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ready but not yet

이현모 장로<오클랜드감리교회>

얼마 전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구원은 죄 용서받는 것”이라고 얘기했고, 어느 사람은 “죽어 천당 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사는 것”이라 말했다.

나는 구원이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즉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우리는 예수를 진심으로 믿으면 구원받는다. 다른 조건은 없다. 하나님께 죄인인 우리가 의롭다 인정받고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면 지금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구원이 완성되고 다 끝났는가? 이미(Already)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안심해도 되는가? 천국 티켓을 땄으니 아무렇게 살아도 대충 살아도 우리의 구원은 보장되는가?

많은 사람의 착각
마태복음 7장 22절에 보면 심판 날에 스스로 구원을 확신하며 자신들이 한 일들을 주님께 자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이때 예수께서는 23절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용서받은 죄와 받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가?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왕과 종의 빚 청산하는 비유가 나오는데 이 왕이 빚진 채무 계산을 하려고 종을 불렀다. 그는 일만 달란트나 되는 큰돈(한국 돈 약 6조)을 빚졌다. 임금은 종이 갚을 돈이 없음을 알고 그의 아내, 자녀 그리고 그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빨리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종은 어마어마한 돈을 갚을 수가 없어서 울면서 좀 더 기다려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자비로운 왕은 이를 측은히 여겨 모든 빚을 조건 없이 다 탕감해 줬다. 그러자 이 종은 너무 감격해서 울면서 감사하다고 하며 기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기한테 백 데나리온(약 천만 원) 빚진 사람 멱살을 잡고 ‘왜 내 돈 안 갚느냐’고 다그치며 그 사람이 기다려 달라고 아무리 애원을 해도 그냥 감옥에 넣어버렸다.

이 광경을 본 요즘 상황으로 비유하면 행인들이 그 광경을 휴대폰으로 다 찍어서 SNS에 올렸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는 대노해서 그 종을 다시 잡아와서 호통치며 말하기를 “이런 불의한 종, 너는 내가 그렇게 큰 금액을 다 탕감해 줬는데 너는 친구 이웃들을 찾아다니면서 적게 빚진 자들을 다 용서하고 빚 문서 다 없애주고 임금을 칭송하고 함께 기뻐해야지 어떻게 그렇게 배신할 수가 있냐?”고 화를 내면서 이 종을 다시 감옥에 넣어 영원히 나올 수가 없게 해 버렸다.

이 왕은 돈의 액수보다 엄청난 은혜와 사랑을 입은 사람이 그 자비를 잊어버리고 조그마한 것도 용서하지 않고 배신하고 은혜를 갚지 않은 것에 대해서 크게 분노한 것이다. 왕의 무조건적 용서가 값싼 은혜가 되는 순간, 이것은 왕을 능욕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엄청난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셨는데 우리가 사는 동안에 그런 은혜와 감격을 다 잊어버리고 친구, 이웃들의 잘못, 또는 조그마한 허물 그런 것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분 내고 적대하고 싸우고 또 특별히 교회 내에서도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고 하고 있지 않은가.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만일 너희가 진심으로 자기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무섭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이 잃어버릴 수 있고 취소될 수가 있고 탈락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 성경은 예수님께서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고 그러는데 어떻게 죄인인 우리가 친구 이웃의 죄를 사할 수 있을까? 영어 성경에는 “Forgive our debts”라고 되어 있다. “죄를 사하여 달라”라고 하는 대신 빚을 탕감해 달라고 썼는데 이 번역이 위의 비유와 맞는 것 같다.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는가?
우리가 구원받았으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렇다. 그런데 오늘 성경 세 군데에서 생명책에 기록됐다가 나중에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출 32장 33절).

또한 시편 69편 28절에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또 요한계시록 3장 5절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한 번 구원이 영원히 개런티 된 걸까?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빌립보서 2장 12절에 보면 “두렵고 떨림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의심하고 그렇게 벌벌 떨라는 게 아니라 경외심을 가지고 긴장하면서 힘쓰고 노력해서 이미 얻은 구원의 확신만 가지고 안주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빌립보서 3 장 12~1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주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Already but not yet(이미 그러나 아직)
우리도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서 아무도 낙오되지 않고 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고 마지막 날에 심판대 앞에서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받고 함께 영생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