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앞에 놓여 있는 핑계거리들

중국에서, 아프리카 이집트에서 동료 선교사의 부고 소식이 한꺼번에 들려오는 주일 아침이다. 며칠 전에는 GMS 뉴질랜드지부 선교사 한 분도 한국으로 귀국한 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렇게 안타까운 소식이 며칠 사이에 들려온다.

요즘 선교지로 가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랫동안 남태평양의 작은 나라 통아(Tonga)에서 사역한 동료 선교사 내외도 건강이 여의치 않다. 후임 선교사를 찾는다는 광고를 뉴질랜드와 한국에 여러 차례 내놓아도 아직 소식이 없다.

오늘날의 마게도냐는 과연 어디인가? 찾아야 한다. 세계 선교의 깃발은 바울에 의해 소아시아 지방으로 퍼져 나갔다. 아시아로 가려는 바울의 발길을 성령께서 막으심으로 바울의 선교는 갈피를 잡지 못하던 때, 바울은 한 마게도냐 사람이 서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본다. 이로써 복음의 물줄기는 유럽으로 향하게 된다.

토인비는 ‘바울을 태운 배가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했다. 선교지 결정은 교단 행정가들의 정책적 행정이나 선교 단체의 이해관계보다 선행되야 하는 것이 있다.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선교 사명자를 향하여 간절히 부르는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가를 찾아야 한다. 한국 교회와 한인 교회, 뉴질랜드 교회를 향하여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부르는 소리가 오늘날 어디에서 들려오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이 우리 앞에 있다. 뉴질랜드에서 사역하면서 오래전부터 남태평양 선교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어왔지만 정작 뉴질랜드를 떠나 선교지 현장으로 가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태평양 선교를 위해 오클랜드에 본부를 두고 왔다 갔다 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제 저들의 나이도 은퇴 시기를 한참이나 지났다. 저들의 사역을 이어갈 선교사들을 찾지 못하는 현실을 숨길 수 없다.

무슨 이유 때문에 선교에 동참하기를 아직도 주저하는가? 우리가 어떤 문제 때문에 주저하고 미루게 된다면, 이는 사탄에게 우리를 공격할 소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남태평양의 작은 나라에서는 한국에서 온 이단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상황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어찌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위해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의 자세는 마치 오늘날의 현실과 너무나도 닮은 꼴이라는 것을 숨길 수 없다.

적격성 여부?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모세는 적격성 여부로써 불순종의 자세를 보인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타락한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서 적격성을 논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늘 주님 앞에 부적격자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찾으시면, 그저 이사야 선지자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대답하는 것이 우리의 부적격을 가리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언제부터였는가? 이 말씀도 ‘내가 여기 있나이다. 저 사람을 보내소서.’ 한다고 하니, 한갓 우스개 소리로 듣고 넘기기에는 참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의 적격성을 스스로 따져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능력 유무?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


자기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언변의 능력도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핑계이다. 매우 겸손한 태도처럼 보이나 겸손을 가장한 교만일 뿐이다. 모세는 두려움 속에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규명해야 하는 어려움과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무지 등, 여러 문제 때문에 도저히 자기는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하나님께 항변한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성을 어떻게 잘 규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 내가 누구의 사업을 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오히려 내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10:19-20)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권위 유무?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출 4:1)

모세는 자기는 권위가 없다고 핑계를 댄다. 죄인 중에 괴수 같은 자라 할지라도 주께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권위를 세우신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살아야 한다. 즉 우리는 권위가 없어도, 권위를 세워주시는 권위자가 계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특히 선교에 있어서는 권위보다 순종이다. 우리는 명령을 받을 때 꼭 성공하도록 명령을 받기보다는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본래?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출 4:10)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본래’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니 이는 곧 교만이다. 본래 모세를 누가 만들었는가? 본래 누가 모세에게 그렇게 하신 것인가? 모세가 ‘본래’라고 함은 거짓이다. 사도행전 7:22은 모세가 말과 행사가 능하다고 증거한다. 이때는 모세가 소명을 받기 전으로 모세가 애굽에 있을 때의 상황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4:11의 사사로운 변명은 명백한 거짓말임에도 불구하고 ‘본래’라는 말을 사용함은 불충하기 짝이 없다.

선택 여부?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4:13)

하나님의 선택적 시각에 무엇인가 착오가 생겼다는 아찔한 말이다. 만일 이 말을 하나님이 받아들이셔서 혹 아론이나 여호수아나 갈렙, 기타 신실한 종들을 선택하여 보내셨다고 한다면, 그때부터의 모세의 운명과 상실되어진 것은 무엇일까? 만일 모세가 가려고 할 때 허락이 됐다면, 모세는 진정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들었겠는가?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나는 가지 않으렵니다.’ 불순종으로 모세는 중요한 축복인 대제사장의 귀한 직분을 아론에게 넘기게 된다. 불순종의 대가가 이렇게 크다.

모세는 출애굽기 4:3에서 ‘뱀 앞에서 피했다’고 했는데, 우리가 피하여야 할 무슨 조건이 우리에게도 있는가? 재정? 명예? 건강? 시간? 권력? 은사? 자녀 교육? 무엇이 우리로 선교하지 못하도록 만들 핑계거리인가? 이 모든 여건과 상황도 하나님의 허락하신 축복이다. 핑계하거나 회피하면, 그 축복이 오히려 짐이 된다. 그러나 사용하면 놀라운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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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명균
총신신대원 졸업, 24년째 한인을 대상으로 목회를 이어가고 있으며 총회세계선교회(GMS) 뉴질랜드지부장을 맡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에는 를 연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성경일독을 이어가는 을 5년째 집필하고 있고 뉴질랜드 초기 선교사들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 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선교적인 시각으로 다시 보면서 이 이야기를 펼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