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숫자에 제한 받지 않으신다!(사사기 7장 1절-8절)
‘기드온의 300 용사’가 치른 미디안과의 전쟁을 아실 겁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자 7년 동안 이방 나라 미디안에게 폭정을 당했습니다. 곡식 추수 때만 되면 나타나서 빼앗아 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드온도 무서워서 몰래 숨어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데 기드온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에이,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어떻게 미디안에게 당합니까?” 하나님의 사자는 말합니다. “너는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다.”
기드온은 말합니다. “저는 집안이 별 볼일이 없습니다. 저는 저희 집에서조차 별 볼 일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함께 할 것이라며, 미디안 민족과 싸우기를 단지 한 사람과 싸우듯이 할 것이라며 그를 안심시키셨습니다.
그 후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자 아비에셀 족속이 모여들었습니다. 이제 전쟁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이상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님, 제가 이거 하는 것이 맞습니까? 저를 통해 역사하는 것이 맞습니까?” 그러면서 표징을 구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양털 시험” 표징입니다. 마당에 양털 뭉치를 놓고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마당은 여전히 마른 땅이라면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역사하실 것을 믿겠다고 합니다. “그대로 된지라”(삿6:38). 그러나 기드온은 다시 표징을 구합니다. “저기요, 하나님, 화내지 말고 들어주세요. 반대로 한 번만 더요.” 하나님은 그 밤에 다시 반대의 표징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여러분, 기드온이 어떤 사람 같습니까?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보통의 성경 인물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음성 한 번 들으면 “예, 주님, 제가 가겠습니다. 어떻게 하오리이까?” 이렇게 하건만 기드온은 영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세 번이나 들었어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바위에서 불이 나와도 양털 시험 두 번 더 하자고 합니다. 보통 힘든 인생이 아닙니다. 소심하고 의심 많고 까탈스럽습니다. 이런 사람이 기드온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기드온이 전쟁하려고 모여 있는 상황입니다. 성경이 재밌습니다. 기드온이 전쟁을 위해 진을 쳤다는 장소가 나옵니다. 그곳은 “하롯 샘 곁”인데, “하롯”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떨린다. 두려워한다”입니다. 지금 기드온의 군대 상황을 딱 알려주는 모습 같습니다. 실제 두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드온의 원래 직업은 농부입니다.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그의 모습도 추수 때 타작하던 모습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전쟁과 무관한 사람입니다.
또한 상대 미디안의 병력은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삿7:12). 3개국 연합군에다가 숫자는 어마어마하다고 했습니다. 사사기 8장 10절에 보면 13만 5천 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기드온의 군대의 수는 3만 2천 명입니다. 4.2대 1로 전쟁해야 하니 완전히 열세입니다. 또한 상대는 최신의 무기를 탑재했습니다. 바로 “낙타 부대”입니다.
학자들은 아라비아 산 단봉 낙타는 13시간 동안 쉬지 않고 160km를 달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낙타가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다고 하니 낙타들의 발굽 소리와 함께 밀고 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영화의 장면이 연상됩니다. “두두두둥” 다 밟혀 죽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상황은 이런데 이 문제를 풀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시각이 너무 다르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 즉 돌려보내라”(삿7:2). 이에 2만 2천 명이 돌아갔습니다. 약 70%가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반응을 또 보십시오.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삿7:4). 결국 만 명 데리고 물 떠먹는 모습을 보고서 돌려보내야 한다고 하십니다. 9700명은 무릎 꿇고 먹고, 300명은 손으로 떠서 물을 먹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 300명으로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까 만 명 남았을 때가 병력 대비 13대 1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300명이 되었으니 병력 대비 450대 1입니다. 결국 최초 모인 병력이 3만 2천 명이었다가 이제 300명 되었으니 100분의 1이 남은 겁니다. 즉, 99명은 돌려보내고 1명으로 대결하겠다는 것입니다. 450명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기드온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어르고 달래고 보여주고 들려줘도 할까 말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줄이고 또 줄여서 전쟁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과를 아시지요?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로 구성된 3개국 연합군, 13만 5천 명이 모두 사망했거나 도망갔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힘을 빼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수를 줄이라고 하실 때가 있고, 잡은 것을 놓으라고 하실 때가 있고, 모은 것을 버리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문제를 만날까 봐 대비해야 한다고 뭐든 모으고 잡습니다. 이른바 이 시대에 강력하게 흐르고 있는 “스펙 스피릿”이 있다는 겁니다. 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아야 안전하고, 늘려야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펙을 쌓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쌓아 놓으면 언젠가는 쓸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많이 쌓는 것이 곧 경쟁력이라는 것입니다.
엄마들의 자녀 교육 실태를 보십시오. 학원 하나라도 더 다니면 우리 아이가 잘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월급받아 학원 수를 늘립니다. 직장인들은 주급, 월급, 연봉을 높이느라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직급 올리려고, 실적 내려고, 휴일이고 뭐고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학점과 점수, 재정을 버려야 주님이 쓰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보험 드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십시오. 화재보험, 생명보험, 암보험에 특약까지. 보험을 더 많이 쌓아 두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입니다. 암 보험 2개 든 사람과 암 보험 5개 든 사람 중에 누가 그래도 더 안전할까요? 정답은 암 보험 계약 개수와 암 발병률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착각하는 것입니다. 보험 하나라도 더 들어 놓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특약 몇 개 더 걸어 놓고, 보장 액수 더 크게 하고, 100세까지 보장되면 안전하다고 착각합니다. 자동차 보험 3개 든 사람하고, 5개 든 사람 중에 누가 더 안전할까요? 정답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험을 많이 들어 놓았다고 사고가 안 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 지 아실 겁니다. 높이고 늘리고 쌓으면 다 된다는 이 시대의 어둠의 영에 홀려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판 바벨탑 아닙니까?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스펙을 쌓는다고 취업 되고 인생이 풀립니까?
오늘 본문의 기드온도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이 모아 놓은 군사 3만 2천 명을 두 차례나 돌려보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필요한 수를 기드온 스스로 정확히 두 번 더 모았기 때문입니다.
6장 35절을 보시면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아까 여호와의 영이 임해 나팔을 불어 성령의 감동으로 모여진 사람 외에 독자적으로 자기 임의로 두 번 더 징집했습니다. 수를 늘렸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정확히 두 번 돌려보내고 그 남은 수로 전쟁해서 승리하십니다.
우리는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숫자에 매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기에 숫자가 중요하지 않으십니다. 인생들은 다수를 쫓아가지만 하나님은 복 있는 사람(창조적 소수), 단수의 사람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기드온은 300명으로 전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그 300명은 “한 손에는 횃불, 한 손에는 항아리”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용사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기드온의 300 용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냥 “기드온과 300명”일 뿐입니다. 굳이 표현한다면 순종한 301명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숫자에 제한받지 않으십니다. 스펙에 속지 마시고 한 분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