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어르신 이야기는 치매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순이 어르신을 만난 것은 20년 전에 어느 교회 교구 목사로 일할 때입니다. 그 교회는 어르신들이 많았고 교구 목사의 주업무는 정기적으로 가정을 심방하고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어르신의 아들은 교회에서 장로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순이 어르신의 아들은 매일 먼 곳에서 차를 타고 와서 새벽기도를 간절하게 하고 또 먼 곳으로 일하러 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의 기도 제목은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구원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가진 많은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장로님의 기도에 나도 기도를 보태며 그의 어머님의 구원을 위해 뭔가를 하기 위해 어머님의 집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교구 심방 담당 전도사께 그간의 사정을 여쭈어보니 그 어르신은 큰아들과 함께 사는데 치매 중기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상태에서 치매를 가지고 살게 되었으니 세례는 받은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치매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고백하게 하는 게 가능할까? 장로님의 기도는 기도로 끝나게 될까? 하나님은 어떻게 매일 새벽마다 드리는 이 기도에 응답하실까? 궁금했습니다.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니지 않는 가정인 그 집을 찾아가서 그분의 어머니를 심방 했습니다. 예수 믿지 않고 치매를 가진 분에게 무작정 “예배합시다.” “ 기도합시다.” 권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마칠 때쯤에서 좋은 노래 하나 불러드린다고 하면서 찬송을 불러드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목사인데 좋은 말씀 하나 전해드린다.”고 하면서 ‘예수 사랑하심은’ 찬송과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워드렸습니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뇌가 수축되어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고 최근 기억부터 사라지는 증상을 보입니다. 순이 어르신에게도 최근 기억부터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가면서 기억이 사라지는 증상을 보였습니다. 아들딸을 시집 장가보낸 기억들과 며느리들 기억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더 깊이 오래 저장되어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표면으로 올라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심방을 가서 먼저 담소를 나누고, 떠나는 시간이 되어서 예수 사랑하심을 불러드리고,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전해 드리려고 성경을 펴는데 순이 어르신이 갑자기 “나 이 노래 알아!”라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치매가 진행되면서 매일 노래를 불러주면 새롭게 기억하게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순이 어르신이 노래를 기억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놀랐습니다. 그래서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우리가 올 때마다 불러드려서 은연중에 배우셔서 아시나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순이 어르신의 대답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니야. 나는 이 노래를 내가 6살 때 유치원에서 선교사님을 통해 배웠어.”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심방을 하던 우리 모두는 다들 놀랐습니다. 이분이 살았던 삶이 너무 기구해서 신앙생활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순이 어르신은 6.25 이전에 자녀를 4명 낳았습니다. 전쟁이 나자 남편은 군대 나간 후 실종이 되어서 사망 처리도 안 되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없이 혼자서 네 명의 아이들을 억척스럽게 길러야 했습니다. 우리는 순이 어르신의 삶에서 주일날 교회에 갔다고 하는 흔적은 보지 못했습니다. 순이 어르신의 아들인 장로도 말하기를 “내 기억에 어머니가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순이 어르신이 여섯 살 때 예수님을 알았고 예수님을 배웠고 그리고 그 여섯 살에 믿음을 고백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나는 이 기회를 순이 어르신의 삶에 찾아온 구원의 순간임을 알았습니다.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구원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 죽으면 어디 가는지 물어보았고 어르신은 주저 없이 “나는 천국에 가지.”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성경에서 배웠지”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조금 더 자세하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고 그 분을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이 구원의 예수님이 구주이심과 하신 일을 믿으십니까?” 순이 어르신은 “내가 믿습니다.” 고백했습니다.
나는 당회에 순이 어르신에게 병상 세례를 주는 것을 요청했고 당회는 기쁨으로 치매를 가지고 살아가는 순이 어르신의 세례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세례의 날은 순이 어르신 가정에 큰 경사가 되었습니다. 어르신은 흰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우고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순이 어르신의 오래된 기억 저 아래 있던 신앙의 고백이 치매를 통해 최근 기억이 사라지자 떠오른 것입니다.
치매는 근원으로 돌아가는 기회도 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순이 어르신은 세례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소천하셨습니다. 그 후에 가족들에게는 엄청난 변화와 축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어머니의 6살에 믿은 신앙으로 거슬러 올라가 자랑이 되었고 예수 사랑하심이 가족의 축복송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형제들이 모두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었습니다. 순이 어르신의 자녀들과 가족들은 장례식을 통해서 어머니 생전에 잘하신 일을 기억하고 못다 한 일들을 어머니 이름으로 이루어 드리는 일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가족이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내린 결론은 천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가장 효도하는 길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들이 화목하게 잘 사는 일이고 이후에 천국에 가서 모두 뵙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천국 갈 때까지 형제들이 우애 있게 신앙생활을 잘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치매가 한 가족을 어떻게 화해시키고 가정의 구원을 이루는지를 보게 되는 은혜로운 기억입니다.
누구도 치매가 걸리고 싶은 사람도, 치매가 있는 사람을 가족으로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치매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치매가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것을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지만 반대로 치매가 가정에 축복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치매를 축복으로 바꾸는 비결은 다른 분주함을 내려놓고 영적인 웰빙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다른 조건이 조금 부족해도 범사에 잘되는 인생으로 인생을 마치고 영생 주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이런 인생이 진짜 의미 있게 산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치매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용 가능한 신앙적인 활동을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기도와 묵상입니다. 환자와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환자의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전달합니다.
둘째는 성경 말씀입니다. 환자의 상황에 맞는 성경 말씀을 읽고 함께 나누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기억력 저하로 인해 성경 말씀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환자에게는 짧고 간결한 말씀을 되풀이하여 전달합니다.
셋째는 치매가 진행되면서 사회 활동입니다. 교회 공동체안에서 사회활동에 소외됩니다. 가정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인지기능이 저하됩니다. 무엇보다도 환자가 교회 공동체 안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다른 성도와의 교제를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사랑과 지지가 환자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도록 합니다.
넷째는 걷기입니다. 걷기를 하기 위해 신체의 모든 기능을 다 사용하게 됩니다. 햇볕이 있는 야외를 걸을 때 비타민 흡수가 되고 이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끝으로 봉사활동입니다. 환자와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다른 사람을 돕는 경험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환자의 자존감과 가치감을 높여주고,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며 환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치매 중기 환자에게 기독교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활동을 넘어 삶의 힘과 희망을 주는 영적인 서포터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개별적인 상황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신앙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환자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