기는 따뜻한 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따뜻한 밥이면 김치 하나로도, 혹은 찌게 하나로도 만족한 한 끼를 누리게 되었다. 나머지 반찬은 보너스 덤이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겁나 놀랬다. 이렇게 맛있는 김치찌개도 내가 끓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청국장, 달걀찜, 아내가 해 놓고 간 양념 고기, 냉동된 국들…제법 풍성하게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Uber 만만치 않다
오클랜드에 올라와 보니 도로가 복잡하고 도면이 거칠다. 낡은 도로가 생각보다 너무 많다. 한 달도 안 돼서 타이어 펑크가 났다. 모터웨이에서 왜 펑크가 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타이어 2개를 교체해야 했다. 도로가 정체되는 시간이 많아서 이동시간이 길어져 수입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많지 않다. 교회에서 맡은 일이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3일만 일하려고 했으나 4일간 일해도 수입이 생각에 못 미친다. 이제 한 달 오클랜드 초보운전의 경험이니 몇 달 더 해 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버지 목회에서 할아버지 목회를 하게 되다
아버지는 자녀들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책망도 하고 화도 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손주들을 사랑만 해주면 되기 때문에 책망이나 화낼 일이 거의 없다. 그저 맘껏 사랑만 해주면 되는 것이 할아버지 사랑이다.

그런 목회를 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역할은 담임목사 공백 기간 설교하는 일과 교회가 추가로 요청하는 일들을 돕는 부분적인 역할만 하면 되는 사역이다. 교회는 사역자들의 헌신, 행정적인 짜임새, 교회의 내적 외적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

물론 문제없는 교회가 어디 있는가? 문제를 극복하기 나름이다. 새로 오실 목사님이 성도들과 한마음 한뜻을 만들어 내는 일에 성공한다면 폭발력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그래서 소망을 품고 물꼬가 트이도록 온 힘을 다해 정성을 쏟고 있다. 새로운 부르심, 새로운 사역은 항상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한다.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나가실 하나님의 터치를 기대한다.

삶의 자리가 바뀌면 생활 패턴이 바뀐다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아내와 함께 차를 운전하여 픽톤에 도착해서 페리호를 타고 3시간 40분 만에 웰링턴 항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로토루아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오클랜드까지 약 1200km 대륙 종단을 했다. 이번이 세 번째다. 지역마다 새롭게 보여 주는 풍광은 우리를 충분히 감동케 했다. 대륙 종단을 할 때마다 늘 새롭다. 뉴질랜드에 대한 애정을 더 갖게 해 준다.

교회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물론 아내가 한 달에 한두 번 올라와서 필요한 생필품과 음식들을 준비해 준다. 둘이 떨어져서 생활하다 보니 더욱 애틋하다. 신혼의 기분이 난다. 거의 매일 카톡으로 통화하고 문자를 나눈다. 잃어버렸던 청춘을 돌려받은 듯하다.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새삼 느낀다.

삶의 자리가 바뀌니 움직이는 동선, 만나는 사람, 누리던 가구들, 심지어 식기들까지 모두 다 바뀌었다. 익숙해져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다시 시작이다. 이런 변화로 인하여 그동안 누리고 있었던 것들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변화로 인한 자극은 나를 멈추지 않게 한다. 지나온 모든 것들을 점검하면서 삶의 엑기스를 농축하게 한다. 진짜 내가 살아 보고 싶던 삶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게 되고 주저함 없이 실천하게 한다. 노년에 주어지는 새로운 기회들은 특별한 축복이다.

알면 생존할 수 있다
밥을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찌개를 끓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김치가 찌개용인지 반찬용인지 알게 되었다. 혼자서도 장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영양식을 보충하는 법만 터득하면 생존에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아직은 아니지만 몇 달 더 살아내면 누군가를 초대해서 한 끼 식사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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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승관
나는 꿈꾸는 사람이다. 목회 35년 동안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꿈을 꾸었다. 3년 전, 조기은퇴 후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현재 Uber Driver로 생계를 해결하며, 글쓰기를 통해 세상, 사람과 소통하는 영혼의 Guider되기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